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정도 지나서 영화가 종영되고 나면 지금의 관심들이 사그라질까 우려스럽죠. 걱정도 되고. 과거에도 그러한 경험들을 7년 동안 많이 겪었으니까요.”

-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박찬동 인화학교 대책위 집행위원장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장애인 성폭력 문제에 무심하기만 했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영화 <도가니>. 나는 이미 300만이 넘는 관객이 격노했다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못한 게 아니라 후유증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 리뷰 기사조차 피해 다니는 형편이었다는 말이 옳다. 필요 이상으로 묘사가 세세하고 폭력적이라는, 그래서 스크린 앞에 앉은 후 몇 분 안에 후회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장애가 있는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성폭력 장면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그러나 지난 2일 MBC <시사매거진 2580> ‘아직 끝나지 않은 광주 인화학교’에 이어 4일에 방송된 MBC

‘도가니, 영화보다 아팠던 이야기’를 보고난 다음 결국 영화표를 예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욕망을 채우는 인면수심의 무리들, 그리고 그들을 처벌하지 않는 사회, 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피해자들이 겪은 끔찍한 비극을 그저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자각이 들어서다. 사건이 만천하에 공개 된지 6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인화학교, 그리고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2, 제3의 인화학교 피해 실태들을 <시사매거진 2580>이, 2005년 최초 고발 당시의 허망하기 짝이 없는 재판 결과와 그 후 지난했던 싸움을

이 되짚어 봤는데 어쩌면 애써 사건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나 같은 무책임한 외면이 사건 은폐에 일조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을 보고 섬뜩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해자는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등 교직원, 그리고 피해자는 바로 그들이 가르치던 청각장애 학생들. 2005년 피해자와 학부모측이 경찰과 검찰에 고발했으나 아무런 처벌이 없자 결국

에 제보하게 됐고, 그해 11월 1일

은 은폐된 채 수년간 자행 되어온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언론 최초 보도했다. 믿기 어려운 진실에 세상은 들끓었고 모두가 끔직한 범죄에 대해 바로 지금처럼 분노했었다. 이내 검찰 수사가 진행됐으며, 이후 국가인권위의 조사를 통해 추가 가해자 4명이 더 밝혀져 고발 조치됐으니 당연히 사람들은 합당한 처벌이 이뤄질 줄 알았다. 나 또한 사건이 잘 해결됐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게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재판 결과는 어이없었다.

재단 설립자의 장남이자 교장인 김 씨와 박 모 교사는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2심에서 집행유예 판정을 받고 풀려났다고 한다. 심지어 고소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은 교직원도 있단다. 상식을 벗어난 일들은 이후 학교 안에서 또 다시 벌어졌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교사 네 명이 파면 또는 해임의 중징계를 받았던 것. 더구나 공소 시효가 지나 처벌을 면한 교직원들을 모두 복직시켰고 그중 한명은 지금까지 재직 중이라 하니 아연실색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위원회에게 고발당하고 검찰로부터 수사를 당하고 법원의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이 범죄자들을 징계하지 않았다는 게 모두지 믿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 학생들 몇몇은 퇴교를, 목격 증언을 한 학생들은 교장에게 반성문을 써야만 했다니 그 얼마나 기구 절창한 심정이었겠는가.








이 사건이 지금까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당시의 변호사, 형사, 검사, 판사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번 기회에 장애인들의 복지 실태를 재점검하고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시사매거진 2580>에 따르면 장애인 성폭력은 날로 증가 추세라고 한다. 특히 지적 장애 여성의 경우 피해를 당하더라도 날짜나 장소 등 사실관계를 제대로 기억 못해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는지조차 몰랐던 한 지적 장애 여학생은 한 달 사이 열여섯 차례나 성폭행을 당했으나 가해자들의 처벌은 1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재판 시기를 수능시험 이후로 미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앞서 인화 학교 사건과 마찬가지로 가해 학생 부모가 돈으로 합의를 했기 때문이라는데 돈이 죄질을 좌지우지하는, 처벌을 경감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주시는 4일 족벌재단 우석(인화학교)의 설립허가를 취소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로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일개 학교 폐쇄는 문제를 회피한 채 시험지를 없애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의 마지막 멘트에 공감한다. 한 작가가 개탄하는 심경으로 글을 쓰고, 누군가가 그 글에 공감하여 영화를 만들고, 또 그 작품이 흥행에 성공해야만, 그제야 사건이 재조명 받게 되는 이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대책위 집행위원장의 말대로 별다른 대책 마련 없이 이 관심이 사그라질까, 그것이 두렵다. 누구 나무랄 것 없이 우선 나부터 책임감을 평생 잃지 않길 다짐 또 다짐해본다. (영화 <도가니>를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들은 <시사매거진 2580>과

은 imbc에서 무료로 다시보기,

은 무료 다운로드도 가능하니 꼭 봐주시길 부탁드린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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