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에게 그것이 알고 싶다고 물을 수 있는 자유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자면) 일개 TV프로그램이 감히 전직 대통령에게 질문을 또 던졌다. 얼마 전에는 블랙리스트의 실체에 대해서 따지더니 이번엔 갖고 가신 그 돈 어떻게 된 거냐고 말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법적으로 유리해지기 위해서 인터뷰와 강연 등에서 스스로 했던 말조차 사실은 뻥이었다고 밝히는 데 한 점 부끄럼이 없던 대선 후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추석 연휴 밥상 위에 다시 끄집어냈다.

2007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BBK사건은 5,000명이 넘는 소액 주주들이 384억에 달하는 피해를 입은 주가조작 사건으로 10년이 지난 지금도 진실규명과 피해 보상이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최근 MB 정부의 기상천외한 적폐들이 하나둘 밝혀지는 상황 속에서 등장한 이 이야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생각보다 높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BBK 투자금’과의 관련성, 그 사이에서 사라진 384억 원의 행방을 추적한 방송은 지난주보다 2.8% 상승한 10.4%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높은 사회적 관심을 드러냈다.



당시 BBK사건은 정치적 성향과 지지를 불문하고 누구나 이명박 대통령 당시 후보의 명백한 아킬레스건이라 생각했었다. 수많은 정황 증거와 제보, 그리고 그 스스로 인터뷰와 강연에서 했던 발언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수많은 정황 증거들은 새빨간 거짓말이란 마법의 한마디에 다 물들었다. 검찰은 빨간색에만 반응했고 이명박 대통령을 아킬레스건조차 없는 아킬레우스로 만들었다. 오히려 그 문제를 파헤치던 사람들이 정치적 보복을 당하며 피해를 입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여전히 배고팠던 그는 ‘일하겠습니다’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이란 슬로건에 맞게 실제로 실천했고 부자가 됐다. 물론, 주어는 없다. 청와대와 외교부와 검찰이 민간기업인 다스의 소송에 관여한 흔적들이나, BBK 관련 사건을 맡았던 미영주권을 가진 미국 변호사가 LA총영사에 부임하는 등 이번 방송에서 등장한 파격에 파격이 거듭됐지만 광우병 시위 이후 [PD수첩]을 비롯한 방송가에 철퇴를 휘두른 이후 방송과 언론은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어졌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겪지 못한 방송사 파업이 이어졌고, 대형 연예 스캔들에 국가기관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은 지난 8년간 뿌리 깊은 불신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정권이 바뀐 지금, 대중문화 칼럼에서 정치 이야기를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정부 비판 성향으로 분류한 특정 연예인을 공격하려고 ‘프로포폴(propofol) 투약설’을 인터넷에 퍼트리는 여론 조작 계획을 수립했던 것으로 밝혀졌고, 2009년부터 ‘좌편향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해 문성근, 김규리, 김미화, 윤도현, 신해철 등 82명에 달하는 연예인과 문화인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퇴출하려는 시도는 실제 있던 일이었다. 심지어 국정원 심리전단은 특수공작이란 이름으로 문성근과 김여진의 나체 합성사진을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했다고 한다.

그런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것이 알고 싶다>의 도발적인 질문은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공중파 방송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이야기를 당돌하게 건드리니 누군가는 당황스럽겠지만, 이번 긴 추석 연휴에 여럿이 나눌 만한 적당한 주제를 방송이 던져준 셈이다. 이쯤 되고 보니 왜 그토록 언론과 방송을 입맛에 맞게 다스리려고 했는지, 그 열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BBK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새로운 사실을 밝히거나 답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물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방송이 본연의 물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여진다. 예능이나 해외 축구, 드라마를 본 사람들을 다 합친 것보다 주말 밤 머리 복잡한 BBK 사건을 다시 챙겨본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형태의 방송 장악, 블랙리스트 등의 시도로 여론의 불씨를 꺼트리고 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보 요청 자막을 보니 방송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왜곡하고 조종한 대가를 방송의 힘을 통해서 하나하나 돌려받을지도 모르겠다. 당분간 토요일 밤, 병맛 예능보다 더 밑도 끝도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드라마보다도 감정을 북받치게 만드는 이야기에 대중의 관심이 쏠릴 것 같다. 이 모두 그들이 뿌린 씨앗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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