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생각하면 ‘죽사남’의 충격적 엔딩이 이해된다

[엔터미디어=정덕현] MBC 수목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의 마지막 회 끝나기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훈훈한 마무리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을 게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회는 그간의 갈등들이 모두 봉합되고 위기상황도 해결되는 이야기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최민수)이 알츠하이머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만들어낸 위기는 단순 충격에 의한 일시적 기억 장애로 마무리됐고,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기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 역시 권력을 노리는 자들이 처결됨으로써 그대로 그 재산을 모두 갖게 되는 것으로 해결됐다. 아버지인 백작과 관계를 회복한 이지영A(강예원)는 아버지의 후원과 남편 강호림(신성록)의 외조로 할리우드로 가 작가로서의 큰 성공을 거둔다. 또 악역이었던 이지영B 역시 개과천선해 스스로 법인을 세우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정도면 거의 공식화되어 있는 드라마의 엔딩이다. 그러니 <죽어야 사는 남자>는 이렇게 “모두가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라는 훈훈한 끝맺음을 할 것이라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순탄한 결말은 착각에 불과했다. 모두가 백작의 개인비행기에 타고 여행을 떠나는 과정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외딴 섬 뻘 밭에 떨어진 그들이 다시 빈손으로 허탈하게 하늘을 쳐다보는 것으로 드라마는 엔딩 크레딧을 올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실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일 수 있는 엔딩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파격이 불편함이나 불쾌함으로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지금껏 시종일관 추구해왔던 조금은 과장된 코미디적 상황전개가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걸 다 얻었다 싶은 그 장면에서 엉뚱하게도 다시 뻘 밭을 뒹굴고 있는 백작의 모습에서는 한 편으로는 황당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웃음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파격엔딩이 충격적이어도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건, 그것이 이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메시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시금 돌아보면 이 드라마의 제목은 <죽어야 사는 남자>다. 거기에는 이미 아이러니가 들어있다. 무엇이 죽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무엇이 산다는 뜻일까.

사실 ‘죽어야 사는 남자’란 아마도 백작을 말하는 것일 게다. 그는 중동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바로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 남다른 노력을 통해 오히려 성공을 거둔 남자다. 그는 딸을 찾기 위해 한국에 오고 엄청난 재력으로 딸을 얻으려 했지만 그건 가능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확인한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생긴다. 모든 걸 잃을 위기에 처해 딸의 집에 얹혀 지내는 처지가 되는 그 순간에 그는 비로소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죽어야 사는 남자>는 바로 이런 삶의 아이러니를 담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겉보기에 좋아 보였던 많은 것들이 우리네 삶의 실체는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그 겉치레가 걷어내지는 어떤 위기상황에 처할 때 비로소 삶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 죽어야 할 것은 ‘겉치레’고 그래서 살아나는 건 ‘삶의 실체’가 아니냐는 것.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외딴 섬에 떨어진 백작과 가족들의 상황을 우리는 그저 새드엔딩으로만 보게 되지 않는다. 지금껏 드라마가 흘러왔던 과정들을 떠올려보면 그 위기상황이 그들을 다시금 삶의 본질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조금은 과장되고 웃음이 섞인 블랙코미디로 읽히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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