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스타 MC들이 이효리로부터 배워야할 것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낮은 목소리] 이효리는 스스로 “차근차근 내려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것”이라고도 했죠. 최고의 위치에 있던 스타가 이런 행보를 선택한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대부분은 최고의 위치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 대중들의 기억에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효리는 달랐습니다. MBC <무한도전>에서 처음 그 얘기를 꺼냈을 때 과연 저 말이 사실일까 싶었죠. 하지만 JTBC <효리네 민박>을 보니 그 말이 모두 진심이었고, 또 이효리 스스로도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 상당히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요가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산책을 하며 하다못해 쇼핑을 하는 데서도 그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아이유와 함께 이효리가 차를 타고 가다 도로 위에 있는 개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인을 찾아주러 갔을 때, 우연히 만나게 된 아이유의 팬이 눈물까지 쏟아내며 아이유를 반기는 모습을 보고 이효리는 두 가지 감정이 겹쳐졌다고 합니다. 하나는 항상 주목받던 자신이 이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고 아이유 같은 후배들이 주목받는 그 상황이 주는 아쉬운 감정이었죠. 하지만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아이유에게 애정이 있어 마치 엄마가 자식 잘되는 걸 보는 것처럼 기뻐하는 감정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이유에게 “신이 보내주신 선물” 같다며 “고맙다”고 했죠.



그런데 “차근차근 내려오고 있는” 이효리의 이 모습에 대해 어찌된 일인지 대중들은 더 열광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톱스타로서의 아우라 같은 걸 하나하나 지워내고 대신 보통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걸 자꾸만 드러내려 합니다. 많은 스타들이 정상에 오르려 하고 그 위치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행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때 이효리는 예능에서도 톱 MC였죠. KBS <해피투게더> 같은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예능은 스타 MC들의 전성시대였습니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물론이고 이경규, 신동엽, 김구라 등등 스타 MC들은 그 정상에서 무수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쥐락펴락 했죠. 어떤 프로그램이냐가 아니라 어떤 스타 MC가 캐스팅되었느냐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지우지했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는 이제 지났죠. 본격적인 리얼리티 예능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스타 MC들은 더 이상 과거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중심에 서서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스타 MC들은 상대적으로 주변에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래서 옛날 방식으로 진행하다가는 ‘옛날 사람’ 취급을 받고 나아가 비호감이 되거나 혹은 논란에 휘말리기까지 합니다.

최근 벌어진 <라디오 스타> 논란 역시 이런 시각으로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과거 방식 그대로 했을 뿐인데 그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왜 이렇게 불편해졌는가는,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죠. 1인자가 이끌던 스타 MC들은 그래서 그 1인자라는 타이틀이 이제는 족쇄가 됩니다. 그건 2인자, 3인자들을 소외시키는 일이 되고 그런 일은 이제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니까요.



이효리의 ‘차근차근 내려오는’ 행보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광은 그래서 이해가 됩니다. 그녀는 물론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이지만, 그것이 지금의 시청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에게 바라는 모습이니 말입니다. 1인자의 위치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서 시청자들 옆자리에 와 있는 그런 존재로서의 연예인.

한때 최고의 위치에서 그 대접을 받아온 스타가 그런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내려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길만이 연예인들이 그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효리는 차근 차근 내려오는 중이고, 대중들은 그렇게 우리 옆으로 오고 있는 그녀를 반기는 중입니다. 많은 한 때 스타 MC였던 분들이라면 되새겨볼 대목일 겁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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