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법정’이 정려원을 통해 보려는 역지사지는

[엔터미디어=정덕현] “당신 사이코패스입니까?” 승소를 위해서는 피해자가 겪을 2차 피해는 생각하지도 않는 마이듬 검사(정려원)에게 여진욱 검사(윤현민)는 그렇게 물었다. 다소 과한 표현처럼 여겨졌지만 그게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교수에게 성추행 당한 피해자 학생은 승소하는 대신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의도치 않게 커밍아웃하게 됐다. 여교수의 성추행 사실을 입증하는 전화통화 녹음 증거가 있었지만 커밍아웃을 꺼리는 피해자 때문에 증거 제출을 못하게 되자 마이듬이 변호사측에 미끼를 던져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히게 했던 것. 결국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마이듬은 기다렸다는 듯 전화통화 녹음 증거를 제출해 승소할 수 있었다.

실로 그 과정이 진행되는 법정에서 마이듬이 보여준 모습은 사이코패스 같았다. 피해자는 커밍아웃하게 된 상황으로 괴로워했지만 마이듬은 그 순간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는 걸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소 후 법정을 나서는 마이듬에게 여진욱 검사가 “왜 피해자의 상처는 생각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왜 그래야 하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리고 자신은 검사이지 변호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KBS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마이듬은 이처럼 우리가 줄곧 봐왔던 주인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인물이다. 간간이 지위를 이용해 성추행을 일삼는 직장 상사들(심지어 검찰 내부에서도)에게 일침을 가하는 사이다를 보여주고 또 법정에서는 남다른 능력으로 승소를 이끌어내는 그 모습이 통쾌함을 선사해주는 인물. 하지만 어딘지 출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캐릭터처럼 보인다. 부장의 성추행 사실을 덮기 위해 피해자를 찾아가 덮어달라며 무릎을 꿇기까지 하는 인물.

물론 마이듬이 이처럼 출세에 목을 매는 이유는 어린 시절 갑자기 사라져버린 엄마를 찾기 위함이다.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다면 그 범인을 잡겠다는 것이고, 집을 스스로 나간 것이라면 자신이 유명해져 엄마가 찾아오게 하겠다는 것. 그래서 그는 언론에 브리핑을 할 때 반드시 자신의 이름을 먼저 얘기한다. 그건 어딘가 있을 엄마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마이듬을 심지어 사이코패스처럼 승소에만 집착하는 검사 캐릭터로 세운 건 또 다른 이유를 가진 포석으로 보인다. ‘일반인 동영상 유출 사건’을 수사하면서 마이듬은 스스로 결코 자신 같으면 그런 동영상 따위는 찍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자 여진욱 검사는 마이듬에게 “사랑을 해보지 않았냐”며 사랑하게 되면 그 순간을 남기고픈 마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즉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여진욱과는 달리 마이듬은 그런 일을 겪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드라마 말미에 ‘일반인 동영상 유출 사건’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남자가 마이듬의 집까지 들어와 불법적인 카메라를 설치해 놨고, 그가 목욕하는 장면이 찍힌 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됐다. 즉 남 일처럼 여겨졌던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로지 검사로서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승소를 위해서는 피해자의 고통 따위는 생각하지 않던 마이듬에게 이 사건은 어떤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교수 강간미수 사건’에서 승소를 위해서는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피해자의 그 상황이 고스란히 마이듬의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마녀의 법정>이 애초에 마이듬 검사를 사이코패스 같은 출세에만 집착하는 인물로 세운 까닭은 이러한 피해자의 입장을 다시금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곤 하는 성폭력, 성추행 사건들을 보며 그것이 타인의 일일 뿐이라 여기곤 했던 분들이라면 이 반전상황이 주는 역지사지가 주는 의미는 남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건 특정한 사람들이 겪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걸 알려주는 것이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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