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민의 영수증’ 정규는 그뤠잇, 시간 늘리기는 스튜핏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정규편성을 협의 중인 것은 사실이나 파업으로 인해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KBS <김생민의 영수증>에 대한 정규 편성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프로그램 관계자는 이런 입장을 밝혔다. 본래 6부작 파일럿으로 편성됐던 프로그램이 비하인드 스페셜 형식의 2회분을 추가 방송할 정도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은 높다. 한 매체는 연말에 ‘60분-10부작’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제작진측은 사실 무근이라며 확정된 건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정규편성을 두고 이처럼 보도가 나오고 있는 건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높다는 걸 방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욜로 열풍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소비를 조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껴야 잘 산다’는 정반대의 이야기로 대중들의 정서를 꽉 잡아버린 이 프로그램의 힘이 그저 한 번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우리네 대중들이 팍팍한 현실 앞에서 갖게 된 소비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모두 공감시키는 면이 담겨져 있다.



‘돈은 안쓰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보여주듯이 김생민이 의뢰인의 영수증을 분석해 내놓는 대목은 진짜 ‘솔루션’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블랙코미디이자 풍자적인 성격이 강하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으로 하와이를 갔다 온 것에 대해 하와이 같은 여행의 최종지를 시작부터 덜컥 갔다 온 것은 ‘스튜핏’이라며 결론적으로 여행은 안가는 게 좋다는 김생민의 이야기는 저 ‘욜로’가 늘상 입에 달고 있는 “떠나라”는 말과는 정반대의 뉘앙스로 웃음을 준다.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연애도 하지 않고 혼자 살다보니 어쩌다 2억이 모였다는 직장인에게 그는 ‘영웅’이라고 찬사를 보내고, 그러면서도 영수증을 통해 빵집을 자주 가는 그가 토스터기를 사는 건 ‘스튜핏’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또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비싼 한약을 산 의뢰인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야식을 사먹은 일을 콕 집어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현실적으로 김생민이 말하는 것처럼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 저축하는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또 그렇게 하루하루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들 수 있는 일이 과연 가능할 지도 알 수 없다. 실제로 욜로 열풍이 생겨났던 것도 어찌 보면 김생민 열풍과 비슷한 현실을 밑바탕에 깔고 있어서였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을 미래가 보이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현재를 살자고 주장한 게 욜로라면, 김생민은 정반대의 목소리로 지금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지독하게 아끼지 않으면 꿈꾸는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 현실이라고.

그래서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이 이토록 열광을 이끌어낸 원인은 그 밑바탕에 깔려진 현실에 대한 공감대 때문이라고 보인다.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김생민의 “아끼고 아끼라”는 말은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풍자처럼 들리니까.

실로 파일럿으로 끝내기에는 아까운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특히 김생민이라는 인물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정규편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15분이라는 분량은 방송사 입장에서는 애매할 수 있다. 사실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분량을 조금 늘려갈 수만 있다면 광고 같은 제대로 된 수익을 낼 수도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15분 분량만으로는 수익성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15분을 늘려 60분짜리로 만들어내는 건 ‘스튜핏’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마치 과거 <라디오스타>가 그랬듯이, 사실 15분 분량이 가진 압축적인 힘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자기가 말할 시간이 없다며 투덜대는 김숙과 송은이의 말들이 웃음을 자아내고 짧은 만큼 임팩트 있게 분석해내는 김생민의 이야기도 더 힘있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갖는 뉘앙스가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이 주창하고 있는 ‘아껴야 잘 산다’는 그 메시지를 그 자체로도 보여준다는 점이다. 여유로운 시간은 <김생민의 영수증>이 가진 짧아서 더 서민적인 정서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해칠 수도 있다. 정규편성은 ‘그뤠잇’한 선택이지만 60분 분량처럼 시간을 늘리는 건 자칫 ‘스튜핏’한 결정이 될 수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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