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긴데 짠한 ‘이번 생은’이 뒤집는 결혼보다 현실

[엔터미디어=정덕현] 세상에 이런 역대급 웃픈 프러포즈가 있을까. “아저씨가 많이 화가 나셔서 그런데요. 빨리 답변해주셔야 해요. 저랑 결혼하실래요?” 윤지호(정소민)는 모든 걸 접고 고향으로 떠나려던 버스에서 갑자기 뛰어내려 남세희(이민기)에게 뜬금없이 이렇게 묻는다. 서울이 너무 추워 귀향하려던 그의 마음을 돌리게 한 건 유일하게 이 서울에서 자신을 ‘필요한 사람’으로 불러준 남세희 때문이었다.

그 ‘필요’란 결혼이 아니라 같은 집에서 월세를 내며 자기 맘에 딱 맞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며 살아갈 사람으로서의 ‘필요’다. 윤지호의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이런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터라 남세희는 선선히 “네”라고 답한다. 그리고 새삼 “절 좋아하시는 건 아니죠?”하고 묻는다. 그건 남세희가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남세희가 연애나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건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다. 집안에서는 결혼하라고 등을 떠밀지만 그는 안다. 결혼이나 육아는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가는 현실적인 문제라는 걸. 그래서 결혼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단지 같이 사는 사람이 필요하고(외부의 시선 때문에 더더욱) 그 사람이 월세도 내고 함께 지내는 것에 불편함이 없었으면 한다.



이런 사정은 윤지호도 마찬가지다. 떡하니 임신을 하고 들어와 앉은 동생네 때문에 집을 내주게 된 그는 하우스메이트로 들어간 집의 주인 남세희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집을 나와 작업실을 전전하지만 같이 작업하는 드라마 PD로부터 성추행 미수를 겪고는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잠옷 바람에 밤거리를 헤매는 그 처지에 절실히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집이다.

그래서 처음 남세희가 ‘필요’에 의해 윤지호에게 “혹시 시간이 좀 되시면 저랑 결혼하시겠습니까?”라는 물음에 화들짝 놀라지만, 그는 “집에 있어줄 관리자가 필요하고” 자신은 “집이 필요하다”는 말이 수긍되기 시작한다. 윤지호는 “보통 애정 사랑 때문에 하는 게 결혼 아니냐”며 물었지만, 남세희는 집보다 “애정 사랑 그런 게 지금 당장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청춘들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프러포즈는 말 그대로 로맨틱한 드라마의 결말로 가는 관문처럼 여겨진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프러포즈는 이처럼 웃픈 청춘들의 현실을 담는다. 애정이나 사랑 그리고 결혼보다 더 절실한 게 집 같은 현실이 된 청춘들의 면면들이 이 프러포즈 속에 녹아 있다. 그것은 너무 뜬금없고, 감동이 없어 우습지만 그 이면에 깔린 현실의 무게감으로 인해 씁쓸해진다. 도대체 얼마나 처참하면 결혼보다 현실일까.



이른바 삼포세대의 정서가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청춘 멜로에는 어른거린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가진 권력으로 갑질을 하고 심지어 성추행을 하고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넘어가려는 행태 속에서 윤지호 같은 청춘들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밤거리를 헤매며 자신이 돌아갈 집조차 없어 방황하는 그 모습은 아마도 작금의 청춘들이 겪는 그 현실의 자화상이 아닐는지.

그래서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프러포즈가 그 연애의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아무런 애정과 사랑 없이 현실적으로 선택한 프러포즈와 결혼이 향후 이 짠 내 나는 청춘들의 진정한 사랑으로 무르익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 지점이다. 어쩌면 그 현실에 대한 공감대가 두 사람을 진심으로 묶어줄 지도 모르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