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천호진의 피눈물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니

[엔터미디어=정덕현] “어 가고 싶어요. 나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날마다 죽고 싶었어. 내 노력만으로 안 되는 세상이에요. 이렇게 사는 거 진짜 지긋지긋해요. 남한테 무시당하고 멸시당하고 비참하고 초라하고 비굴하고 또 비굴하면서 사는 거 나도 못하겠어. 싫어. 아빠는 왜 가지 말라고 그러는데요? 왜 가지 말라는데? 나 나 정직원 될 수 있었어요. 근데 내 친구가 낙하산으로 내려왔어요. 걔 아빠 덕으로요. 이게 세상이에요. 내가 아무리 버둥대도 난 이미 자격미달이었어요. 학점도 스펙도 딸려요. 학교 다니며 알바하며 그러면서 학교 다니는데 학점을 어떻게 채워? 용돈 받아가며 학원이며 영어연수 다녀온 애들을 어떻게 이겨?”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신혜선)은 결국 숨기려 했던 속내를 아빠 서태수(천호진)에게 토로했다. 그토록 힘겨운 현실을 겪으면서도 애써 웃는 연습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서지안. 사실은 동생 서지수가 재벌가에서 잃어버린 딸이지만 엄마 양미정(김혜옥)이 그녀의 힘든 현실을 보고는 불쑥 거짓말을 하는 통에 자신이 그 재벌가의 친딸이라 생각하게 된 서지안이었다.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는 걸 알게 된 서태수가 딸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돌아온 건 대못 같은 말들이었다.



그 대못이 깊게도 박혔던지 아빠는 그 공원에서 그렇게 망연자실 한 시간이나 서 있었다. 그 한 시간 동안 이 흙수저 아빠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딸이 시작부터 ‘자격미달’이 됐던 이유는 오로지 자신이 흙수저이기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딸의 말대로 열심히 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돈이나 지위가 없으면 자신만이 아니라 자식들의 앞날까지도 막막해지는 세상이라니.

애써 딸이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야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그는 딸의 “가고 싶다”는 토로에 아빠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안하구나”라는 말 뿐이었다. 한강 천변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아빠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뒤늦게 다시 딸 생각으로 돌아왔다. 가슴에 대못을 박았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로 보내주려 택시로 돌아오는 길 아빠는 내내 억지로 웃는 연습을 했다. 이미 떠나버린 딸의 차를 따라가며 애타게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었지만.



<황금빛 내 인생>은 출생의 비밀과 뒤바뀐 운명이라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틀에 박힌 이야기구조를 가져왔지만 그 자체의 극적장치를 이용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질깃질깃하게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새로운 신분이 되는 과정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포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모든 패들을 다 드러내놓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이 다루려는 건 그 장치 자체가 아니라, 그 장치 속에서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이 우리네 현실의 무엇을 건드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친 딸을 거짓말을 해서라도 재벌가의 딸로 둔갑시키려는 엄마나, 제 아무리 친 딸이 아니라고 해도 선뜻 재벌가의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는 딸이나, 그 선택 자체보다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건 흙수저의 삶에 대한 공감이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 속에서 오죽하면 이런 엇나간 선택들을 하게 될까. 한 가족의 삶을 비틀어놓는 막장 같은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그 상황들이 만들어지게 된 막장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 황금(물질)이 그 삶을 좌지우지하는 현실 속에서 진짜 ‘황금빛(행복)’ 삶은 어떻게 얻어질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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