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이 건드리는 언론적폐, 그것 하나 만으로도

[엔터미디어=정덕현] 사실 SBS 월화드라마 <조작>은 그 이야기 전개가 허술하다. 대한일보의 구태원(문성근) 상무가 언론을 통해 여론 조작을 하는 이야기지만, 어찌 보면 드라마 자체가 이야기를 조작하는 느낌이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보다는 작가가 의도하는 방향이 이미 설정되어 있고, 그래서 그 설정된 방향대로 전개된다. 인물들은 그래서 스스로 행동한다기보다는 이리저리 휘둘리며 작가가 설정한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바쁘다.

경인항으로 남강명(이원종)이 들어온다는 거짓 정보에 모두 그 곳으로 모이는 한무영(남궁민), 이석민(유준상), 권소라(엄지원).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지고 진짜 남강명이 들어온다는 궁평항으로 달려가는 그들. 기자와 피해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가짜 남강명이 살해당하고, 진짜 남강명은 그 사이 모두를 따돌리고 도망치며 그 사실을 뒤늦게 한무영과 이석민 그리고 권소라가 알아차리는 그 과정들은 너무 작위적이다. 여론 조작을 해온 적폐 언론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드라마지만, 이야기 전개 자체가 조작된 느낌이다.

시청자들이 느끼는 답답함이나 허술함은 바로 이처럼 목적을 전제하고 그 방향성대로 인물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작위적인 전개에서 비롯된다. 그나마 이 허술함을 어떤 무게감으로 눌러주고 있는 건 구태원 역할을 하는 문성근 같은 배우의 리얼한 연기 덕분이다. 어째서 지금처럼 시의적절한 시기에 <조작>은 언론 적폐의 문제를 이렇게 허술하게 다뤘을까. 좀 더 섬세하고 디테일이 살아있게 다뤘다면 그 반향은 지금의 몇 배는 됐을 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답답함과 허술함을 이겨내는 힘이 <조작>에는 존재한다. 그것은 적어도 작가가 애초에 의도하고 있는 방향성이 시청자들이 열망하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 현재 현실로 드러나고 있고 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언론 적폐 청산에 대한 갈망이다.

마침 MBC와 KBS가 총파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지난 10년 간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이미 지난 촛불 정국 때 광화문 거리에서부터 드러난 바 있다. 물론 그렇다고 기자들이나 PD들이 엇나가는 방송사의 억압에 저항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저항들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을 핍박하고 한데로 내몰며 눈 하나 까닥하지 않던 경영진들이다.

언론 적폐 청산에 대한 갈망들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개봉한 <공범자들>이 다큐 영화로서 무려 15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사실이 그렇다. <공범자들>은 지난 10년 간 벌어진 공영방송의 추락 속에서 갖은 핍박을 받아가며 끝까지 저항해온 PD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의 방송사들이 왜 총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가 낱낱이 들어있는 이 영화에 관객들은 기꺼이 지지의 뜻을 표하고 있다.



최근 벌어진 MBC <리얼스토리 눈>의 배우 송선미 씨 남편 피살사건에 대한 과잉 취재 논란 역시 이런 갈망에 대한 징후의 하나다. 결국 외주제작된 프로그램이 게이트키핑이 되지 않은 채 시청률에 경도되어 자극적으로 흐를 때 나올 수 있는 결과가 이번 사건이라는 것. 사측은 외주제작에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거꾸로 외주제작사측의 입장은 다르다. 이미 외주사 작가들과 PD들 사이에서 <리얼 스토리 눈>은 “악명이 높다”는 것이다.

<조작>이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그 허술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론 적폐 청산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얻는 데는 성공하고 있다. 그 이야기가 어떤 작위적으로 그려지든 그 결과를 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대중들이 진짜 원하는 건 이것이 그저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 되는 것일 테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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