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 성인 연기자 등장이 더없이 반가운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SBS <뿌리 깊은 나무>에서, 숱한 고뇌 끝에 극적으로 ‘나의 조선’에 대한 해답을 얻었으나 여전히 아버지 상왕(백윤식)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이도(송중기)는 ‘집현전 따위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아버지의 다그침에 이렇게 답했다. “권력의 독을 감추고, 칼이 아닌 말로서 설득하고, 모두의 진심을 얻어내어 모두를 오직 품고, 하여 모두가 제 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게 하는 그런 조선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릴 것이옵니다. 전 오직 문으로 치세를 하려 합니다. 모든 무는 오직 외적을 방비하고 영토를 수호하는 데만 쓸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폐부를 찌르는 일침이 숨겨진 답에 상왕은 가소롭다는 듯 되물었다. “왕도와 치세는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설마 사대부들이 왕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경연을 생각하는 것이냐? 아직 26년 밖에 안 된 조선의 왕의 자리는 그리 한가롭지 않다. 밀본, 밀본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느냐? 정도전, 그자가 밀본을 만들었고 또한 정도전의 생질 정기준이 살아있지 않느냐. 밀본의 무리를 정기준이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에 이도는 기억나지 않는 양 말꼬리를 흐렸지만 이내 어린 시절 부왕의 폭정을 일깨워주고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직언으로 충격을 주었던 정기준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조선을 세우는 데에 정기준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나의 조선엔, 나의 집현전엔 그자가, 정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호위무관 무휼(조진웅)을 불러 정기준을 필히 구해오라 명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허나 이리 안타까울 데가 있나. 폭풍의 눈이어야 마땅할 정기준(신동기 분)의 등장은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아역 연기자의 연기가 도무지 기대에 미지치 못했기 때문인데 어린 이도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던 인물이니만큼, 이 드라마의 근간을 흔들 열쇠를 지닌 인물이니만큼 그에 합당한 범상치 않은 기개가 느껴져야 하건만 지극히 평범한 연기 탓에 빛이 바래버린 것이다. 따라서 캐릭터의 매력도, 뒤를 이을 성인 연기자에 대한 관심까지도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중간에 잠깐 등장한 청년 정기준의 눈빛은 다행히 심상치 않았으나 존재감을 되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어린 이도 역의 연기 또한 막상막하로 실망스러웠다. 최근 SBS <무사 백동수>나 MBC <계백>에서 보여준 아역들의 출중한 연기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훗날 이도와 대립관계로 극의 양축을 이룰 강채윤(장혁)의 아역 똘복이(채상우)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연기가 문제라기보다는 설정을 지나치게 그악스런 인물로 잡는 바람에 매력이 반감된 경우라고 하겠다. 이처럼 호감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아역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게 된 다음 주자들은 과연 어떤 연기를 보여주게 될까?









반면 칼과 피로 왕의 자리를 얻은 아버지 상왕 밑에서 숨죽여 지내야 했던, 그러나 실은 말과 설득으로 민심을 얻는 정치 기반을 닦고 있었던 외유내강의 청년 왕 이도. 허수아비 노릇이나 하던 왕이 한 노비 아이를 지켜내고자 아버지와 대적하기 시작하고 이를 계기로 왕도를 열어가는 갈등의 과정을 송중기는 심도 있게 잘 그려냈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송중기의 퇴장에는 아쉬움을, 이하 다른 아역들의 퇴장은 두 손 들어 반기는 상반된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아역에서 이야기가 시작될 경우 아역 연기자와 성인 연기자의 적절한 균형은 극 성공의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아역들의 서툰 연기가 극의 몰입을 방해하여 시청률을 떨어뜨리는가하면 때로는 아역의 연기가 빼어나 세간의 주목을 받을 경우 성인 연기자의 등장을 한동안 늦추는 극단의 조취가 취해지기도 하니 성인 연기자 입장에서는 이래도 저래도 초조한 상황일 게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는 우려를 딛고 4회 중반, 아역 연기자에서 성인 연기자로의 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시간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물소리를 배경으로 연못에 비친 송중기가 한석규로 바뀌는 장면은 지난 날 MBC <대장금>의 성인 장금(이영애)이의 첫 등장에 필적할 명장면이었다. “우라질, 우라지게 많다. 이 얼마나 내 정서를 잘 표현한 말이냐.”라는 대사 한 마디로 이도 세종의 존재감은 더욱 곤고해졌으니까. 연출이며 대사, 연기자의 연기력까지 삼박자가 잘 맞았던 한석규의 등장으로 송중기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조금은 희석되었지만 한동안은 그렁그렁하던 눈빛의 송중기를 잊지 못하지 싶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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