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가 트렌드를 종합한 고난도 기획물 ‘고백부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KBS <고백부부>는 권태기 부부의 인생 반추 드라마다. 줄거리만 보면 고루하고 단순하지만 실은 최근 방송가 트렌드를 종합한 꽤 고난도의 기획물이다. 우선 요즘 유행하는 웹툰 원작 드라마다. 제작진은 이미 유명 웹툰 <마음의 소리>를 성공적으로 드라마화한 전적이 있다. 여기에 더해 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대성공 이후 부활한 예능드라마 계보 안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현재 같은 금요일 밤에 MBC 예능드라마 <보그맘>이 꽤 안정적으로 방영 중인 가운데, 지난 6월에 이미 <최고의 한방>을 선보인 바 있는 KBS 예능국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내놓은 작품이 <고백부부>다. ‘타임슬립’ 코드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만 해도 열편 가까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근래 방송가 최고의 인기 소재다.

물론 유행 요소가 다 들어있다는 말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눈길은 끌겠지만 반대로 식상한 흥행코드들의 난잡한 전시가 될 위험도 있다. <고백부부>는 어떨까. <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이 타임슬립물, 예능드라마, 웹툰 원작드라마라는 <고백부부>의 세 가지 흥행코드를 통해 작품을 평가해봤다.



◆ 진부한 타임슬립물이 놓친 숨은 시간을 반추하다

KBS2 <맨홀 - 이상한 나라의 필>이 처참한 시청률이었건만 또 다시 타임슬립이라니. 어디 그뿐인가 SBS <사임당 빛의 일기>도 기대 이하의 반응이었던 것을. 어쩌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타임슬립이 진부한 소재가 됐는지 모르겠다. 하기는 영화 <백 투 더 퓨쳐>가 1985년에 나왔으니 우려먹기도 많이 우려먹었다. 그래서 <고백부부>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하지만 첫 회를 보다 울고 말았다. 시간을 거슬러 1999년으로 돌아간 진주(장나라)가 엄마(김미경)를 껴안고 목 놓아 우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절로 나왔다. 내가 염두에 두지 못했던 포인트다. 타임슬립의 좋은 점은 돌아가신 분을 만날 수 있는 거구나! 진주처럼 꺼이꺼이 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기회는 생기는 거니까.



한 가지 재밌는 건 부모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지더라는 것. 진주 네도, 반도(손호준) 네도 허구한 날 자식 등짝을 후려치고 심지어 머리통까지 가격한다. 때릴 정도의 잘못은 아니잖아? 요즘 방송에서 저래도 되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이건 1999년의 일이다. 실제로 그 시절엔 부모들이 쉽사리 자식에게 손을 댔었다. 정당한 권리로 여겼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랬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적어도 매는 들지 않을 것 같다.

생각지 못했던 반전은 또 있다. 남길(장지용)의 진주를 향한 고백의 숨은 이유다. 진주는 알지 못한 남길의 아픈 가족사. 그렇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친 아픔이 얼마나 많을까. 무심해서, 눈치가 없어서 모르고 지나간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 기대해도 좋지 싶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예능드라마라면 현실과 판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

<고백부부>에서 ‘응답하라’ 시리즈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99학번 새내기 시절의 이야기니 ‘응답하라 1999’라는 부제가 붙어도 어색하지 않은 작품이다. 물론 훨씬 오래 전부터 <올드미스 다이어리>, <사랑과 전쟁> 같은 예능형 기획시리즈물을 선보여 왔고 ‘응답하라’ 시리즈 제작진을 키워온 곳이니 KBS 예능국으로서는 다소 억울할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고백부부>는 그 예능국의 오랜 노하우가 축적된 작품이다. <사랑과 전쟁>처럼 실감나는 부부 갈등 드라마에, 같은 제작진의 <마음의 소리>처럼 엉뚱하고 개성적인 캐릭터 조합이 돋보인다. 도입부에서 서른 여덟 살 진주와 반도의 심각한 드라마에 몰입한 이들은 과거로 넘어간 순간 캠퍼스 청춘들의 다채로운 캐릭터가 부딪히며 빚어내는 에피소드에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점도 있다. 예능드라마에서 서사와 코미디의 조합은 현실과 판타지의 균형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별개나 상충하는 요소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요소다. 가령 ‘응답하라’ 시리즈의 복고판타지는 섬세한 현실적 고증에 의해 더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했다. <고백부부>는 바로 이 부분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진주와 반도가 학교로 처음 돌아가는 장면에서 지나치게 낭만화된 캠퍼스 풍경 묘사가 대표적 사례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무리를 지어 맥주를 마시거나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모습에선 IMF세대의 그늘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진주와 반도의 회고는 로맨스 판타지에 치중되어 있다. 하루아침에 17년의 시차를 거슬러 올라갔는데도 그들이 그 간극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무거운 현실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너무 쉽게 판타지로 빠진다는 점에서 예능드라마로서의 완성도는 한걸음 퇴보한다. 진주와 반도가 여전히 꿈을 꾸는 것도 같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극복이 아니라 심화된 원작의 한계

<고백부부>는 이혼 확정판결을 받고 헤어져 각자 집으로 돌아간 서른 여덟의 최반도(손호준)와 마진주(장나라)가 자고 일어나보니 스무 살이었던 1999년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반도와 진주 모두 다시는 그와 같은 끔찍한 삶을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스무 살 청춘을 즐기려 하지만 그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 반도는 스무 살로 돌아왔다는 즐거움에 들떠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지만 그 때에도 어려웠던 것이 다시 돌아왔다고 갑자기 쉬워지진 않는다.

진주는 사정이 조금 더 복잡한데, 2017년 시점에선 이미 세상을 떠난 엄마(김미경)가 제 눈 앞에 살아있다는 사실에 하염없이 엄마를 바라보고 매달리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어린 아이를 보고 2017년의 세계에 있던 제 딸 서진(박아린)을 떠올리며 주저앉아 오열한다. 시간을 거슬러 다시 스무 살이 된 후도, 자식을 걱정하고 가족을 생각하는 것은 여자의 몫으로 남는다.



물론 이는 미티와 구구 작가의 원작 웹툰 <한 번 더 해요> 또한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있는 한계다. 어른이 될 준비도 안 된 채 어른이 되어 버겁게 살아가느라 상처 입고 상처 입히길 반복하는 부부가 다시 삶을 재점검할 기회를 얻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거듭난다는 <한 번 더 해요>의 핵심 테마는 결국 “왜 정상가정을 잘 유지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반성과 회한 없이는 구현되기 어렵고, 이는 쉽게 보수적인 결론으로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원작이 남자 주인공 성대광이 과거로 돌아간 직후에도 꾸준히 가족을 생각했고, 여자 주인공 유선영 또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과거와 다른 선택들을 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와 같은 위험을 피해가려 노력한 것에 비하면, <고백부부>의 반도와 진주는 드라마 시작부터 그 역할이 보수적으로 분담된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이미 자리 잡힌 첫 인상이 그리 쉽게 유쾌해 질 것 같지는 않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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