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도’, 조금만 더 담백하게 만들었다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사랑의 온도를 맞추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사람들마다 로맨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온도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맨스물 작품은 대개 사랑에 대해 각기 다른 온도를 지닌 두 사람이 갈등을 겪어나가며 함께 적절한 온도를 맞춰가는 과정들을 그려간다.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 역시 이러한 로맨스물의 플롯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랑의 온도>는 드라마 작가 이현수(서현진)와 연하의 쉐프 온정선(양세종)이 사랑의 온도를 맞춰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자기와 사랑의 온도가 맞는 상대를 뒤늦게 발견한 제작사 대표 박정우(김재욱)와 이기적인 소유욕의 열정을 사랑의 온도로 착각하는 지홍아(조보아)가 있다.

문제는 과거의 내가 지금과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방 또한 과거에 나를 사랑하던 때의 감정의 온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랑의 온도>에서 몇 년 만에 재회한 이현수와 온정선 사이에 갈등의 골이 생겨난 것은 그런 까닭이다. 과거의 그녀는 연하남 정선의 적극적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 역시 정선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그녀에겐 성공이 더욱 중요했다. 작가지망생인 그녀에게 드라마작가에 입봉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더구나 정선을 짝사랑하는 홍아의 거짓말 때문에 현수는 정선을 믿을 수 없는 바람둥이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선이 프랑스로 떠난 후에야 현수는 그 남자가 그녀의 삶에 차지하는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허나 시간이 흐른 뒤에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또 달라진다. 현수의 마음은 여전히 정선을 사랑했던 그대로다. 아니, 오히려 공백의 시간 동안 그와의 사랑을 환상 속에 곱씹은 사랑의 온도를 더 높여 놓았다. 하지만 프랑스로 떠나기 전 현수에게 배신당했다고 믿은 정선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공백의 시간 이후 두 사람이 다시 사랑의 온도를 맞춰가는 과정을 드라마는 꽤 그럴싸하게 그려나간다. 어느덧 배신감에 시든 꽃처럼 변한 청년의 입가에는 다시 환한 미소가 되살아난다. 공백의 시간 동안 옛 사랑의 환영만 품고 살던 그녀는 체온이 있는 그 남자의 몸과 목소리를 들으며 행복을 체험한다.



한편 공백의 시간에 현수의 옆을 지켜준 드라마 제작사 대표 박정우가 있다. 극 초반 현수가 재수 없게 느끼던 정우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현수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신뢰란 사랑과 비슷한 단어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종종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고 결혼한다. 허나 공백의 시간 동안 내 옆에 존재하지 않던 사람과도 사랑의 온도를 키워간 현수에게 신뢰는 사랑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현수가 정우에게 하는 말은 꽤 의미심장하다.

“어릴 때는 사랑이 신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요. 사랑과 신뢰는 다른 단어고, 신뢰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현수)

이처럼 <사랑의 온도>는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장점이 유지되지 않는 건 애써 그것들을 멋있게 포장하려는 포장지 탓이 크다. 현수와 정선, 두 사람이 평범한 연인처럼 다정하게 노닥거리는 장면들은 항상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 평범한 사랑을 비범하고 운명적인 사랑인 듯 포장할 때 드라마는 좀 부담스러워진다. 혹은 등장인물들이 1990년대 세련된 트렌디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겉멋 든 대사를 읊을 때면 의도와 달리 마냥 촌스럽게 다가온다.



깔리는 음악은 쓸데없이 과잉이고, 어떤 장면들에는 너무 과하게 힘이 들어가 있다. 종종 주인공이 자기 감상에 빠져 독백처럼 처연한 대사들을 내뱉을 때면 왜 저러나 싶을 때도 있다. 시청자가 느끼는 감정의 온도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감정의 온도가 훨씬 더 뜨거워서 어긋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뜨거움의 이야기가 집중될 만큼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요리로 표현하자면 평범한 재료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한껏 맛을 냈지만 뒷맛이 좀 느끼하다. 조금만 더 담백했더라면 늦가을에 보기 좋은 꽤 괜찮은 사랑 이야기였을 텐데 아쉽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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