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복수자들’, 연기 색깔 다른 세 중견 여배우의 호흡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인기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은 소소한 재미가 있는 반면 다소 심심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늘어지는 부분들이 존재하고 편집점이 핀트가 맞지 않는지 호흡이 끊기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또한 이미 짐작 가능한 이야기를 짐작 가능한 방식으로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암동 복수자들>은 그 단점들 때문에 채널을 돌리고 싶지는 않다. 무언가 계속 지켜보고 싶은 매력이 있는 작품인 것이다. 그 매력 중 하나는 이 드라마에서 각기 다른 개성으로 연기하는 세 중견배우 라미란, 명세빈, 이요원에 있다. 겉보기에는 연기 패턴 상 비슷한 점이 없을 것 같은 이 세 여배우의 호흡은 의외로 인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이들은 각각 그동안 보여 왔던 연기패턴을 적절히 응용하면서도 웹툰 원작에 알맞은 만화적인 인물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개성이 다른 이 세 배우의 연기가 겹쳐지면서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에도 입체감이 생긴다. 이 정도면 시너지를 내는 세 여배우를 캐스팅한 공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암동 재래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홍도희 역의 라미란은 <부암동 복수자들>에 팔딱팔딱 뛰는 생명력을 살려주는 중요한 역할이다. 영화 속 산악대원에서부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1980년대 엄마, 그리고 주말드라마의 며느리까지 못하는 역할이 없는 이 여배우는 웃음과 울컥을 빠른 시간 안에 가로지르는 힘이 있다.

<부암동 복수자들> 속 홍도희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는 아들 김희수(최규진) 때문에 그녀가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하는 장면들은 이 만화 같은 드라마를 순식간에 리얼리티 있는 드라마로 바꿔 버린다. 동시에 몇몇 유쾌한 장면들은 이 배우 특유의 익살로 그 재미가 몇 배는 풍성해진다.

반면 재벌가의 밖에서 들여온 딸이자 재벌가와 정략결혼 했지만 불행한 삶을 사는 김정혜를 연기하는 이요원의 연기는 라미란과 반대지점에 있다. 언젠가부터 이요원은 정지화면 같은 연기를 꽤 잘 하는 배우가 된 것 같다. 언뜻 보면 답답하지만 그 안에 섬세하고 인상적인 결이 있다.



다소 평범한 인상을 느껴질 드라마가 독특하게 느껴지는 건 이요원이 최근에 보여준 이 배우 특유의 분위기 덕도 있다. 거기에 종종 무뚝뚝한 귀여움까지 드러내면서 <부암동 복수자들>은 이 배우의 매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작품이 된 듯하다.

또한 그간 재벌가 여성인물을 종종 연기했지만 냉정하고 워커홀릭 같은 존재들이라 딱딱한 드레스코드 위주였던 이요원은 <부암동 복수자들>에서는 전혀 다른 드레스코드를 보여준다. 김정혜는 돈 많고 답답한 삶을 쇼핑으로 푸는지 상당히 화려하고 유니크한 드레스코드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패션잡지 모델 출신답게 이요원은 이 옷들을 다 시크하게 소화한다. 물론 꽃무늬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심심한 장면으로 흐를 때가 많은 <부암동 복수자들>에서 이요원의 화려한 옷걸이 연기는 그것만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한눈에 잡아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중상류층 가정의 조용한 주부를 연기하는 이미숙 역의 명세빈 또한 <부암동 복수자들>을 통해 본인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고아로 태어나 자존감 없이 살아온 이미숙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 배우는 처연하고 불쌍한 역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이 <부암동 복수자들>의 캐릭터와 맞물리며 꽤 인상 깊게 드러난다.



또한 이 배우의 과하지 않은 안정적인 연기는 이요원과 라미란이 보여주는 날카로운 대칭 같은 연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준다. 특히 <부암동 복수자들>에서 명세빈의 연기는 조용하고 은은해서 매력적이다. 중견 여배우가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지르거나 과장해서 자신의 신세한탄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 역할을 소화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시이기도하다.

그리고 <부암동 복수자들>이 지닌 매력은 바로 이런 명세빈의 연기패턴과 비슷한 면이 있다. 제목에 복수하는 사람들이 들어가지만 이 드라마는 사실 그리 잔인하지 않다. 너무 시끄럽고, 너무 자극적이고, 너무 피비린내 난무하는 드라마들이 넘쳐나지만 <부암동 복수자들>은 조용하고 소박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이들의 복수는 초등학생들의 장난만큼 유치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부암동 복수자들>에서의 복수는 실은 누군가를 해하기 위한 폭탄보다 억눌린 이들이 답답한 내면을 터트리는 폭죽 같은 것에 가깝다. 그리고 그 폭죽을 터트리기 위해 상처받은 사람들끼리의 따뜻한 연대가 이어지는 장면을 지켜보는 건 흐뭇한 일이다. 알고 보니 이 드라마 복수극으로 위장한 휴머니즘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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