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비밀의 숲’ 시즌2를 기대하는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비밀의 숲> 마지막회는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실망스러움은 시리즈 전체의 평가에도 영향을 끼친다. 15회까지만 보았을 때의 <비밀의 숲>은 16회를 다 보았을 때의 <비밀의 숲>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었다. 종영 1주 전부터 전편을 몰아보는 대신 1회부터 따라갔다면 내 배신감은 더 컸을 것이다.

마지막회의 퀄리티 때문에 내가 종영 전까지 쓰고 있던 <비밀의 숲>에 대한 원고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원래 원고는 이 드라마가 장르물로서 어떤 성과를 거두었고, 여성과 남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에 어떤 발전을 이루었는지를 다루었는데 이들은 모두 수정이 필요하다.

우선 장르물 이야기를 하자. <비밀의 숲>의 가장 큰 장점은 장르물로서의 성취이다.

지금까지 나는 올해 나온 장르물에 속한 드라마들 그러니까 <보이스>, <터널>, <내일 그대와>, <시카고 타자기> 등과 같은 작품들이 장르물의 관습을 어설프게 흉내내고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기엔 지식과 경험이 한참 부족했다고 말했었다. 모두 이성과 논리가 중요한 설정인데도 과한 감정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고도 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정통 추리물을 의도했고 실제로 그 의도를 거의 현실화시킨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수연 작가의 책장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국 장르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 건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의 각본은 단순히 장르 관습을 따르는 대신 이런 장르에 익숙한 독자나 시청자들의 기대나 예상까지 계산한다. 그 때문에 보통 작가들이 대충 넘어가는 부분에서 ‘사실 이래야 하지 않나?’라는 시청자의 불만을 마치 드라마 주인공이 직접 들은 것처럼 답변하는 마술 같은 순간이 종종 일어난다. 마술과 같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 당연한 것이다.

한국 드라마 특유의 과한 감정이 제거되어 있기 때문에 드라마는 ‘똑똑해진다’. 주인공들이 분노나 증오와 같은 감정에 쓸려 뻘짓을 하거나, 극적인 효과를 내려는 작가의 욕심을 만족시키느라 함정에 빠지는 대신, 두 주인공 황시목(조승우)과 한여진(배두나)은 추리와 논리, 전문직업인으로서의 능력으로 사건을 끌어간다. 종종 이들의 수사가 막히더라도 그들이 머리가 나쁘거나 능력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이 역시 한국 드라마에서는 드문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 마지막회에서는 이들 상당수가 갑자기 붕괴되어 버린다. 그 때까지 드라마가 수호하고 있던 이성적인 추리물의 우선순위가 한국 드라마의 일반적인 우선순위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그것은 중년남성의 비분강개와 자기연민과 뒤늦은 참회이다.

우선순위의 붕괴가 드라마에 끼친 영향은 심각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영은수(신혜선)의 죽음이 심각하게 낭비된다는 것이다. 후반 에피소드까지 시청자들이 감정을 투자한 캐릭터를 애도하는 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은수의 죽음이 드라마의 최종 악당의 파멸과 연결되는 결정적인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 죽음은 더 깊이 다루어지고 최종 악당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그것은 주인공에 의해 논리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기초적인 사실만 대충 언급한 뒤 이전 범죄에 관련된 남자들의 얼렁뚱땅 비분강개, 자기연민으로 넘어가버린다. 이것이 처음부터 작가의 ‘빅 픽처’였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15회까지 째깍째깍 잘 넘어가던 장르적 매력이 미심쩍게 무너지는 순간이다.



남성 캐릭터의 묘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황시목은 한국 장르 드라마가 이상하게 집착했던 무례하고 불쾌한 다혈질의 타이프에서 벗어난다. 이 인물의 대척점에 놓인 사람이라면 올해 최악의 남자주인공이었던 <보이스>의 무진혁을 들 수 있다. 무진혁을 반대로 만들어놓으면 황시목 비슷한 그림이 나온다. 황시목은 예의바르고 이성적이고 유능하고 영리하다. 무엇보다 과한 남성성의 과시는 찾을 수가 없다. 이건 어떻게 보면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회인의 당연한 미덕인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뇌수술 같은 사연을 동원해야 한다니 슬픈 일이다. 이 나라는 아무에게 반말을 찍찍하며 삿대질하는 양아치 경찰이 디폴트 주인공인 곳이다.

황시목과 같은 부류가 한국 드라마에서 드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런 성격의 한국인 남자 주인공을 상상하는 것이 극히 힘들고 (일본 원작을 각색한 <화차>의 변영주 감독이 이에 대해 하소연한 적이 있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런 인물들이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 다 반박될 수 있다. 첫째, 드라마의 주인공이 꼭 민족적/국가적 전형을 따를 필요는 없다. 둘째, 이런 인물의 매력은 이미 입증되었고 오래 전에 하나의 틀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스타 트렉> 시리즈의 미스터 스폭을 들 수 있다. 참, 오해가 있을까봐 하는 말인데, 이는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좋아하는 ‘냉철’이란 단어와는 상관없다. 사전적 정의가 무엇이건, 한국 드라마에서 ‘냉철함’이란 비싼 수트를 입고 눈썹에 힘주며 고함을 지르는 남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의미가 바뀐 지 오래다.

