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 쏟아지는 관심, 여론은 민감해졌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여론이 민감해졌다. 과거 같으면 이만큼 큰 문제로 비화될까 싶은 사안들이 최근에는 한 작품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파장을 만든다. 영화 <브이아이피>의 여혐논란, <청년경찰>의 중국인 동포 비하 논란에 이어 드라마 <병원선>의 간호사 왜곡 논란도 터졌다. 예민해진 여론은 기대했던 작품의 예봉을 꺾어버리기도 하고, 때론 잘 나가던 작품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고 또 그것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영화 <브이아이피>는 애초 이종석이 악역 변신을 한다는 소식과, 장동건, 김명민 같은 믿고보는 배우들의 출연, 그리고 <신세계>로 주목받은 바 있는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개봉된 후 영화는 생각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여혐 논란’이 불거지면서 영화는 갈수록 외면 받고 있다. 이 만큼의 물량과 초호화 출연진들이 대거 등장하고도 현재 100만 관객을 간신히 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영화 <청년경찰>은 상영 초기만 해도 재밌다는 입소문을 타고 의외의 선전을 기록했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틈바구니에서도 가벼운 코미디 장르로서 500만 관객을 돌파한 것.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중국인 동포 비하 논란이 불거지면서 흥행가도에 먹구름이 끼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거주 조선족들을 너무 왜곡된 시각으로 그렸다는 것.



한편 최근 방영되며 그 첫 방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MBC 드라마 <병원선> 역시 의외의 암초를 만나 순항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간호사들을 너무 왜곡되게 그렸다는 것이다.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겠지만, <병원선>의 간호사들이 너무 한가하거나 무능하게 그려졌고, 그 복장 또한 몸매를 부각시키기 위해 실제로는 쓰지 않는 옷을 입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대중문화 콘텐츠들에 대해 논란이 계속 이어지게 된 건 과거와는 달리 여론이 훨씬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브이아이피>의 여혐논란 같은 경우는 최근 들어 대중들에게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 됐다. 성 평등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이아이피>는 물론이고 다양한 콘텐츠들 속에서 여성들이 당연하게 그려져왔던 성차별적인 모습에 대해 이제 대중들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과거에도 있었지만 문제시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청년경찰>이 겪는 중국인 동포 비하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의 국내 거주가 점점 늘고 있고, 다문화 가정 또한 급증하고 있는 요즘 이러한 특정 민족에 대한 불편한 시각은 더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깨지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대중들에게는 이런 특정 민족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이 투영된 작품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병원선>의 간호사 왜곡 논란은 과거부터 드라마에서 종종 비화되곤 했던 직업인 비하 논란의 연장선에 있다. 드라마가 아무 생각 없이 그려낸 특정 직업에 대한 묘사가 실제 해당 직업인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이 논란에는 몸매가 부각되는 간호복이라는 시선 속에 투영된 간호사를 직업인이 아닌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이 주는 불편함도 뒤섞여 있다.

여론이 민감해지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는 이런 논란에 대해 제작사 측에서 상당히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이아이피>의 여혐논란에 대해 박훈정 감독은 자신의 부족한 성 의식을 자성하는 인터뷰를 내보냈고, <청년경찰> 측도 해당 논란에 대한 사과발표와 함께 중국 동포 측의 요구사항을 듣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원선> 역시 시청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과발표와 함께 간호사들의 복장을 바꾸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확실히 지금은 대중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은 콘텐츠로서는 당장의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향후에는 콘텐츠나 우리네 사회에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차별적 시선이 담겨진 것들이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고 만들어졌던 내용들이 이제는 좀 더 세심한 배려와 숙고가 필요하다는 걸 제작자들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한 가지의 빗나간 시선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최근 민감해진 여론과 논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브이아이피><청년경찰>스틸컷,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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