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가 말한 지금 ‘썰전’에 필요한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JTBC <썰전>에 김훈 작가가 출연한 건 현재 영화가 상영 중이고 출판가에도 무려 100쇄를 찍어 초베스트셀러가 된 <남한산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남한산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것들은 의외로 많았고 그것은 또 저마다 각각의 이슈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관이 있어 보였다.

사실 <남한산성>이라는 작품이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킨 건 병자호란이라는 사태가 그저 과거의 일어난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북핵 관련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와 미국 사이의 관계는 마치 당대의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읽히는 면이 있다.

<남한산성>이라는 작품 속에서 청나라와 화친하자고 나선 최명길(이병헌)과 끝까지 청과 싸우자는 김상헌(김윤석)의 대립은 그래서 현 북핵 관련 사태를 두고 벌어진 여야 간의 대결구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남한산성>은 이러한 대결에 대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어떤 결정들이 어떤 결과로서 나타났는가에 대한 양자의 입장을 균형적으로 보여줬다. 판단은 그 역사를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현재의 정치권에서 여야가 내놓은 논평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입장에 맞춰진 아전인수격 해석들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이를 “국민적 화합이 필요한 시기”라고 해석한 반면, 홍준표 대표는 “무능한 지도자”에 의해 벌어진 비극으로 말했던 것. 이에 대해 <썰전>에 나온 김훈 작가는 양자에 모두 비판적이었다. 즉 불평등 같은 문제들이 고착화되고 시스템화 되어가는 우리네 현실에서 그걸 바꾸지 않고 ‘화합’을 강조한다는 건 잘못된 일이며, 또 ‘무능한 지도자’라는 그 표현은 그 비판을 한 이들이 몇 개월 전만해도 그 위치에 있었다는 걸 들어 ‘무능한 지도층’이라고 말해야 옳다고 지적했다.

방한이 예정되어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며 반미냐 친미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김훈 작가는 명쾌한 자신의 입장을 얘기했다. 즉 자신 같은 세대에서 친미란 ‘생존’의 문제였다는 것. 그래서 <남한산성>에서도 등장했던 생존을 위한 ‘사대’의 선택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가 말했듯 필요에 의한 사대가 ‘사대주의’로 이데올로기화되는 건 잘못된 일이라며 반미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탈미’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은 우리네 현실이 처한 다양한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그 때 그 때 올라오는 이슈들에 대해 이 프로그램이 서로 다른 입장을 대리하며 토론을 벌이기 때문이다. <썰전>의 이러한 양상은 그래서 고스란히 우리네 현재의 정치나 경제, 사회 이슈들에 대한 국내의 많은 갈등양상들을 그대로 담아낸다.



그리고 이런 사태에 대한 입장차와 의견 대립은 사실 지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병자호란 같은 그 옛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도 존재했던 것들이다. <남한산성>을 보다보면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결이 마치 <썰전>을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건 그래서다(물론 김훈 작가가 지적했듯 건더기 없는 토론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서 김훈 작가는 <썰전>이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나누는 자리로서 의미가 있다고 하면서도 대결과 대립만으로는 얻어질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분명히 했다. 물론 하나의 프로그램으로서 <썰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태에 대한 양자의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는 이 장에서 대결과 대립을 넘어 어떤 타자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시간들 또한 필요하다는 건 김훈 작가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그건 <썰전>에도 필요하지만 우리네 정치권이나 여론의 대결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필요한 일일 수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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