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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주혁을 떠나보내며 자꾸 눈에 밟히는 장면들
기사입력 :[ 2017-11-03 12:19 ]


故 김주혁의 사극들 그리고 <아르곤>과 <1박 2일>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김주혁은 사고 사흘 전 제1회 더 서울 어워즈에서 영화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영화 데뷔 20년 만에 처음 받는 연기상이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꾸준히 좋은 연기를 선보여 왔던 그이기에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TV 쪽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02년 SBS <라이벌>부터 최근 tvN <아르곤>까지, 15년간 주연작을 선보여 왔으나 연기상은 2005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으로 SBS 연기대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받은 최우수상이 유일했다. 가장 최근에 받은 TV 부문상은 연기가 아니라 리얼버라이어티에서의 활약으로 받은 KBS 연예대상이었다.

하지만 상복과 인연이 없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김주혁이 훌륭한 배우였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한다. 김주혁은 연기 생활 20년 동안 신인시절 2년여를 제외하고 줄곧 주연 배우로 활동했다.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소위 말하는 ‘대박’ 작품이나 한류의 힘을 등에 없지 않고도, 영화와 드라마 분야 양쪽에서 20년 간 주연의 자리를 유지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안정적인 연기력과 성실한 자기관리 아니고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40대에 처음으로 예능에 고정 출연을 한 것이나 올해 영화 <공조>에서의 악역 조연 변신은 그가 도전에도 인색하지 않은 배우임을 증명한다. 이번 주 <삼분지계>는 이 훌륭한 배우가 TV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빛났던 순간들을 돌아본다.



◆ <무신>과 <구암 허준>, 연기변신을 보여준 두 편의 사극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나 황망하게 타계한 김주혁 씨 소식을 방송, 특히 종합편성채널들이 경쟁적으로 다루는 중이다. 갖은 추측에 사생활 언급도 천불나지만 패널 몇몇이 ‘이제 막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인데 안타깝다’는 어이없는 소리로 뒷목을 잡게 만든다. 지금껏 연기력을 의심 받아본 예가 없는, 자신보다 캐릭터를 위한 연기에 충실했던 배우에게 무슨 말인지 원. 그의 연기를 제대로 접해 봤느냐 묻고 싶다. 국민드라마로 불릴 흥행은 아니어도 그의 출연작은 허투루 넘길 것이 없었다. 굳이 다시보기를 하나 권하자면 <무신>이다.



2012년 2월부터 9월까지 방송된 56부작 MBC 대하 사극 <무신>은 노예 신분에서 천신만고 끝에 최고의 권력자로 등극한 고려시대 실존 인물 김준(김주혁)의 일대기다. 사실 무인정치 미화로 다가오는 등 마뜩치 않은 부분이 있었으나 주인공 故 김주혁 씨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열연이 좋아서 챙겨 봤었다. 여느 사극과는 달리 초반 아역 분량 대신 10회 안에 승려에서 노예, 전사, 무사로 4단 변신이 이루어져 화제가 됐는데 엄동설한에 삭발까지 감행하는 등 고생 깨나 했지 싶은 장면이 무수히 많았다. 그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신>에 이어 135부작 MBC 일일드라마 <구암 허준>. 같은 사극이고 같은 성공 스토리지만 눈빛이며 표정, 행동거지까지, 인물 설정은 전혀 달랐다. 그렇게 1년 반여를 드라마에 매진했건만 KBS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 새 멤버 첫 여행 당시 거리 인기투표에서는 아쉬운 반응을 얻고 말았다. 아연해 하던, 민망해하던 모습 또한 생각난다. 그날 투표에 참여한 나이 어린 학생들은 사극을 잘 보지 않지 않느냐, 그러니 당연한 결과라는 위로의 말을 누구도 해주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왜 하필 그 장면이 자꾸 눈에 밟히는지 모르겠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아르곤>, 견고한 나무 같은 연기가 빛났던 드라마

