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띠클럽’, 캐릭터쇼의 묘미에 리얼리티쇼의 진정성까지

[엔터미디어=정덕현] 어둑해지는 저녁 포장마차 불빛이 퇴근길을 유혹한다. 그 포장마차로 아마도 그 공간에 대한 저마다의 추억이 있을 법한 ‘용띠’ 아재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그들은 이미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알려진 대표적인 연예계 절친 용띠클럽 5인방인 김종국, 장혁, 차태현, 홍경민, 홍경인이다. KBS 예능 프로그램 <용띠클럽>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래서 도대체 무얼 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전에, 이들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20년 우정의 수다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런닝맨>의 김종국, <1박2일>의 차태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을 비롯해 간간히 예능에 나와 드라마의 그 카리스마를 무너뜨리며 웃음을 주던 장혁도 있고, <불후의 명곡2>의 단골손님인 홍경민도 있으니 그냥 모였을 리가 만무다. 물론 홍경인처럼 예능에서 보기 어려운 인물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들은 무언가를 한다는 강박 자체가 없어 보인다. 그냥 진짜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서로의 근황을 묻고 나이 들어가며 또 결혼과 육아를 통해 얻은 경험들을 툭툭 털어내며 깔깔 웃는 그 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또 카메라 또한 이들에게 무언가를 주문하지 않는다. PD가 등장해 “자 다 모이셨으니...”하며 미션을 전달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당장 채널이 돌아갔을 일이다. 그건 <1박2일>이 시작되던 10년 전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에나 어울리는 풍경이었을 테니.



무언가를 하겠다는 강박이 없는 건 프로그램 제목에서도 묻어난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에는 <무한도전>처럼 매회 무언가 도전을 해야 한다거나, <1박2일>처럼 어쨌든 매회 어딘가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올 것이라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그저 이미 오랜 우정을 쌓아왔던 다섯 사람이 모여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용띠클럽>일 뿐이다. 마치 그것만으로 모든 게 충분하다는 듯 프로그램은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방향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도 무언가를 하긴 해야겠다며 내놓는 아이디어들이 어딘가 이미 나온 예능 프로그램들을 닮았다. 외딴 시골에서 포장마차를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자 그건 뭔가 <윤식당> 같다는 이야기가 바로 나온다. 예능 베테랑이 된 차태현은 슬그머니 원래 예능이 다 그런 거라며 눙을 친다. 그러면서 섬은 피해야 하고, 가더라도 셋은 안 된다고 말한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섬총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또 하루 두 끼만 해먹고 한 끼는 동네에서 얻어먹는 ‘아는 오빠’가 되자고 말해 <삼시세끼>와 <아는 형님>과도 다를 것이라고 농담을 한다.



물론 이건 농담이지만 만일 이 농담을 저들 스스로 자신들을 희화화해 내놓지 않았다면 프로그램에 대한 섣부른 비판들이 나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해외가 아닌 강원도 삼척의 어느 바다마을에서 하는 <윤식당>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 곳에서 밥을 해먹는 <삼시세끼>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동네의 <아는 형님>처럼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 이들이 모여 강원도 삼척의 바다마을에 도착해 하루 이틀을 보내는 모습은 이런 것들이 그저 기우에 불과하다는 걸 확인하게 한다. 마을 주민 단 한 사람이 와도 음식을 챙겨주는 포장마차를 하겠다고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용띠클럽 오총사들은 그건 빌미에 불과한 듯한 모습들을 보인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포장마차에서 첫 날 음식을 한 번 시험 삼아 해보면서 진짜 손님이 오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그 다음날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 이들이 그 곳에 내려간 이틀째의 이야기를 담는 3회 방송분을 보면, 포장마차 내용은 전체의 10분의 1도 차지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운동을 하고 점심을 사먹고 수다를 떨다가 겨우겨우 포장마차를 여는 그 느릿느릿 돌아가는 여유로운 일상들이 3회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게다가 하루 ‘삼시 세 끼’를 잘 챙겨먹으려는 강박도 별로 없다. 아침에 일어나 배고픔을 호소하는 김종국을 위해 용띠클럽의 공식 셰프들인 홍홍브라더스(홍경민, 홍경민)가 일부러 포장마차까지 가서 음식 재료를 챙겨올 때, 그 새를 못 참는 김종국을 위해 차태현이 세 아이의 아빠포스를 풀풀 풍기며 ‘돌돌이 김밥’을 만들어 먹이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그건 <삼시세끼>라기보다는 <1박2일>스러운 풍경에 가깝다.



또한 아톰 이야기를 하며 코주부 박사가 아톰의 친부다 아니다를 갖고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나, <포장마차>의 안주에 ‘사람나고 돈낙지’나 ‘확 벗겨벌랑게 껍데기’ 같은 이름을 붙이는 대목에서는 <아는 형님>의 아재감성을 돋보이지만 이건 그런 캐릭터쇼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그 안주가 만들어져 나오는 리얼리티쇼다.

이처럼 <용띠클럽>이 어딘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다섯 사람이 모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의 익숙한 감성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것이 보여지는 방식은 현재의 ‘리얼리티쇼’의 모습을 취하고 있어서다. 이게 가능해진 건 이들이 이미 절친들이기 때문이다. 절친들 사이에서 난데없이 캐릭터쇼를 하긴 어렵다. 그래서 진짜 자신들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튀어나오고 제작진은 애초에 기획한대로 그걸 그대로 내버려둔다.

<용띠클럽>은 그래서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의 캐릭터쇼가 갖던 웃음을 만들어내면서도 동시에 진짜 모습이 보여주는 리얼리티쇼의 진정성을 담아낸다. 젊은 시절부터 친구였던 이들이니 자연스럽게 함께 모일 때는 그 젊은 시절의 감성을 드러내는 것이 진짜 모습이 된다. 그건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진짜가 되는 <용띠클럽>의 독특한 방식이다. 마치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를 담은 리얼리티쇼 같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