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 천우희가 그려내는 시용기자라는 시대의 그림자

[엔터미디어=정덕현] “너 파업 때 여기 왜 지원했어?”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에서 앵커인 김백진(김주혁)은 시용기자로 들어온 이연화(천우희)에게 그렇게 묻는다. 애초부터 시용기자인 그녀를 용병기자라 부르며 기자로서 인정하지 않던 그다. 15명이 파업으로 해고됐는데 그 자리에 그녀가 시용기자로 뽑혀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김백진 입장에서는 그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게 당연하고 기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김백진의 질문에 이연화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한다. “기자가 되고 싶어서요. 기사를 쓰고 싶어서요.” 그것은 그녀의 진심일 것이다. 그 진심을 뒷받침하는 건 그녀가 이 아르곤 팀에 와서 했던 일련의 절실한 취재들이다. 모두가 그냥 지나쳤던 진실들을 그녀는 끝까지 추적해 증거들을 찾아내곤 했다. 물론 이건 <아르곤>이라는 드라마가 상상력을 더해 그려낸 것일 뿐, 모든 실제 시용기자들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시용기자라는 낯선 지칭은 최근 몇 년 간 갑자기 생겨났다. MBC, YTN 등에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경영진의 압박에 대해 총파업으로 맞섰던 기자들이 대거 해직되면서, 경영진은 시용기자라는 꼼수 채용을 결행했다. 1년 간 계약기자로 일하고 잘 하면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는 방식이었다.



결국 이건 경력기자들을 뽑으면서 파업 참여 같은 노조활동을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시도였다. 물론 이들도 노조에 가입할 수는 있겠지만 1년 후 재계약을 해야 하는 처지에 사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노조는커녕 사측이 요구하는 것들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이들을 MBC 기자들은 사측에 복종하는 “영혼 없는 로봇기자”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2012년 MBC 기자들이 시용기자 선발에 관해 내놓은 공식 발표 자료를 보면 “시용은 수습보다도 불안정한 고용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그 일정기간이 끝날 동안 사측의 눈치를 보며 일해야 하고,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사측의 필요에 의해 가차 없이 잘려나가는 게 그들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MBC 기자들은 그래서 이 시용기자들 역시 “나름의 사정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이 “동료들의 등에 칼을 꽂고 사측의 꼭두각시 역할을 자처하는 대체인력”이라는 점에서 “언론인으로서 동료애를 나눌 생각이 없다”는 걸 명확히 했다. 그만큼 이들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역할이 가진 잘못됨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



MBC 공채 출신의 <아르곤>의 이윤정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이 드라마가 다루는 ‘시용기자’가 특정 방송사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기 위해 배려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시용기자들이 가진 고민과 갈등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르곤> 역시 주인공을 시용기자로 세운다는 것이 부담이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곤>이 시용기자를 굳이 주인공으로 세운 까닭은 그것 역시 우리 시대의 아픈 방송 언론의 자화상의 한 자락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채용을 앞두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인턴들의 모습 또한 거기서는 느껴진다. 기자가 되고 싶은 똑같은 열망을 품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측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을 제 맘대로 움직이기 위해 그들끼리의 싸움을 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 시대의 치졸함. 결국 그 비뚤어진 시스템을 굴리는 이들이 모든 문제의 원천이 아닌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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