<아르곤>에서 탐사보도팀 아르곤을 이끄는 수장 김백진(김주혁) 기자는 “매년 시청자가 뽑은 신뢰하는 언론인 3위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김주혁이 김백진 역에 최적의 캐스팅이었다는 것은 이 설명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최고의 인기배우 순위에서는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가장 신뢰할만한 이미지의 배우라면 김주혁 말고는 생각나는 이들이 별로 없다. 김주혁은 많은 드라마에서 바로 그 미덥고 단단한 표정과 연기로 다른 이들을 지키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SBS <프라하의 연인>의 강철 같은 형사, MBC 사극 <무신>과 <구암 허준>에서의 난세 영웅, 그리고 <아르곤>의 올곧은 언론인까지, 김주혁의 견고한 나무 같은 연기를 통해 한층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김주혁의 진가는 최근작 <아르곤>의 마지막회에서 가장 빛난다. 미드타운 비리의 실체를 알아내고도 모든 보도 통로가 막히자, 김백진은 언론인상 시상식장에서 수상 소감 대신 진실을 밝힌다. 그 진실에는 어쩌면 비리를 막을 수도 있었던 3년 전의 제보를 무시하고 오보를 냈던 자신의 과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백진은 오보의 진실을 고백하고 수상을 거절하며 동료 언론인들에게 당부한다.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전하는 것이 뉴스의 본질입니다. 제대로 판단하고 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책임입니다.” 감동을 유도하기에는 너무도 교과서적이고 뻔한 이 장면은, 그러나 김주혁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확고한 말투와 표정을 거쳐 공감을 얻게 된다. 배우의 힘이란 그런 게 아닐까. 김주혁의 김백진이 다시 보고 싶다.



◆ <1박2일>, 제 쓰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망가져 주던 예능인

본인은 자신이 충분히 망가지지 못해 프로그램에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김주혁은 예능에 출연할 때면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첫 시즌 첫 호스트로 출연해 괴상한 오디션 영상을 찍고 PPL이 난무하는 콩트를 뻔뻔스레 연기했던 그가 아니었다면 tvN [SNL 코리아]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구탱이 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 시즌 3도 마찬가지다. 그가 배우로 쌓아왔던 로맨틱하고 지적인 이미지는 예능에서는 훌륭한 코미디의 소재가 됐다. “저렇게 빛나는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이 여기서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는 낙차가 자아내는 웃음은 몹시 강력한 것이었고, 김주혁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활용했다. 첫 화부터 그는 앞니에 김을 끼우고 영구 흉내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 현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인기투표에서 0표를 얻는 굴욕을 겪고, 혹한에 얼음물로 등목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어떻게든 벌칙을 피해보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앞선 시즌의 맏형들이었던 강호동, 엄태웅, 김승우, 유해진이 나름 솔선수범하고 멤버들을 진두지휘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면, 김주혁은 어지럼증으로 코끼리코를 할 때마다 멀미를 호소하고 상식 퀴즈를 진행할 때면 기존의 이미지를 처참하게 파괴하는 허당 기질로 앞장서서 망가지며 시즌 3의 중심축이 됐다. 강원도 인제로 떠난 2015년의 첫 여행('그 많던 명태는 다 어디로 갔나' 특집), 영하 15도의 혹한 속에서 김주혁은 멤버들이 퀴즈를 틀릴 때마다 옷을 한 겹씩 벗다가 끝내 웃옷을 다 벗은 채 눈을 뒤집어쓰는가 하면 차가운 겨울 바다 안으로 들어가고 얼음물로 등목을 하기에 이르렀다.

옷 벗기 퀴즈 게임 중 떡진 머리카락을 감춰보겠다며 스웨터 대신 바지를 벗던 순간, 김준호가 “곧 있으면 스릴러(영화) 개봉하는데”라며 웃자 김주혁은 이렇게 답했다. “여러분, 신인상(2014 KBS 연예대상 쇼/오락부문 남자 신인상) 받으면 이런 거 해야 돼요.” 그런 그가, 아주 오래 많이 그리울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tvN,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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