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좀처럼 ‘거인의 어깨’가 드러나지 않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라디오 스타>가 잠시 떠난 수요일 11시, 여러 프로그램들이 생겨나 경쟁을 하고 있다. 지난 달 18일 첫 방송을 시작한 채널A의 <거인의 어깨>도 그중 한 프로그램이다. 아이작 뉴턴이 말한 “나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에서 제목을 착안한 또 하나의 인문학 강연 예능으로 진중권, 조승연, 서민, 김지윤 등의 고정 강연자를 비롯해 과학칼럼니스트, 뇌과학자, 사회학자, 통계물리학자 등등 방송가와 강연계에서 핫한 전문 강사들과 지식인들이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릴레이 강연을 펼친다. 한 가지 특징은 중간 중간 강연자들이 MC진인 서장훈, 혜림, 김풍 등과 함께 토크를 나눈다는 점인데 <어쩌다 어른>과 <비정상회담>의 특징을 섞어놓은 듯하다.

첫 번째 주제는 먹방과 쿡방 신드롬을 다룬 ‘푸드 포르노그라피’였고 두 번째는 ‘혼말의 시대, 너와 나의 대화’라는 주제로 SNS를 통한 의사소통, 점점 개인화되는 인간관계 등을 사회심리학적 해석과 언어의 규제,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로 나눴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남녀갈등과 함께 젊은 세대들에게 늘 뜨거운 화두인 수저론과 관련된 계급과 차별에 관한 이슈를 유럽 귀족의 역사부터, 뇌과학, 사회학, 미학 등 문화인류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거인의 어깨>의 가장 큰 특징은 강연자의 레파토리를 방송 콘텐츠로 갖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 시청자들이 관심가질 만한 이슈를 주제로 먼저 선정하고 다양한 시선과 학문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여러 강연이 모여서 하나의 풍성한 수업을 이룬다.

실제로 토론이나 논의가 활발한 이슈를 다루다보니 관심도 가고, 콘텐츠와 강의력이 검인증된 강연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까닭에 유익한 정보도 많다. 조금만 흥미를 붙이고 보면 조승연을 이상형이라고 꼽는 혜림의 대학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질만한 볼거리는 충분하다. MC진의 역할도 적절하게 스며들어 있다. <거인들의 어깨>라는 타이틀의 중의적 해석이기도 한 MC 서장훈은 토크 시간에 강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단순히 답변을 듣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넘어서 인공지능에 대해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궁금한 이야기를 던진다거나 이런저런 반문들, 그리고 강의 내용과 관련한 당부의 말까지 잊지 않는다. 역할이 아직 모호하긴 하지만 두 보조 MC도 부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상황은 전혀 아니다.



한마디로 유익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강연 콘텐츠다보니 내용면에서 별다른 흠 잡을 구석도 없다. 그렇지만 재밌냐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난처하다. 현안 이슈를 다룸에도 방송은 이슈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채널의 낮은 브랜드파워와 함께 좋게 말하면 후발주자,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아류 프로그램의 명확한 한계 때문이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인문 예능은 아무래도 <알쓸신잡2>다. 강연식 인문예능의 홍수 속에서 방향을 틀어서 나영석 사단의 슬로라이프, 여행, 밥상에다 인문학과 관련 출연자를 접목했다. 모두가 인문학 콘텐츠를 강연의 틀과 캐스팅 안에서 변주하는 것을 고민할 때 일종의 대단한 상상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런데 이 이후 탄생한 <거인의 어깨>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을 만큼 한발 더 나아간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슈의 시의성, 토크쇼 구성의 도입, 짧은 호흡의 릴레이식 강연이란 나름의 특징들이 있지만 결국 강연 예능의 틀 안에 머물고 있는 것들이다. 이미 자리 잡은 <어쩌다 어른>이나 <차이나는 클라스>를 넘어선 무언가가 <거인의 어깨>에 있다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서장훈은 3회 오프닝에서 우리끼리 좋은 추억으로 남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히트 상품이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조승연, 서민, 진중권은 물론 KBS1에서 활약한 김지윤 박사까지 모두 인문학 콘텐츠를 가지고 여러 방송에서 이미 유명세를 얻은 방송인들이다. 매회 추가되는 게스트들도 <알쓸신잡2>의 장동선 박사처럼 다른 곳에서 보거나 들은 인물들이다. 새롭지가 않다. 캐스팅부터 이 프로그램만의 히트아이템이 없다는 뜻이다.

보다 상징적인 장면은 이런 거다. 방송 말미에 최고의 강연자 선정하는 이벤트를 굳이 마련해 우위를 가른다. 그냥 끝내자니 예능의 색이 너무 빠진듯해 마련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굉장히 고리타분한 예능적 장치다. 이슈도 좋고 인문학 콘텐츠도 좋지만, 거인의 어깨를 빌려오는 상상력이 아쉬운 대목이다. 거인의 어깨에 너무 쉽게 접근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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