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안내서’, 타인의 일상 경험이 더 재미있으려면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내방 안내서>는 추석에 프롤로그격의 방송분이 나왔지만 엄밀히 말해 파일럿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애초 이 기획은 한두 회분으로 소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그 일상을 바꿔 지내본다는 <내방 안내서>의 콘셉트는 그 자체로 꽤 많은 분량들을 예고한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박신양, 박나래, 혜민 스님 그리고 손연재 네 사람이 다른 외국인들과 교차하며 서로의 일상 공유를 담아내는 것이니 그 이야기는 훨씬 다채롭고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타인의 일상 경험을 해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 체험 같은 건 물론 시도할 수도 있고 실제로 이런 내용들이 방송으로 만들어진 적도 있지만, ‘일상 영역’을 경험한다는 건 다른 문제다. 그 사람의 취향이나 생각 같은 것들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롤로그로 추석에 잠깐 선보였던 그 방영분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들이 어떤 경험들을 할 것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담아낼 것인지가 못내 궁금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수요일 밤에 정규 편성되어 방영된 <내방 안내서>는 흥미와 의미에 비해 재미는 약한 면모를 보여줬다. 물론 박신양의 작업실에서 그가 남다른 미술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고, 그래서 스페인의 예술가 프란체스카의 작업실을 서로 바꿔 지낸다는 콘셉트가 주는 궁금증은 분명히 있었다. 또 프란체스카가 인천공항에 내려 박신양의 부탁으로 나온 김정은과 함께 차를 타고 오며 이야기를 나누고 또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또 프란체스카의 작업실에 들어오긴 했지만 타인의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그 이물감 때문에 익숙해지지 않아 낯설어하는 박신양의 모습은 공감 가는 면이 있었고, 무엇보다 개선문이 바로 눈앞에 바라보이는 테라스에서 와인 한 잔을 기울이는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로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청자들이 <내방 안내서>가 주는 어떤 점에 끌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타인의 일상을 경험한다는 공감대가 충분하지만 그것이 나도 해보고픈 어떤 판타지를 건드리는 부분이 아니라면 시청자들이 굳이 찾아서 볼까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박나래가 LA에서 오픈카로 드라이브를 하고 비치에서 서핑을 즐기며 또 서핑 강사와 썸을 타는 모습은 물론 박나래의 로망이 담겨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은 로망이 되는가를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이것은 예술가의 작업실을 찾아 들어간 박신양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이유다.

물론 지금의 지상파가 보편적인 시청자를 여전히 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보편적 시청자들을 위해서 저마다의 취향을 선택해 들어가는 타인의 일상이라고 해도 좀더 많은 시청자들이 꿈꾸는 로망이나 판타지를 대리해주려는 노력은 필요할 것이다. 만일 이 부분이 채워지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추구해야할 ‘시청자들도 공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그들만의 경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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