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부활자’ 엉뚱한 모성애 찬양, 김해숙 열연도 빛바랬다

- 아무리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도 일단 뼈대가 서고 작동되기 시작하면 그럴 듯하게 진행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괴상한 이야기도 천연덕스럽게, 마치 꿈결처럼 말이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고...- <종료되었습니다> 226p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희생부활자>가 어떤 영화인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영화는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박하익의 소설 <종료되었습니다>를 원작으로 2015년에 촬영됐다. 실제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어찌나 천연덕스럽게 진행되는지 별로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더욱이 영화의 뒤늦은 개봉을 앞두고 영화홍보를 위해 ‘희생부활자 현상(RVP)’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 유포하여, ‘희생부활자 현상’이라는 것이 마치 실제로 존재하거나 널리 회자되는 듯한 착시를 일으켜 그럴듯함이 더해졌다.

여기에 웹툰 <희생부활자>의 공개도 ‘희생부활자 현상’이 이미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되는 익숙한 도시괴담이란 인상에 힘을 보탰다. 이런 홍보방식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에서 ‘량첸살인기’라는 고전소설이 진짜로 있는 것처럼 인터넷에 관련 콘텐츠를 유포했던 것이나, 영화 <연가시>의 개봉을 앞두고 동명의 웹툰을 공개하여 소재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려 흥행에 기여했던 적이 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홍보방식이라 할 수 있다.



◆ 죽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오다

<희생부활자>는 ‘죽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온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펼치는 영화이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심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억울하게 죽은 미제사건의 피해자들이 직접 진범을 심판한다는 사필귀정의 당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생부활자라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그럴듯한 질감을 가진 존재로 그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처럼 그릴 것인지, 좀비처럼 그릴 것인지, 유령처럼 그릴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구현하는 응징이 현실의 사법질서와 부딪히는 충돌의 지점들을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상상력과 리얼리즘적 감각이 필요하다. 곽경택 감독은 그 어려운 과제를 해낸다.

영화의 중반까지 관객들은 홀린 듯한 느낌으로,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일들이 현실의 공간 속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껏 어떤 영화에서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 황당하면서도 진지한 사건 속으로 몰입된다. 초현실적인 현상이 현실의 사법질서 속에 녹아있는 것을 보면서, 관객은 이런 현상이 일단 존재한다고 받아들인 채 사건의 진상을 쫓게 된다.



화면의 질감은 현실적인 장면도 일견 비현실적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괴괴함을 지닌다. 대낮에 행인이 제법 많은 도로에서 오토바이 노상강도가 피해자를 칼로 찌르고 몇 백 미터를 끌고 가는 장면은 비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이다. 장례를 치른 지 7년 만에 살아서 집에 돌아온 어머니와 어리둥절하지만 반갑게 어머니를 맞은 누나의 살짝 정신이 나간 듯한 태도. 그리고 교회 사람들의 그럼직한 호들갑. 이 모든 것이 실로 꿈결 같다. 흔히 꿈결 같다고 하면 몽환적이고 모호한 느낌을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꿈은 꾸고 있는 동안 대단히 현실적이고 생생한 실감을 갖는다. 꿈처럼 혼란스럽지만 생생한 광경이 펼쳐지다 돌연 악령에 빙의된 듯한 엄마의 돌발행동이 그려진다. 몸이 움찔하는 악몽의 질감과 논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살아 돌아온 엄마에 대해 ‘희생부활자 89호’ 라는 설명이 붙는다. 그런 설명이 이루어지는 곳이 국정원 회의실이다. 국정원, 검찰, 경찰이 그 설명을 듣고 누가 정보를 선점할 것인가를 두고 기싸움을 벌인다. ‘희생부활자 현상’에 대한 갑론을박은 없다. UFO처럼 전 세계에서 수집된 목격담과 미국 CIA 자료가 제시되고, RV라는 그럴듯한 명명이 있을 뿐이다. 검찰과 경찰이 각자의 이권을 위해 기민하게 움직일 때, RV는 이미 기정사실화 되고 관객의 관심도 그곳으로 옮겨진다.



자신을 죽인 진범을 응징하고 자연발화에 의해 소멸한다고 알려진 희생부활자(RV) 89호. 그런데 엄마(김해숙)는 느닷없이 아들을 공격하다가 쓰러진다. 7년 전 오토바이 강도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진홍(김래원)은 검사가 되었다. 그런데 희생부활자로 돌아온 엄마의 공격을 받자, 경찰과 국정원은 그를 진범으로 지목한다. 진홍은 자신이 먼저 진범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진홍과 그를 뒤쫓는 엘리트 경찰 수현(전혜진), RV에 대한 정보가 사회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국정원의 영태(성동일)가 각기 다르게 움직이면서 엄마의 죽음에 얽인 비밀이 하나둘 밝혀진다.



