‘비밀의 숲’, 러브라인 없어도 마스터피스 자격 충분한 까닭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어떤 드라마는 처음부터 시청자의 큰 이목을 받으며 거대하게 시작한다. 그리고 종종 푸시시 김이 빠진다. 스타 배우의 인기, 스타 작가의 파워, 성공한 한류의 익숙한 플롯에 기댄 몇몇 작품들 중 그런 예들이 있었다.

반면 어떤 드라마는 스스로 자석처럼 마니아들을 끌어당긴다. 최근 종영한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은 사실 처음부터 대단한 위력을 가진 콘텐츠는 아니었다. 이미 연기력과 스타성을 검증 받은 조승우라는 배우가 있었지만 그는 드라마보다는 영화나 뮤지컬 쪽에서 더 빛을 발하는 존재였다. 배두나 역시 할리우드에 진출한 여배우라는 수식이 있었지만 국내에 두터운 팬층을 지닌 스타라고 보긴 어렵다. 더구나 작가는 첫 입봉작이고, <비밀의 숲> 이전에도 수많은 스릴러물, 수사물이 tvN은 물론 영화판에도 신물이 날 정도로 넘쳐났다. <도깨비> 이후 tvN의 드라마들이 영 힘을 못 쓰는 판국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첫 회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정교한 플롯으로 순간순간 긴장을 잃지 않는 것은 물론 수많은 인물들이 얽혀 있음에도 캐릭터 각각의 매력을 모두 살리는 이 드라마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16부작으로 막을 내린 <비밀의 숲>은 올해의 마스터피스로 손꼽아도 부족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KBS가 <학교> 시리즈를 어설픈 인터넷소설 같은 분위기로 찍어내고, SBS는 여전히 색깔만 좋은 유치한 퓨전사극을 선보인다. MBC는 <당신은 너무합니다> 같은 C급의 막장극으로 겨우 시청률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tvN의 <비밀의 숲>은 더더욱 독보적인 성공이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늘 있다. 시청률을 포기하면서까지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도 있다. 하지만 일정 정도의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는 드라마는 흔치 않다. <비밀의 숲>은 그걸 해냈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비밀의 숲>이 드라마사의 마스터피스로 남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비밀의 숲>은 거의 감정이 없는 인물처럼 느껴지는 서부지검 형사 황시목(조승우)과 용산경찰서 경위 한여진(배두나)을 두 축으로 해서 의문스러운 살인사건의 이면을 파헤쳐가는 구조다. 이 살인극에는 미성년자 성접대나 재계의 결탁 같은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들의 이면이 뒤얽혀 있다.



이런 소재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풀어갔던 것만으로도 <비밀의 숲>은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이제는 좀 질릴 법한 소재들을 욕설과 고성이 오가는 우격다짐 같은 익숙한 방식으로 풀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을 다루지만 의외로 <비밀의 숲>은 소란스러운 드라마는 아니다. 긴장감은 넘쳐도 고요하고 정적인 면까지 있다. 대신 고가도로가 있고, 어두운 뒷골목이 있고, CCTV가 지배하는 지금 이곳 대한민국의 비밀의 숲을 카메라로 차분하게 훑으며 시청자를 극 속으로 안내한다.



시청자는 골목을 내달리는 형사 한여진을 따라 이 비밀의 숲 어딘가에서 이용당하고 죽어가는 김가영(박유나)같은 연약한 이들을 만난다. 황시목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비밀의 숲 상부에 위치하지만 권력의 서열 아래 납작 엎드리는 브레인 집단인 검사들과 만난다. 어쩌면 그들이 권력 앞에 엎드리는 것은 무조건 이기는 것밖에 몰랐던 자들의 탈락에 대한 공포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공포감이 없는 황시목은 다른 검사들과 달리 권력의 비리와 얽혀 있는 이 의문스러운 살인사건의 실체를 향해 그대로 직진한다.

한편 <비밀의 숲>은 이 드라마 특유의 어두운 색감처럼 인물의 그늘진 면들을 조금씩 노출하면서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 덕에 인물이 지닌 비밀스럽고 알 수 없는 면모가 그 캐릭터의 매력으로 빛을 발하기도 한다. 이런 면은 주인공 황시목만이 아니라 낡은 권력의 개인지 그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폭탄을 품고 있는 자인지 마지막에서야 정체를 드러낸 서부지검 차장검사 이창준(유재명) 역시 마찬가지다. <응팔>의 코믹한 동룡 아버지였던 배우 유재명이 이 캐릭터의 매력과 카리스마를 젠틀한 느낌으로 소화하는 바람에 그는 꽤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수습 검사 영은수(신혜선) 역시 극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그 느낌이 조금씩 변하는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하게 권력에서 밀려난 아버지의 복수를 노리는 딸에서 살인용의자까지 다양한 그늘을 지니고 있던 이 캐릭터는 극이 흘러갈수록 오히려 담백하고 연약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결국 극의 정점에서 영은수가 살해당하는 플롯으로 급진전하면서 <비밀의 숲>은 담담하게 시청자를 비통한 감정으로 툭 몰아넣었다. 고요히 잔인한 것도 이 드라마의 힘이리라.

이처럼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인물간의 부딪침과 감정의 교류가 빈번히 등장했지만 희한하게도 <비밀의 숲>에는 러브라인이 없다. 아무도 연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이 드라마에서 조금의 흠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러브라인은 존재하지 않아도 <비밀의 숲>에 인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늘지고 어두운 드라마의 색감과 달리 사랑이 넘쳐난다.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이 싸우고 뛰는 동료에 대한 동지애, 타락하지 않을 후배에 대한 믿음. 넓게 보면 이 모든 것이 사랑이란 감정에 속하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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