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자들’, 기레기라고 욕하기 전에 꼭 알아야할 것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MBC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할 전망이다. KBS 기자협회와 고참급 PD들도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공영방송의 제작환경은 여전히 구정권이 저질러 놓은 방송장악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공범자들>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이들은 왜 투쟁을 결의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주는 영화이다. 영화를 만든 최승호 감독 자신이 지난 정권의 MBC 탄압으로 인해 해고된 당사자이다. 탄압이 없었다면 방송사에서 탐사 보도를 통해 사회를 고발하였을 사람이, 영화를 통해 그동안 벌어졌던 방송의 민낯을 고발한다.



◆ 낙하산 사장을 이용해 공영방송을 장악하다

영화 <공범자들>은 KBS의 정연주 사장의 인터뷰를 들려주며 시작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에게 일체 전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훈훈한 이야기.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마자 그에게 휘몰아친 외압들이 줄줄이 소개되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급격히 험악해진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 날 내각인선에 대하여 KBS가 비판 보도를 내보낸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이명박의 멘토였던 최시중이 방송통신위원회장이 되어, KBS 이사장을 내세워 정연주 사장을 내보내기 위한 이사회를 소집한다. KBS 구성원들이 이사회를 몸으로 막아서자, 사복경찰이 투입된다. 직원들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해임안은 결국 통과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한나라당, 감사원, 검찰, 국세청, 청와대가 KBS와 정연주 사장에 대한 총공격을 퍼붓는다. 새로운 사장이 취임한 후 <시사 투나잇><미디어 포커스> 등 시사 프로그램들이 폐지됐다. YTN에도 이명박의 언론특보였던 이가 낙하산 사장으로 내려왔다.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은 해고됐다.



MBC에 대해서는 촛불집회를 촉발시킨 <피디수첩> 보도가 발단이었다.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체포와 연행이 이루어졌다. 방송문화진흥재단(방문진) 이사회를 움직여,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와 <100분토론>의 손석희 아나운서를 하차시켰다. 엄기영 사장을 내보낸 자리에, 이명박의 최측근인 김재철 사장을 꽂았다.

김우룡 방문진 이사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큰집에서 김재철의 조인트를 까서 방송사 내의 좌파를 청소했다”고 말한 것이 알려졌다. 정권이 낙하산 인사를 이용해 어떻게 방송사를 장악하였는지 말해주는 발언이다. 2010년에 김재철 사장에 반대하는 직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김재철 사장은 해고와 징계로 맞섰다. 2012년에는 언론사 사상 가장 긴 170일간 파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무더기 해고와 징계가 돌아올 뿐이었다. 정권에 의해 방송이 완전히 장악된 상태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됐다.



◆ 세월호 오보는 우연이 아닌 것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누구나 알고 있다. 세월호 승객들이 배 안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TV에는 전원구조 오보가 떴다. 현장에서 취재했던 목포 MBC 기자가 정정을 요청해도 중앙의 방송사에서는 계속 오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여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내려 보내는 발표들을 그래도 받아쓰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와 다를 바 없다는 발언으로 문제가 된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유족들이 항의하고 길환영 사장이 대신 사과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진실이 드러났다. 청와대가 KBS를 좌지우지 해왔다는 진실 말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나오는 순간에도, 공영방송은 제몫을 하지 못했다. JTBC가 열일을 하고, SBS가 그나마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 KBS는 최소한의 분량만 다루었으며 MBC에서는 태블릿 PC의 취득 경로 등 물타기에 앞장서거나 ‘날씨와 생활’ 같은 보도를 하면서 딴청을 피웠다. MBC의 드라마에는 정윤회의 아들이 출연하고 있었는데, 이는 장근수 드라마 본부장의 입김에 의한 것이었다. 탄핵반대 집회에는 MBC 김세의 기자가 지지발언을 하였다. 탄기국 사람들이 김세의 기자의 말만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뜨악하다.



◆ 지나간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

<공범자들>은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방송장악의 흑역사를 차분히 돌아보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비슷한 소재를 다룬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이 있는 상태에서 굳이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공범자들>은 지난 9년의 흑역사가 과거의 교훈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새롭게 불붙는 지점을 보여준다.

올해 6월 김민식 PD는 MBC 사옥 로비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외침을 페이스북 라이브에 담았다. 김장겸은 지난 2월 박근혜 정권이 끝나기 직전에 MBC에 꽂아 넣은 임기 3년짜리 사장이다. 오랫동안 정치부 기자 일을 하며 정치권을 기웃거리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을 때 처음으로 국제팀장이라는 보직을 맡았다. 이후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를 당선시키기 위해 왜곡보도를 서슴지 않았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보도도 누락시킨 인물이다.

김민식 PD의 갑작스러운 외침은 아무런 메아리를 얻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내의 말을 옮기면서 그는 북받치는 감정을 어쩔 줄 몰라 한다. 그의 표정에 불안감과 외로움이 역력히 교차한다. 다행히 그의 외침은 함께 숨죽여 분노해왔던 동료들을 불러 일으켰다.



기레기라 욕하기는 쉽다. 그러나 욕을 하더라도 공영방송이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고 욕을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언론인들이 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싸우다 해직되고 징계를 받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은 그들을 모두 내쫓은 상태에서 망가진 것이며, 지금도 그 안에서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투쟁이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혹자는 고쳐 쓰기 어렵다고 말한다. 매체환경이 변했으니, 다른 매체를 키우는 게 더 낫지 않냐 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영방송의 가치는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공공재이다.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논리로 이명박과 박근혜 일당이 공영방송을 사적으로 장악하였으며, 그들의 손에서 방송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언론인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시작된 투쟁이 방송의 흑역사를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방송이 정상화된다면 <공범자들> 같은 고발 다큐멘터리는 <피디수첩>을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힘겨운 싸움에 지지를 보내주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공범자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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