◆ 원작의 주제의식을 버리다

원작소설 <종료되었습니다>는 희생부활자 현상을 통해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응징하기’를 서사의 한 축으로 내세우는 한편, 반전을 통해서 ‘가해자에게 피해자 가족의 심정을 체험하게 만듦으로써 처벌인 동시에 교화를 이루기’를 서사의 또 다른 축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대칭적일 뿐 아니라, 정합적인 구조이다. 가령 <악마를 보았다>가 보여주었던 논리적 패착을 떠올려보자. <악마를 보았다>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에게 아무리 처절한 응징을 가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처벌이나 반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인공의 실패를 통해 보여주었다.

사이코패스의 범죄를 동일한 방식으로 되갚는 것은 등가의 고통도 주지 못하는 무의미한 고문일 뿐이며, 그 과정에서 도덕적 황폐를 겪는 것은 주인공이다. 그가 고안한 최후의 복수도 사이코패스 본인에게 심리적 타격을 입히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도 그의 가족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 결국 그의 아들이 복수의 앙심을 품게 된다. 요컨대 잘못 설계된 복수로 인해, 사필귀정의 마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범죄의 시작이 되었을 뿐이다.



원작소설 <종료되었습니다>는 이러한 패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이코패스 가해자에게 응보와 교화를 이루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가상체험을 통해 가해자가 자신을 피해자의 가족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범죄로 가족을 잃은 자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이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처벌이자 역지사지를 통해 범인이 저절로 교화되는 이중의 효과를 지닌다. 즉 원작소설의 표면은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황당한 설정을 통해 사법질서가 해결하지 못하는 완벽한 응보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얄팍한 텍스트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주제의식은 역지사지를 통한 교화를 말하는 나름 심오한 텍스트이다.

영화 <희생부활자>는 이러한 원작소설의 속 층을 완전히 파내버린다. 7년 전 오토바이 강도로 숨진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고, 생전에 끔찍이도 아꼈던 아들을 공격하여 그를 진범으로 오해받게 만드는 상황까지는 원작과 같지만, 왜 그런 상황이 일어났으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원작과 완전히 다른 설명으로 채워 넣는다.



◆ 모성을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불효를 성찰하다?

영화 <희생부활자>가 채택한 주제의식은 엉뚱하게도 모성애다. 그것도 아들의 출세를 바라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홀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을 그린다. 살아 돌아온 어머니가 안광을 번뜩이며 아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왜 아들을 공격했느냐는 연구원들의 질문에 “그 아이가 나를 죽게 했으니까”라고 느릿한 히브리어로 답하는 장면은 굉장히 흥미롭다. 좀비영화 같기도 하고, 엑소시스트 영화 같기도 한 장르의 변용 속에 윤리적 전복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결국 “너를 위해서라면 백번 죽을게, 천 번 죽을게” 라는 피투성이 장면으로 귀결되는 것은 실망스럽다. 죽도록 헌신하고 죽어서도 다시 돌아와 일백 번 고쳐죽겠다고 말하는 모성은 진부할 뿐만 아니라, 퇴행적이다.

영화 <마더>가 아들과 자아가 분리되지 않은 모성, 아들을 위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모성, 엄마 없는 아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는 모성을 보여주면서 그 징그러움과 윤리적 맹점을 성찰하게 한 것은 가치 있다. 그러나 아들의 출세를 위해 헌신한 어머니가 아들의 죄를 덮기 위해 분투하고, 죽음에서 돌아온 뒤에도 다시 죽겠다고 외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모성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모성에 대한 투박한 찬양이다. 그런데 ‘아들의 출세를 통해서만 보상받을 수 있는 어머니들의 삶’ 자체가 가부장적인 구조의 산물이다.



이러한 구조에 대한 통찰이나 모성적 욕망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모성애의 강렬함과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은 가부장적인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구조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영화는 끝까지 모성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모성에 답하지 못한 아들의 무심함을 반성한다. ‘죗값’을 운운하였던 검사가 자신에게도 예외 없이 정의의 잣대를 들이댄 것은 그나마 올바르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진술을 통해 자신의 불효를 털어놓는 장면은 영화의 진부한 주제의식을 확인 사살한다.

곽경택 감독의 <사랑>에는 배우 이휘향이 등장하는 멋들어진 장면이 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전형적인 모성 이데올로기를 전복하는 영화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여성을 성적 도구로 사유하는 곽경택 감독의 여성관과 지독히 파탄적인 밑바닥 정서가 ‘어머니’에게 적용되었을 때 만들어질 수 있는 역설적인 전복의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고유한 후레자식의 개성마저 다 버리고, ‘검사 아들을 만들기 위한 어머니의 생사를 오가는 분투’라니 손발이 오글거린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희생부활자>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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