<비밀의 숲>은 과시적이지 않고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회색 인물들을 그리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 중 가장 공들여 만든 인물은 이창준(유재명)인데, 15회, 아니, 14회까지 근사하기 짝이 없었던 이 인물이 마지막 주에 붕괴되는 것을 보는 건 결코 즐겁지 않았다. 이창준 이야기의 결말은 <비밀의 숲>이 지금까지 영리하게 피해간다고 생각했던 한국 드라마의 끔찍한 단점을 그대로 답습한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중년남자의 감상적인 자기연민, 그리고 그에게 우쭈쭈해주는 스토리 전개. 그가 남긴 수기와 <동백아가씨> 에필로그는 이 드라마의 최대 오점이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회색 악당 주인공을 지나치게 좋아해 굳이 안 해도 되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보다 보편적인 실수와도 연결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스타 워즈>의 다스 베이더가 있다. 누가 그의 꼬꼬마 시절이 궁금하던가.



여자들 이야기를 하자. 나는 이 드라마의 한여진과 영은수를 모두 좋아하고 모두 훌륭한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한여진은 구차스러운 과거의 사연과 상관없이 유능하고 정의로운 프로페셔널 주인공이고. 영은수는 젊은이의 불안정함과 개인적 야심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매력적이고 공감 가는 조연이다. 한국 장르 드라마 여성 캐릭터에선 찾기 힘든 부류이기도 하고,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선구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비밀의 숲>이 이들을 특별히 더 잘 다루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일단 비중이 그렇게 큰 편이 아니다. 조승우, 배두나 투톱으로 홍보했지만, 이 드라마는 여전히 조승우가 원톱이다. 한여진의 매력에 대해서는 꽤 오래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이 작가보다는 배우 배두나 개인의 개성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도 무시할 수는 없다. 첫 번째 각본을 읽었을 때 캐릭터에 별다른 매력을 못 느꼈다는 배두나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한여진은 캐스팅 이후 배두나에 맞추어 수정되고 배두나가 끌어간 캐릭터이다.



영은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이 인물이 소모품처럼 이용되었으면서 심지어 그 소모품 역할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데에 분노가 올라온다. 이 캐릭터의 죽음 이후 갑자기 알탕이 되어버린 서부지검의 풍경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양복 입은 중년 남자들이 비분강개해 정의를 위해 일어서는 16회의 장면은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놀려대는 영화 <더 킹>과 뭐가 그렇게 다른가? 아니, 더 못하다. <더 킹>에서는 멀쩡하게 살아있는 안희연 검사가 선두지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밀의 숲>은 작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주 알탕물의 함정에 빠진다. 검사장이 된 이창준에 조폭처럼 고개를 수그리는 검사들의 꼴을 보라. 이창준 캐릭터의 붕괴는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고.

진짜로 걱정되는 것은 사람들이 한여진과 영은수를 좋아하는 것이 이들의 ‘조신함’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한여진이 그렇다. 한여진은 만만치 않은 캐릭터지만 이상할 정도로 남자주인공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통 ‘민폐가 아니다’라고 한다. 여전히 나는 한여진의 프로페셔널한 면을 집중적으로 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다루어지는 여성 캐릭터 자체가 드무니까. 하지만 한여진이 요새 알탕영화에서 선심 쓰듯 한 명씩 끼워넣는 안전한 알리바이용 명예남성 캐릭터와 얼마나 다르냐고 묻는다면, 갑자기 겁이 날 수밖에 없다.



영은수를 생각하면 더욱 무서워진다. 다음 기사를 읽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신혜선, 완벽한 ‘비밀의 숲’의 치명적 오점 <종영기획②>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70731090602908

배우의 연기력을 비난하는 것 같지만 절반 정도는 캐릭터에 분노하는 글이다. 왜 젊은 여자가 주제넘게 자기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민폐를 끼치냐는 말이다. 더 간단하게 요약하면 왜 조신하게 굴지 않느냐는 소리다. 영은수 같은 인물은 자기 목소리를 내서도 안 되고 욕망을 가져서도 안 되고 자기의지대로 행동하다 실수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살아 숨 쉬는 캐릭터가 세상과 부딪히며 해야 할 어떤 것도 하지 말고 구석에 쳐 박혀 있으라는 말이다. 이 기사는 <비밀의 숲> 시청자들의 맹렬한 비난을 받아서 유달리 눈에 띠였지만 논리자체는 익숙하기 짝이 없다. 작가는 이 정도 어이없는 비난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비슷한 비난에 맞서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당연히 나는 이 두 캐릭터를 대단한 선례라고 말할 생각이 없다. 단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동안 만들어진, 가치 있지만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인물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솔직히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품위 있는 그녀>와 비교해보면 <비밀의 숲>의 여성 캐릭터 활용은 많이 희미해진다. 드라마의 90퍼센트 이상을 지배하고 온갖 스펙트럼에 골고루 배치된 여성 캐릭터들이 자신의 욕망을 과감하게 드러내며 행동하는 드라마와 세 명 정도의 여성 캐릭터가 알탕 속에서 민폐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기 분량을 찾느라 고군분투하는 드라마를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제발 욕심을 내고 더 큰 걸 요구하자.



<비밀의 숲>을 뒤늦게 따라가면서 나는 시즌 2에 대한 요구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 정도 나와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두 주인공이 캐릭터가 심하게 망가지지 않은 채로 살아남았으니까. 단지 이번엔 검찰을 떠나 용산서를 배경으로 하고 두 주인공의 비중을 바꾸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시즌 1의 비슷한 반복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짤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다. 시즌 1의 시행착오에서 얻은 교훈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는 건 나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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