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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아이피’ 박훈정 감독의 노골적 여성혐오를 어찌할꼬
기사입력 :[ 2017-08-29 13:20 ]


‘브이아이피’ 감독은 시체가 아닌 여자를 상상할 능력이 있을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박훈정 감독의 <브이아이피>는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화이다. 분단 배경의 <악마를 보았다>. 박훈정이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가였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모르는 관객들이라도 보는 동안 당연히 눈치를 챘을 것이다. 초반에 싱겁게 발각되어 잡히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연쇄살인마,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나쁜 주인공(들)이 살인마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제불가능한 인명피해, 그리고 역시 이상할 정도로 카타르시스가 결여된 결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이 영화의 ‘VIP’는 연쇄살인마 김광일(이종석)이다. 지금까지 수십 명의 여자들을 죽였고 앞으로 계속 더 죽일 생각인데,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그를 어쩔 수 없는 건 그가 2년 전에 CIA와 국정원이 남한으로 데려온 기획 귀순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 남자가 개입하는데, 하나는 어떻게든 그를 체포하려고 발악하는 형사 채이도(김명민), 다른 하나는 어떻게든 성질을 죽이고 김광일을 국정원과 CIA 관리하에 두려는 국정원 직원 박재혁(장동건), 마지막은 김광일을 잡으려 남한으로 내려온 북한 보안성 공작원 리대범(박희순)이다. 시대배경은 2011년인데 (모두가 폴더폰을 쓰고 있다) 이 정도면 눈치 빠른 관객들은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나 검색에 들어갔을 것이다.



<브이아이피>는 진지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삽입되는 순간 모든 한국영화에 여벌의 무게감을 부여하는 분단 상황이 있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가장 큰 재앙이 주인공의 상상력의 결여와 어리석음이라면, 이 영화에는 당연한 정의구현과 범죄예방을 막는 시스템의 뒷거래가 있다.

하지만 이 심각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브아아이피>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세계의 논리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북에서 온 연쇄살인마는 분명 예외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아무리 예외적이라고 해도 영화가 다루는 세계에서 그 캐릭터를 다루는 과정을 이치에 맞게 설득력 있게 그린다면 그 이야기는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기본 설정에 이야기의 논리가 끌려다닌다. 절대로 손을 댈 수 없는 연쇄살인범이란 설정을 영화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세상이 뒤틀리는 것이다. 당연히 영화를 보면서 시스템을 비판하는 대신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왜 저 바보들은 저기서 가만히 있지?”라는 혼잣말을 무한반복하게 된다.



이야기를 꾸려가는 캐릭터들 모두 지루하기 짝이 없다. 모든 영화가 독창적이거나 창의적인 캐릭터를 창조할 필요는 없다. 우선순위에서 아이디어나 액션에 캐릭터의 개성이 뒤로 밀리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브이아이피>의 캐릭터들은 심심하다. 가장 심심한 인물은 역시 ‘서정적인 연쇄살인마’를 의도했다는 이종석의 김광일이다. 요새 세상에 고전 소설을 읽고 생상스의 음악을 듣는 연쇄살인마처럼 지루하고 뻔한 캐릭터가 있을까? <양들의 침묵>은 30년 전 영화다. 이미 패러디의 패러디의 패러디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나머지 캐릭터들도 이상할 정도로 캐릭터와 배우들을 가볍게 쓰고 있다. 주먹질과 욕이 일상화된 폭력경찰 채이도나, 영화 내내 목소리를 깔고 눈을 부라리는 것이 전부인 리대범은 모두 닳디닳은 스테레오타이프이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발전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장동건인 국정원 직원 박재혁은 그냥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기계일 문이다. 이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작가의 인위적인 저지를 받기 때문에 하는 일의 절반 이상이 김광일을 보고 억울해하는 것이다. 논리와 상관없이 억울함을 잔뜩 느끼고 싶은 관객들에겐 추천할 수 있겠다.



가장 불쾌한 건 이 영화의 선정성이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이를 극적 도구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이해시키려면 그 이유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초반의 강간 고문 살해 장면은 그냥 선정적인 이유로만 존재할 뿐이다. 박훈정의 다른 영화들도 그랬지만 이 영화의 여성혐오는 노골적이다. 이 영화의 여자들은 대부분 시체이거나 시체가 될 예정이거나 폭행피해자다. 이 정도면 박훈정이 시체가 아닌 여자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브이아이피>를 만든 사람들은 아마 자기네들의 진지함을 믿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입증되지 않는 한 그 진지함은 공허하다. 이 영화에는 기계적인 억울함과 양아치스러움을 지울만한 내용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브이아이피>스틸컷, 메이킹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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