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소녀시대’, 복고 청춘물 그 이상을 담아야 하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새 월화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는 1979년 대구의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의 추억들이 조용필이나 혜은이의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며 소록소록 피어나고, 여고생이라는 청춘들이 겪는 두근두근 첫 사랑의 설렘과 끈끈한 친구들과의 우정이 첫 회에 이 드라마가 그려낸 이야기였다.

18세 소녀 이정희(보나)가 뭇 여고생들의 마음을 훔친 완벽남 손진(여회현)에게 사랑에 빠지고, 그런 그녀를 미팅에서 만난 배동문(서영주)이 짝사랑하는 청춘 멜로의 구도가 세워졌다. 여기에 서울에서 전학 온 엄친딸 박혜주(채서진)가 등장하면서 결코 쉽지 않을 이정희의 애정사를 예고한다.

사실 이러한 청춘 멜로 구도가 특별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란제리 소녀시대>에 시선이 가는 건 그 배경이 1970년대 말의 풍경 안에 녹아 있어서다. 교련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이나, 공장 여직공들이 미싱을 돌리는 모습이나 체벌이 일상화된 학교의 모습들은 당대의 어두웠던 현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돌아보는 추억담의 따뜻함이 담긴다.



잿빛 현실들이었을 지라도 지나간 것들은 다 아름답게 생각된다는 저 복고가 가진 마법 같은 힘이 거기에 숨겨져 있다. 하지만 이런 복고의 힘 역시 우리는 꽤 많은 콘텐츠들을 통해 경험한 바 있다. 가장 먼저 지목되는 건 역시 <응답하라> 시리즈이고, 이정희와 다섯 친구들의 모습에서 떠오르는 건 영화 <써니>의 7공주들이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그래서 첫 회는 그 시대의 추억을 소환하는 힘으로 채워졌다고 해도 다음 회부터 이 드라마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내지 않으면 불리한 지점에 서있다. 이미 많은 복고의 힘을 장착했던 콘텐츠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재연만으로는 <응답하라> 시리즈 등으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시선을 계속 잡아끌기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첫 회가 준 쏠쏠한 재미에도 불구하고 <란제리 소녀시대>에 드리워진 불안감이다. 8부작이라는 미니시리즈로서는 짧은 회차를 갖고 있고, 첫 회에 청춘 남녀들의 엇갈린 사랑을 전편에 걸쳐 깔아놓았던 터라 앞으로 이 이야기에 드라마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복고 청춘물만으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기대를 채워줄 수 있을까.



그나마 한 가지 기대를 갖게 하는 지점은 이 복고이야기가 여성들의 시선에 맞춰져 있다는 부분이다. 얼핏 등장하는 것들이지만 지독한 보수주의자이자 남아선호의 면면을 보이는 정희의 아버지(권해효)나, 여학생들에게 반인권적인 체벌을 가하는 선생님 같은 인물들이 그려내는 비뚤어진 시대의 불평등 같은 요소들이 정희(로 대변되는 당대 여성들)의 성장담과 함께 어떤 현재적인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물론 이건 기대감일 뿐, 실제 이 드라마가 그런 방향으로 포커스를 맞출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저 추억을 환기하는 복고 청춘물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하다는 것이다. 복고가 힘을 내려면 어떤 식으로든 그 과거가 현재에 어떤 울림을 주어야 가능하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과연 왜 지금 우리가 이 드라마를 봐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줄 수 있을까. 2회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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