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복수자들’, 과연 tvN 드라마 부활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tvN의 새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이 방영 3회 만에 시청률 5%를 넘어선 뒤 5회에서 자체최고시청률을 또 경신했다. 지난해 개국 10주년을 맞아 스타작가들과 톱배우들을 대거 등용하며 <시그널>, <디어 마이 프렌즈>, <굿 와이프> 같은 수작을 쏟아냈던 tvN은 올해 들어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5년 만에 야심차게 부활한 수목드라마의 첫 주자였던 대작 <크리미널 마인드>의 실패가 뼈아팠다. 그런 가운데 올해의 두 번째 수목극 <부암동 복수자들>은 오랜만에 ‘tvN이라서 가능한 드라마’의 매력을 드러내며 첫 회 이후 꾸준한 시청률 상승을 보여주고 있다.

<삼분지계> 역시 이 드라마에 대한 호평에 동참했다. 정석희 평론가는 속 시원한 복수극의 가능성을, 김선영 평론가는 권석장 감독의 인상적인 연출을, 이승한 평론가는 연대의 이야기가 주는 공감을 드라마의 힘으로 꼽았다. <부암동 복수자들>은 과연 tvN 드라마 부활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 <내 남자의 여자>를 뛰어넘을 사이다 복수에 대한 기대감

드라마 역사상 최고로 속 시원한 복수는 2007년 작 SBS <내 남자의 여자>에서 은수(하유미)가 동생 지수(배종옥)과 장을 보다가 불륜커플 준표(김상중)와 화영(김희애)을 발견하고 망신을 줬던 장면이리라. 제부의 부정을 알게 된 은수의 대사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옛날 우리 집 남자 덜미 잡았을 때 받은 충격의 스무 배는 되는 거 같아.” 피를 나눈 자매만이 가능한 감정일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절로 이런 말이 나왔다. “나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tvN <부암동 복수자들>의 도희(라미란), 정혜(이요원), 미숙(명세빈), 수겸(이준영)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존재가 아니겠나. 함께 분노하고, 함께 아파해줄 혈연관계 같은 끈끈한 사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의지할 곳 없는 정혜, 참 딱하다. 비위도 좋다며 비웃는 이복언니(정애연)을 향한 ‘태어난 게 저 아이 잘못은 아니니까요’, 이 한 마디가 태어나 처음 해본 ‘하고 싶은 말’이라지 뭔가. 어찌 살아왔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딱하기로는 미숙도 만만치 않다. 고아원에서 자란 혈혈단신인지라 술만 마시면 폭행을 일삼는 남편(정석용)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성병숙)가 유일한 피난처인 미숙에게 속을 털어 놓을 사람이 생겼다. 고통을 알아주고 보듬어줄 사람들이 생겼다.

제대로 된 복수는 아직 시작도 아니 했지만 정혜와 미숙을 위해, 외롭기론 두 사람 못지않은 수겸을 위해 도희가 어떤 활약을 할지 기대된다. 부디 일명 ‘하유미의 교육 동영상’에 필적할 명장면이 탄생해주기를!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오랜만에 확인하는 연출의 힘

<부암동 복수자들>은 복수극을 표방하지만 그걸로만 규정하긴 어려운 드라마다. 세 주인공 시점에 따라 장르도 달라진다. 김정혜(이요원)의 이야기는 재벌가 암투극, 이미숙(명세빈)의 이야기는 전통적인 여성 수난극, 홍도희(라미란)의 사연은 모성멜로드라마적 성격을 띤다. 이 ‘주부들의 이야기’에 복자클럽 막내 멤버 수겸(이준영)을 중심으로 한 자녀들의 학원드라마가 더해진다. 약자에 대한 폭력을 비판하는 진지한 사회극과 코미디를 수시로 오가기도 한다.

재벌가 사모님이 500원짜리 카트 배달 커피와 길거리 떡볶이 맛에 반하는 것처럼 극과 극이 뒤섞인 짬뽕 같은 매력이랄까. 그러고 보면 1, 2동과 3동을 경계로 소위 서민동네와 “부자동네”가 공존하는 부암동의 특성은 이 드라마 자체의 성격과 닮아 있다.

이러한 혼종적 매력을 잘 살리는 데에는 에피소드의 낙차를 매끄럽게 아우르는 연출이 큰 몫을 한다. 가상의 입헌군주제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 <마이 프린세스>부터 사회비판적 메디컬드라마 <골든타임>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대본을 뛰어넘는 연출의 묘를 발휘했던 권석장 감독은 <부암동 복수자들>에서도 진가를 증명한다. 구구절절한 대사보다 꼼꼼한 미장센을 통한 함축적 연출로 인물들의 서사에 두터운 입체감을 불어넣는 것이 그의 장기다.



예컨대 소심하고 말수 적은 미숙(명세빈)의 상처는 세 주인공 중 가장 나중에야 밝혀지는데 드라마는 평소 그녀가 아들의 교복을 정돈하거나 방을 정리하는 일상적 노동의 장면을 차근차근 쌓아가며 감정의 폭발을 준비해왔다. 이 작품에서 복수와 같은 극적 사건보다 인물들의 사연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연출의 힘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한,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세부 에피소드나 사건의 순서는 조금씩 각색됐지만, <부암동 복수자들>의 큰 흐름은 사자토끼 작가의 원작 웹툰 <부암동 복수자 소셜클럽>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각자의 이유로 복수를 꿈꾸는 세 여인이 복수의 품앗이를 도모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여기에 제 나름의 복수를 꾀하는 소년이 가담하며 일평생 억울함을 참아온 이들이 조금씩 숨통을 틔운다.” 정리하자면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 위에, 제작진은 원작 특유의 정서까지 화면 위에 담아내려 노력한다. 복수를 위해 모인 공동체이지만, 정작 공동체의 가장 큰 힘은 치유와 연대라는 정서 말이다.

‘복수’라는 명목으로 묶여 있지만 ‘복자클럽’의 핵심은 사실 ‘고통’의 연대다. 가족 없이 살아온 정혜(이요원)는 도희(라미란)와 미숙(명세빈)에게서 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 돈 없고 빽 없어도 자신만 당당하면 되는 줄 알고 살아온 도희는 정혜와 미숙의 도움을 통해 자신이 틀린 게 아니란 사실을 ‘확인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임을 숨긴 채 고립되어 있던 미숙은 복수하자 손 내민 정혜와 도희를 통해 제 상처를 이해 받는다.

저 이가 아픈 것이 꼭 내가 아픈 것 같아 안쓰럽고, 내 아픔을 저 이가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 그 어느 때보다 사회가 파편화되고 계층 분화가 심해진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한다면 그를 매개로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원작 특유의 낙관은 드라마에도 고스란히 계승됐다.



정혜는 “혼자서는 (복수를) 못 할 것 같아서” 복자클럽을 만들었지만, 혼자 못하는 건 복수뿐이 아니다. 서로를 다독여가며 용기를 내는 것, 상대에게 힘이 되는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제 가치를 확인하는 것 역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 복자클럽은 복수 품앗이 모임이 아니라 한 식구라고 선언한 정혜의 말이 반가운 건 그 때문이다. 너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별개가 아니기에 너의 일이 곧 나의 일인 경지의 연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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