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가득했던 KBS 추석 파일럿, 무엇이 문제였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이럴 바엔 굳이 파일럿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번 추석 명절은 꽤 긴 연휴 기간을 갖고 있던 터라 명절이면 늘 등장하곤 하던 파일럿 프로그램들 또한 꽤 많고 다양했다. 하지만 그 많은 파일럿들에 비해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파일럿은 많지 않았고, 어떤 파일럿들은 갖가지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이번 추석 파일럿에서 가장 뜨거웠던 건 이른바 ‘베끼기 논란’이다.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프로그램이거나 소재들이 반복되고 있었다는 것. 이번 추석에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유독 많은 파일럿을 낸 KBS의 경우 베끼기 논란이 두드러졌다. <줄을 서시오>는 이 논란이 집중된 프로그램이었다. 서울 곳곳의 명소와 맛집을 찾아가 길게 늘어선 줄을 같이 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콘셉트인 이 프로그램은 시작 전부터 JTBC <밤도깨비>와 거의 같다는 베끼기 논란이 터져 나왔다.

실제로 <밤도깨비>가 가진 핫플레이스를 찾아가 시민들과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내용을 주로 하는 그 내용은 고스란히 <줄을 서시오>와 겹쳐지는 면이 있었다. 물론 밤이 아니고 낮이라는 설정이 조금 다르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게 차별화라고 얘기하기는 어딘가 궁색하다. 이런 식의 파일럿은 이미 기존에 있는 콘셉트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정규화는 요원하다. 계속해서 베끼기 논란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 왔어요>도 역시 베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여행을 관찰하는 소재의 예능 프로그램은 너무나 틀에 박혀 있어 어떤 차별화를 꾀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남녀 간의 케미를 만들어가는 콘셉트는 이미 채널A의 <하트 시그널>이 보여줬던 내용이다.

<하룻밤만 재워줘>는 베끼기 논란과 함께 민폐 논란까지 겹쳐지는 불운을 겪었다. 이상민과 김종민이 무작정 해외로 날아가 현지인에게 하룻밤을 재워달라는 다소 과감한 소재였지만, 시작 전부터 나온 건 JTBC <한끼줍쇼>의 해외 숙박 버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들이었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그런 설정이 현지인들에게는 민폐가 아니냐는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사실 <한끼줍쇼>도 자리를 잡기까지는 초반에 민폐 논란이 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일반인들과의 접점을 만드는 프로그램들은 이 부분에 대한 확고한 대비책이 필요했다는 것.

또한 <100인의 선택>은 너무 흔한 먹방 프로그램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상 100인도 아니고 50명이 두 집을 찾아 이른바 맛 검증을 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러나 면전에서 판정을 하는 그 시스템이 과연 공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새로움이 없는 먹방의 재탕이라는 점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기에는 무리로 보였다.



그나마 이번 추석 명절 파일럿들 중 가능성이 보인 프로그램은 <1%의 우정>과 <건반 위의 하이에나> 정도다. <1%의 우정>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하루를 함께 보내며 우정을 쌓아가는 콘셉트로 김종민과 설민석이나, 배정남과 안정환의 관계 진전이 괜찮은 관전 포인트를 만들었다. 또 <건반 위의 하이에나>는 4명의 각기 다른 뮤지션들이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최종적으로 나온 곡이 발표되는 무대의 감동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아쉽게도 이번 KBS 추석의 파일럿 프로그램들은 지지보다는 비판을 더 많이 받았다. 그것도 파일럿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선함이 없어 ‘베끼기 논란’을 유독 많이 겪었다는 건 KBS가 한번쯤 짚어보고 가야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공영방송의 특성상 완전히 새로운 시도 같은 모험이 쉽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기존에 나온 소재나 형식은 일단 배제하는 것이 파일럿의 기본 자세가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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