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사극과 현대극, 한양방 넘나드는 퓨전의 탄생

[엔터미디어=정덕현] 타임슬립이 이제 식상하다? 적어도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에는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듯 싶다. 이 타임슬립은 지금껏 봐온 것들과는 궤가 다르니까. 그간의 타임슬립 장르들이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를 시간을 뛰어넘는 이야기 속에 담아왔다면 <명불허전>은 가볍게 빵빵 터지는 코미디다. 물론 코미디라고 해서 메시지나 주제의식이 약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장르적 성격을 그렇게 가져가고 있다는 것.

그 타임슬립의 방식 또한 독특하다. <내일 그대와> 같은 작품이 지하철을 통해 타임슬립을 하고, <시그널>이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면, <명불허전>은 주인공인 허임(김남길)이 죽는 순간 시간을 뛰어넘는다. 조선시대의 허임이 관군에게 추격을 당하다 활에 맞아 다리 밑으로 떨어진 후 현재로 시간을 뛰어넘고, 그렇게 현재에서 최연경(김아중)을 만난 허임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응급실에서 껴안는 순간 뾰족한 철근에 등을 찍힌 그들이 동시에 조선으로 시간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선에서 허임에게 앙심을 품은 이들에 의해 불 속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그들이 다시 현대로 돌아온다.



이처럼 타임슬립 방식이 죽음을 매개로 한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한의학과 의학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분야는 한의학과 의학으로 나뉘지만 결국 생명을 살리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허임과 최연경이다. 그런데 죽음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그들에게는 어떤 소명이 생기기 마련이다. 죽음을 통해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라는 것.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다양한 퓨전의 양상들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설정이니 사극과 현대극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한의학과 의학 역시 이 조선과 현재 사이에서 묘하게 어우러진다. 우여곡절 끝에 현대로 넘어온 허임이 눈앞에 쓰러진 병자를 고치기 위해 침을 꺼낼 때 그걸 본 최연경이 “당신 미쳤어요?”하고 묻는 상황과, 허임과 함께 조선으로 시간을 뛰어넘은 최연경이 쓰러진 병자를 구하기 위해 메스를 꺼낼 때 허임이 “당신 제정신이냐?”고 묻는 상황이 묘하게 겹쳐진다. 조선에서는 한의학이 자연스럽고 현대에서는 의학과 한의학이 공존하지만 그만한 자격이 요구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사극과 현대극, 한의학과 의학이 퓨전되는 설정이고, 그래서 시간을 뛰어넘을 때마다 허임과 최연경이 겪는 멘붕은 코미디가 되지만 이 두 캐릭터가 함께 드러내는 메시지는 진중하다. 그들은 자신이 살던 곳과는 다른 곳으로 가서도 눈앞에 스러져 가는 생명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것이 의사 혹은 의원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로 나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조선시대에 가난한 이들은 혜민서에서 줄을 서야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 말까 하지만 부유한 양반들은 언제든 돈을 주고 좋은 의원을 데려다 진료를 받는다. 현대에 있어서 병원도 비슷하다. 한방병원이든 양방병원이든 돈이 있어야 좋은 진료를 받는 현실.

그래서 그 속에서 허임과 최연경 같은 인물은 예외적 캐릭터가 된다. 혜민서에서 일하면서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침을 드는 허임이고, 환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맹렬하게 뛰고 또 뛰는 최연경이다. 그들이 시간을 뛰어넘으며 보여주는 그 멘붕은 그래서 코미디지만, 이들이 어느 시대에서건 똑같이 보여주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진중한 정극 이상이다.



이렇게 시대를 오가는 작품은 자칫 잘못하면 허황된 이야기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저런 게 어디 있어 하며 몰입할 수 없게 되면 이야기는 지리멸렬해질 수 있다. 하지만 <명불허전>은 이를 코미디로 잘 감싸 안으면서 적당히 눙치며 웃음으로 비현실적 설정들을 봉합시키는데 성공한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허임 역할을 연기하는 김남길이라는 배우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김남길은 코믹한 표정 연기를 통해 이 드라마의 톤 앤 매너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마치 만화적인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코미디 안의 진지함을 놓치지 않는다. 먼저 그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보여주는 황당한 경험들이 코미디 연기를 통해 상당 부분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줬다는 것. 드라마 제목처럼 이 드라마에서 김남길의 명불허전 연기가 이 복잡할 수 있는 시간의 혼재를 납득시키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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