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이 청춘들은 어째서 관계가 비용이 되었나

[엔터미디어=정덕현] 이 청춘들 그냥 사랑하게 해주면 안 될까.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청춘들은 관계 앞에서 망설인다. 그 관계보다 그 앞을 가리는 갖가지 현실문제들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상경해 드라마 보조작가를 전전하다 결국 그만 둔 윤지호(정소민)는 당장 ‘살 집’이 문제다. 어떻게 집을 장만하긴 했지만 거의 평생을 대출금 갚아나가며 살아야 하는 남세희(이민기)는 방 한 칸 월세라도 뽑아야 할 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사랑을 전제로 하는 보통사람들의 결혼보다 당장 현실이 주는 ‘필요’에 의한 결혼을.

실상은 집주인과 세입자이지만 서로의 필요에 의해 결혼식을 치른 두 사람에게 결혼이 주는 낭만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결혼식을 치른 후 버스 타고 집으로 가는 게 그들의 현실이니. 하지만 윤지호는 남세희가 저도 모르게 불쑥 내놓은 ‘우리’라는 말에 마음이 설렌다. 가짜로 하는 결혼이지만 그 ‘우리’라는 말은 마법처럼 그 현실을 뛰어넘어 어떤 판타지를 자극해낸다. 현실리 가로 막는 만큼 속으로는 얼마나 꿈꾸었던 단어였을까. ‘우리’라는 단어는.

하지만 ‘우리’라는 말 한 마디에 설레 남세희의 일터에 가게 되고 또 고양이에게 제 맘대로 ‘우리’라는 이름을 지어준 윤지호에게 남세희는 불편함을 느낀다. 남세희 역시 관계가 주는 판타지보다는 그 현실적인 문제들로 그 관계에 철벽을 치고 살아가는 인물. 그러니 ‘우리’라는 말에 불쑥 자신의 영역 속으로 들어오는 윤지호의 틈입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 그 이상이라는 걸 느끼며 불편해한다.



이것은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로맨틱 코미디가 그리는 독특한 청춘멜로의 방식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청춘들은 결혼을 생각할 나이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결혼에 철벽을 치고 살아간다. 윤지호의 절친 우수지(이솜)는 입만 열면 성희롱을 일삼는 회사에서 억지로 버티며 살아간다. 그에게 관계란 ‘좋은 추억’ 그 이상이 아니다. 그래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 그 이상의 결혼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윤지호, 우수지와 삼총사인 친구 양호랑(김가은)은 정반대다. 그는 7년을 거의 사실혼 관계로 함께 지내온 심원석(김민석)을 사랑하고 그래서 결혼을 하고 싶지만, 심원석은 어찌된 일인지 청혼을 하지 않는다. 그건 역시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다. 소파 하나 놓을 공간이 없는 옥탑방에서 살아가며 투자를 받아야 버텨낼 수 있는 앱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아직 결혼을 책임질 수 있다고 스스로를 여기지 않는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청춘멜로는 이처럼 그 사랑이야기에 현실문제들을 하나하나 엮어 놓았다. 그래서 그들을 가로막는 건 남녀 간의 심리적인 갈등 같은 것들이 아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서로에게 상처받고 상처 주는 그 관계가 그 원인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인 원인을 좇아가면 거기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윤지호와 남세희의 결혼 과정에서 이 두 사람이 양가집에 찾아가 인사를 하고 결혼 승낙을 얻는 그 과정들이 하나의 ‘사업’처럼 전략적인 선택으로 이뤄지는 모습은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웃음을 주면서도 어딘지 씁쓸함을 남긴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필요’에 의해 결혼하게 된 청춘들의 풍경이라니. 그들에게 결혼은 언젠가부터 비용이 먼저 떠오르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마냥 비관적인 전망만을 그리지는 않는다. 그렇게 ‘필요’에 의해서 결혼을 했지만, ‘우리’라는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설레는 그 관계는 어쩐지 이들을 진짜 ‘우리’로 바꿔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너와 나를 우리로 만드는 그 첫 단추가 똑같이 현실에서 느끼는 ‘공감대’로부터 비롯된다면 이들은 이미 충분히 그 현실을 공감하고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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