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2’ 올해 나온 최악의 속편으로 손꼽는 까닭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청춘시대 2>가 방영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청춘시대>는 2016년 최고의 한국 드라마 중 하나였고 캐릭터들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남아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신경 쓰이는 건 유은재 역의 박혜수가 영화 촬영 스케줄 문제로 하차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빈자리를 채울 지우는 좋은 배우였다. 온유 캐스팅 문제도 신경 쓰였지만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기전에 다행히도 해결됐다. 이제 작년에 우리가 사랑했던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기만을 기다리면 됐다.

지나치게 낙천적인 생각이었다. <청춘시대 2>는 2017년에 나온 최악의 속편이었다. 누군가는 <킹스맨: 골든 서클>이야 말로 최악의 속편이라고 하지만 보지 않은 영화를 비교대상으로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춘시대>와 <청춘시대 2> 사이의 낙차는 거의 폭포수 수준이라 많은 사람들이 작가와 연출자가 여전히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질겁했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난 걸까?

일단 <청춘시대>가 왜 좋은 드라마였는지 생각해보자. <청춘시대>의 특별한 점은 이게 여자들의 삶과 관계에 대한 작품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여성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는 많지만 <청춘시대>만큼 이들을 독립적인 삶의 주체로 다루고 이들간의 관계에 집중한 작품은 드물었고 그 희소성만으로도 <청춘시대>는 중요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가장 당연한 기반이 <청춘시대 2>에서는 모두 허물어진다.



유은재 캐릭터를 보자. 시즌 2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체된 배우를 비난하지만 배우 자체의 문제는 없었다.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 붕괴를 지적했고 그건 분명 일리가 있지만 캐릭터가 붕괴되었다는 사실 이상의 문제가 있었다.

시즌 1을 보자. 유은재는 세 개의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하나는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사, 다른 하나는 다른 하우스메이트들과의 관계맺기, 마지막은 볼펜 선배와의 연애이다. 이들을 통해 유은재는 캐릭터를 입체화하는 세 개의 방향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의 스토리 라인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아주 둔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시청자들은 유은재가 볼펜선배 앞에서 귀엽게 구는 동안에도 이 캐릭터가 얼마 전에 자신이 살인자라고 고백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그 영향 아래 캐릭터의 연애를 지켜본다.

시즌 2의 유은재는 이 입체성을 잃어버린다. 시즌 2에서 유은재에게 준 스토리라인은 첫 번째 실연을 겪은 젊은 여자의 민망한 소동이 전부이다. 이 자체만 따로 떼어놓는다면 얼마든지 이야기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게 유은재의 캐릭터로 할 이야기인가? 시즌 2의 유은재는 자신이 존속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의심 자체를 완전히 망각해버렸는가? 그렇다고 유은재와 다른 하우스메이트와의 관계가 더 깊거나 재미있어진 것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1시즌에서는 3차원이었던 인물이 2시즌에서는 그냥 납작해져버렸던 것이다. 그 와중에 이전의 매력이 사라진 건 당연한 일이다.



윤진명(한예리)의 경우는 어리둥절하다. 시즌 1에서 윤진명은 가장 현실세계와 닿아있는 인물이었고 이 현실성은 <청춘시대>라는 드라마를 지탱하는 묵직한 추 역할을 했다. 시즌 2에서 윤진명은 취직에 성공한다. 고비는 넘긴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세계가 갑자기 윤진명에게 친절해질 리는 없을 것이고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시즌 2는 윤진명에게 스토리를 준다는 가장 기초적인 의무를 포기해버린다. 윤진명은 연예기획사에 들어가고 곧 해체되는 아스가르드라는 보이 그룹 드라마의 조연이 된다. 우린 아이돌 나라에 살고 있으니 그 소재를 갖고 인형놀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왜 이런 이야기에 윤진명을 쓰는가? 아이돌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무언가가 나올 수 있긴 한가?라는 질문도 중요하지만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아이돌 소재로 뭔가 쓸만한 걸 만든 적이 있기는 한가?) 이 어처구니없는 캐릭터의 소모에는 빛을 잃는다. 가장 중요한 무게 중심을 맡아야 할 인물이 부유하고 있으니 당연히 드라마 전체가 흔들린다.



정예은(한승연)과 송지원(박은빈)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정예은은 작년에 있었던 데이트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송지원에게는 아직 이명과 허언증에 대한 미스터리가 남아있다. 이들은 <청춘시대 2>의 실질적인 존재 이유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들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이유는 이들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 그러니까 미성년자 성폭력과 데이트 폭력에 대해 깊이 연구할 의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이전에도 종종 지적했던 사실, 즉 작가 박연선이 의욕만큼 좋은 추리작가가 아니라는 사실과 연결된다. 박연선은 디테일과 사실성에 별 관심이 없다.

