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뭐 이렇게 웃픈 블랙코미디가 있지

[엔터미디어=정덕현] “저기 시간 있으시면 저랑 결혼 하시겠습니까?”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집주인 남세희(이민기)가 그 집의 하우스메이트인 윤지호(정소민)에게 던지는 이 질문은 뜬금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사실 서로 사귀던 사이도 아니고 어쩌다 한 집에서 지내게 된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간 있으시면”이라는 가정은 남세희가 가진 결혼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다. 그에게 결혼은 그의 삶에서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또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는 윤지호에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과 자기가 지내고 있는 집 그리고 자신과 함께 지내는 반려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가 엉뚱하게도 이런 영혼이 1도 없는 프러포즈를 윤지호에게 던지는 까닭은 자꾸만 주변에서 결혼을 하라는 압력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 무리해서 구입한 집의 대출금을 갚아주겠다는 부모의 제안이 그에게는 더 솔깃하다. 직장상사이자 친구인 마상구(박병은)는 은근히 그를 부추긴다. 자기라면 결혼 그 까짓것 “갔다 오겠다”는 것.



그런데 이런 엉뚱한 프러포즈에 윤지호의 답변이 기가 막히다. 자신도 모르게 “네”하고 말이 나왔던 것.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건 어렵게 구한 월세방에서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가 이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작업실로 나오게 됐지만, 그 작업실까지 찾아들어와 PD가 성추행을 하려하자 그 방에서도 나오게 된 처지 때문이다. 그는 기나긴 터널을 잠옷 바람으로 걷고 또 걸으며 마치 잘못된 내비게이션을 따라온 것처럼 남세희의 집 앞까지 와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따뜻하고 편안한 집이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윤지호의 이 엉겹결에 나온 결혼 승낙은 그래서 우습지만 슬프다. 다음 생에는 집 걱정 없는 달팽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그는 집만 있다면 결혼 따위는 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가 남세희의 집에 들어와 매일 같이 집안을 쓸고 닦고 광을 내는 모습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런 집이 그에게는 그만큼 소중했을 테니까.



물론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코미디다. 그래서 그 상황들이 조금은 과장되어 있다. 제 아무리 동생이 덜컥 임신한 여자친구를 집으로 들여 함께 지내기 어려워졌다고 해도 갈 데 없는 사람이 무작정 방을 구해 나가는 것도 그렇고, PD의 성추행을 간신히 피해 빠져나온 그가 제 집 대신 남세희의 집으로 온다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이건 코미디라는 장르의 틀 속에서 허용되는 과장이다. 중요한 건 그 코미디가 하려는 메시지이니 말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코미디는 코미디인데 블랙코미디라 여겨지는 건 이들이 주는 웃음을 살짝 곱씹어 보면 거기서 느껴지는 씁쓸한 현실의 맛 때문이다. 유독 무표정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철벽을 치며 자기 삶만을 살아가는 남세희는 알고 보면 그것 정도가 스스로 감당해낼 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는 특유의 계산 습관으로 30년을 내내 대출금을 갚아야 비로소 그 집이 제 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집 한 채를 위해 인생을 송두리째 소비하는 현실을 이 드라마는 다소 과장된 블랙코미디의 틀로 꼬집고 있다.



이른바 삼포세대라고들 하지만, 그 포기의 상당 부분 무게를 더하는 게 바로 집일 것이다. 물론 부모 잘 둔 청춘들이야 시작부터 대출금 따위는 없는 번듯한 집으로 시작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청춘들은 집 장만이 평생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된다. 그러니 그래도 집 한 칸은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결혼이 막막하고 출산은 더더욱 생각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니 포기하고 사는 것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그래서 그 집 한 칸을 두고 벌어지는 지금의 청춘들의 무거워진 어깨를 애써 웃음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집은 있지만 그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30년 간 노력해야 하는 남세희도, 또 방 한 칸이 없어 한밤 중 그 길고 긴 터널을 잠옷 바람으로 걸어와야 했던 윤지호도 웃기지만 슬프다. 진짜 결혼은 생각도 못하지만, 그래서 가짜 결혼은 왜 안 되냐고 말하는 드라마의 이야기에 우리는 웃다가 짠해질 수밖에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