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각도로 짚어본 ‘김생민의 영수증’의 성공신화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누가 알았을까. 고작 영수증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열광할 줄. KBS <김생민의 영수증>은 지금 방송가에서 가장 뜨거운 예능 프로그램이다. 팟캐스트 <송은이&김숙 비밀보장>의 한 코너로 시작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뒤 그 타이틀 그대로 지상파에 진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4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6부작이라는 시험 편성이기는 하지만 3개월도 못돼서 종영되는 방송이 속출하는 요즘 예능계에서 <김생민의 영수증>이 써내려가는 성공신화는 특별히 눈여겨볼만 하다. <삼분지계>의 세 평론가 역시 이 프로그램의 이례적 인기를 주목하고 그 원인을 다각도로 짚어봤다. 정석희 평론가는 오랜 개그맨 동료로서 인연을 이어온 김숙, 송은이, 김생민 세 MC의 탄탄한 호흡에, 김선영 평론가는 시대적 초상으로서의 의미에, 이승한 평론가는 제작사의 콘텐츠를 읽는 힘에 강조점을 두었다.



◆ 세 MC의 든든한 호흡

김생민은 얼마 전 MBC <라디오 스타>에서 출연만 했다 하면 인기는 따 놓은 당상이던 KBS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에 캐스팅 됐으나 울렁증으로 인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며 아쉬워했다. 김구라가 비슷한 케이스로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동료들이 누구냐고 다그치듯 묻자 자신은 그런 식의 개그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은 김생민. 남의 안타까운 사정을 웃음거리로 삼고 싶지 않다는 소신 발언이다. 김생민의 호감도가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문득 <김생민의 영수증> 첫 회 때 그가 김숙에게 해준 조언이 생각났다.

“지금 저축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해.”

저축 덕인지 그는 이제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가치관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김생민의 영수증>을 함께 진행하는 송은이와 김숙 역시 폭로, 이간질, 비하와는 거리가 먼 개그맨들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김생민이 저렇게 재미있었나?’ 놀라게 되는데 그게 다 송은이와 김숙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기를 살려주기 때문이다. 적재적소에서 추임새를 넣는가 하면 고개를 끄덕여주고, 이들은 서로 옥신각신 툭탁거리거나 스스로를 낮춰 소재로 삼을지언정 자리에 없는 타인을 끌어내 헐뜯고 망신 주는 일은 없다.



호통과 독설, 생색내기 대신 공감과 배려와 격려가 있는, 허세기 쫙 뺀 착한 예능 <김생민의 영수증>에 박수를 보낸다. 듣자니 이 프로그램을 보고 적금을 들었다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란다. 무심히 박장대소 하다가 허를 찔린 양 뜨끔했다는 이들도 많다. 조만간 금융 관련 단체에서 상을 주겠다고 부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김구라와 김생민이 달랐던 이유

최근 김구라는 <라디오 스타>에 게스트로 출연한 김생민의 ‘근검절약’을 무시하는 언행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꽤 흥미로운 사건이다. 김구라야말로 생계를 최우선순위로 한 ‘먹고사니즘’의 시대에 대표적인 아이콘처럼 떠오르며 승승장구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늘 가정사를 앞세운 ‘생계형 가장’의 이미지로 재기해왔고, 연예계 재테크 달인으로 통하며 경제 관련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을 도맡아왔다. 그랬던 김구라가 지금은 ‘생계’라는 유사 키워드를 공유하는 김생민과 비교당하며 비판받고 있다. 인성 논란은 차치하고, 두 사람에 대한 평가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김구라의 먹고사니즘은 정신적 가치나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세태를 반영했다. 이는 ‘남을 물어뜯는’ 것으로 웃음을 이끌어내는 그의 개그 스타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김생민의 근검절약은 성격이 다르다. 계획에 없는 소비에는 무한 ‘스튜핏’을 날리면서도, 기부 영수증에는 ‘멘탈에 도움이 된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그의 말에는 정신적 가치도, 타인의 고통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 태도가 있다.

그리하여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돈을 모으기 위해 친구도 만나지 말고 문화생활도 하지 말라는 ‘극약처방’에만 주목한다면 이는 김구라의 독법에 그치는 것이다. 그 처방은 기본적으로 고민의뢰자의 ‘절실함’에 대한 공감에 기반한다. 사람들이 그의 ‘스튜핏’ 판정에 더 크게 웃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욕망마저 원천봉쇄해야 하는 시대’에 자꾸만 절약에 실패하는 우리에 대한 자조와 위로가 깔려 있다.



◆ 익숙한 캐릭터를 새롭게 활용하는 법을 스스로 증명하는 콘텐츠랩 비보의 승리

시험합격 턱을 낸 사연의 주인공에게 ‘굳이 시험에 붙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다녀서 돈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 지적하는 김생민에게 송은이가 묻는다. 그래도 좋은 일이 생기면 주변에 알리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 아니냐고. 김생민이 답한다. 자신은 이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걸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노라고. 동명의 팟캐스트에서 지상파 TV까지 진출한 <김생민의 영수증>은, 조언을 해주면서도 자신의 말은 10%만 반영하라고 이야기하는 극강의 자린고비 김생민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성공한 쇼다.

김생민이 한 푼 두 푼 아껴서 지금의 토대를 닦은 서민형 재테크의 달인이라는 사실이야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지만, <김생민의 영수증>이 본격적으로 팟캐스트의 형태로 청취자들을 사로잡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절약 에피소드는 그저 조금 독특한 절약담 정도로 소비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커피는 신동엽이 살 때 먹는 것”이라 말하는 이 자린고비 캐릭터를 단순한 기인인 것처럼 다루는 대신 현명한 소비를 돕는 재무 컨설팅 캐릭터로 재발견한 덕분에, 김생민은 방송 25년 만에 지상파 TV에서 첫 타이틀 롤 프로그램을 얻을 수 있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캐릭터를 재발견해서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일. 이는 <김생민의 영수증>을 세상에 내놓은 산파들인 제작사 콘텐츠랩 비보가 꾸준히 해 왔던 일이다. 실력과는 무관하게 일이 줄어들 무렵,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세상에 선보이고 그를 통해 다시 대세로 떠오른 이들이 바로 송은이와 김숙 아닌가.

<김생민의 영수증>을 진행하는 세 사람의 캐릭터는 팟캐스트 이전이나 이후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자신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기존 방송가에 제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직접 선보임으로써 공간을 마련해 낸 것이다. 그러니 <김생민의 영수증>은 극강의 자린고비 김생민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의 성공이 단순한 요행이나 한 번 있던 행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낸 콘텐츠랩 비보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레잇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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