송지원을 보자. 송지원은 자주 이상하게 행동하긴 하지만 영리한 저널리스트 지망생이다. 적어도 캐릭터 설정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어린 시절에 학교 교사가 친구를 성폭행한 사실을 기억해낸다.



이렇게 캐릭터 설정이 잡힌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고 그 기억을 보강할 수 있는 증거와 증인을 찾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송지원은 얼마든지 조작되었을 수도 있는 기억과 몇몇 짐작만으로 교사의 기념식에서 깜짝 폭로를 하는 쪽을 택한다.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스토리라인이 14회의 분량 동안 계속 건성으로 방치되다가 무책임한 폭탄 몇 방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정예은은 어떤가. 과연 드라마는 데이트 폭력 희생자를 진하게 그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 캐릭터를 갖고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 것인가? 과연 남의 시선을 끌지 않으려는 폭력 피해자가 웬즈데이 아담스 코스프레를 하며 길거리를 돌아다닐까?



마지막으로 강이나를 대신 해 벨 에포크에 들어온 조은(최아라)은 정말 엄청난 캐릭터와 설정의 낭비이다. 초반에 따르면 조은은 벨에포크 주소로 보내려다 포기한 편지를 발견하고 수신인의 정체와 사연을 밝히려는 탐정이다. 당연히 그 수사 과정은 캐릭터 드라마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고 이 캐릭터의 과거사는 그 뜬금없는 결정을 설명해야 할 것이며 다른 하우스메이트와의 관계는 이 수사과정과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시즌 1의 유은재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든 세 개의 방향이 존재한다. 이 재료들을 그냥 활용만하면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어떻게 한다? 조은은 남미로 여행을 간 집주인 할머니의 대리와 연애를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여기서 작가가 그나마 신경을 쓰는 건 조은의 여성성에 대한 것인데, 아무도 누가 뭐라지 않는데도 그 나이까지 남자처럼 입고 다닌 사람이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치마를 입기 시작하고 애교를 떠는 과정을 보면 이게 21세기에 나온 작품인지 의심하게 된다. 조은과 단짝친구 예지와의 관계 묘사는 더욱 끔찍하다. 원래 한국드라마란 게 호모포비아의 환경과 조금만 떡밥이 보여도 캐릭터들을 엮으려는 시청자들이 드잡이하는 공간이라 망한 퀴어베이팅은 드물지 않는데, <청춘시대 2>는 정말 교과서적으로 이 망한 길을 충실하게 따른다.



여기서부터 <청춘시대 2>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연 고등교육을 받은 21세기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룰 자격이 있긴 한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초반 몇몇 에피소드들은 정말 정상적인 인권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질겁할 장면들이 가득했다. 빼빼 마른 벨 에포크의 하우스메이트들이 언뜻 비욘세란 닉네임의 과체중 여성을 놀려대는 장면은 그것만으로 심각했지만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어느 누구도 그게 잘못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해 더욱 어이가 없었다. 조은이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한 하우스메이트들의 호모포비아는 더욱 심각한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단지 값싼 감상으로 범벅이 된 내레이션으로 자신을 정당화할 뿐이다. 이에 비하면 에피소드 1의 김여사 농담은 가볍게 보일지경이다.

이들의 무신경은 후반 폭력 장면에서 절정을 맞는다. 20분이나 지속되는 인질극 장면에서 우린 다음을 확신하게 된다. 하나, 이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묘사의 폭력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 둘째, 이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이 만든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어떤 믿음도 없다. 그러지 않았다면 침입자가 전기충격기로 제압된 상황에서도 징징거리고 아무 것도 못하느라 깨어난 침입자에게 다시 굴복되는 상황이 연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변화는 당황스럽다. 납치된 정예은을 구출하기 위해 힘을 합쳤던 이들은 1년 뒤에 어쩌다가 이렇게 무능해졌는가.

이야기는 끝도 한도 없이 이어질 수 있다. 누군가의 말을 빈다면 <청춘시대 2>는 구려지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시즌 1의 장점은 다 사라졌고 남은 건 폭력과 자성 없는 자기 연민으로 양념을 친 흔해빠진 청춘연애물 뿐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시시하거나 형편없는 소설도 도입부는 근사한 경우가 많다. <청춘시대 2>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면 <청춘시대> 1시즌은 그 평범한 진부함에 도달하기 전에 무사히 끝난, 어쩌다 만들어진 도입부에 불과했던 게 아닐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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