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소녀시대’, 고교시절 사랑과 우정사이 그 공감대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월화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는 사실 뻔한 이야기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평범한 여고생 보나(이정희)는 대구의 킹카 손진(여회현)을 짝사랑하고, 손진은 서울에서 새로 전학 온 퀸카 박혜주(채서진)에게 구애를 한다. 보나는 박혜주에게 질투와 시기를 느끼며 거리를 두려 하지만,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고 친구가 되려하는 박혜주에게 마음을 열고 우정을 키워가는 중이다. 그러니 사랑과 우정 사이에 생겨나는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이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삼각관계가 끝이 아니다. 보나를 미팅에서 만나 짝사랑하는 순수남 배동문(서영주)은 물에 빠진 그녀를 구해주고, 이사 온 박혜주의 집에서 수리를 하다 떨어진 목재를 대신 몸으로 받아낸 주영춘(이종현)에게 박혜주는 왠지 마음이 이끌린다. 이러니 관계는 삼각이 아니라 오각관계로 더 복잡해진다.

청춘 멜로의 엇갈린 사랑과 우정사이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 구도는 그리 신선하다고 보기 어렵다. <응답하라 1988>의 구도에 <써니>의 우정이 겹쳐지고 나아가 영화 <친구>의 갈등 구조가 어른거리지만 거기서 흥미로운 상황들을 모두 가져왔다고 해도 새롭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드라마를 보는 마음은 꽤 푸근하다. 어딘지 훈훈한 느낌마저 준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혹자는 그것이 1979년 대구라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담고 있는 이 드라마가 가진 복고의 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대의 풍경을 가져왔다고 해도 <란제리 소녀시대>가 보여주는 이 시대의 그림들이 그리 정교한 건 아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사투리가 영 거슬린다는 것. 타지 사람들은 잘 몰라도 경상도에 거주하는 분들이라면 대구 사투리와 부산 사투리의 확연한 차이를 느낄 것이다.

또 1970~80년대의 풍경을 가져왔어도 어딘지 공감가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선생님을 “쌤”이라고 부른다거나 선생님의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하는 등의 학생들의 모습은 지금과는 달랐던 당대의 학교 분위기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배경은 그 시대인지 몰라도 그 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지금의 학생이 그 때의 교복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

그러니 여학생들이 받는 교련수업이나 교실에서 체벌을 당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당대를 떠올리게 하기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어색한 지점들이 보일 수 있다. 특히 서울에서 온 박혜주라는 캐릭터는 이정희처럼 살아있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그저 서울에서 온 엄친딸의 캐릭터로 서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물론 잠깐 그녀의 아빠가 등장했지만 그 후로 그녀의 가족 이야기는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주인공 이정희의 관점으로만 다뤄지다 보니 다른 인물들의 세세한 이야기들이 부수적으로 담기며 입체감을 주지 못하는 부분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이런 난점과 단점들이 많은 이 드라마가 주는 훈훈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삼각 오각으로 얽힌 멜로 관계의 엇갈림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고적 향수를 담은 시대적 풍경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대신 그것은 누구나 고교시절이라는 청춘시대에 가졌던 그 순수했던 마음들이 주는 공감대에서 나온다.

시대가 어떻든,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든 그 상황 속에서 이 순수한 청춘들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이 들면 둔감해지기 마련인 많은 사건들, 이를테면 누군가를 만나 설렘을 갖는 그 순간순간들의 일들이 이들에게는 마치 당장 죽을 것 같은 절실함의 순수함으로 피어난다. 이것이 <란제리 소녀시대>가 가진 많은 빈 구석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시선이 머물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마치 첫사랑의 아련했던 그 기억 속에서 누구나 순수했던 그 설렘을 떠올리는 것처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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