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멤버들처럼 우리는 내내 김주혁을 그리워할 것이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오늘날 <1박2일>은 비평의 가치가 없는 예능이다. 조금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다만, 프로그램 자체의 질이 형편없어서라는 말은 아니다. 같은 방송사의 <불후의 명곡>과 마찬가지로 관성의 힘을 따르기 때문에 비평 거리가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무엇, 짚고 넘어갈 유의미한 변화 대신 익숙함이 주는 재미와 감동이 시청자와 프로그램 사이에 이미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박2일>은 추석 이후 파업 여파로 정상적인 촬영이 불가했다. 그런 상황에서 KBS는 기존 제작진 대신 외주 인력과 간부들로 대체한 제작진이 촬영을 진행해 4주간 방송을 강행했는데, 시청률과 방송 함량 모두 눈에 띌만한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파업 중이라 스페셜로 대체 편성됐음에도, <1박2일>을 챙겨보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몇 해 전 김주혁이 2년간 우리에게 줬던 즐거움을 다시 한 번 꺼내보고 싶어서다. 그리고 지난 주 <1박2일>이 파업 중임에도 ‘고 김주혁 스페셜 편’을 준비한 덕에 그 시절의 기억을 보다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었다.

김주혁은 긴 어둠의 시기를 걷던 <1박2일>이 제2의 전성기를 마중한 마중물이었다. 다소 뻔한 멤버들 사이에서 신선한 기대를 더했고, 그의 여유 넘치는 태도는 에너지와 개성이 넘치는 멤버들이 뛰어 노닐 수 있는 멍석이 되었다. 그렇게 김주혁과 함께 뭉친 멤버들은 ‘이 멤버 리멤버’라는 다소 유치하지만 라임은 딱 맞는 구호에 걸맞은 케미스트리를 구가하면서 오늘날 뭘 해도 시청률 13%는 나오는 관성의 힘을 만들어냈다.



<1박2일>을 이끌어주는 관성은 멤버들 간의 끈끈한 유대에서 비롯된다. 몇 년째 엇비슷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여전히 시청자들과 정서적 공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바로 정 때문이다. 이들의 우정이 시청자들의 충성을 이끌어낸다. 실제로 오늘날 <1박2일>은 2000년대 중후반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의 사람 냄새가 남은 유일한 쇼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굳건한 이유는 온 가족이 모이는 일요일 저녁처럼 무심한 듯 따뜻한 정과 사람 내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가 다시 시작된 것은 몇 해 전 유호진 PD체제로 새롭게 출발하면서부터다. <1박2일>은 구탱이형 김주혁부터 얍스 김준호까지 자신만의 확고한 캐릭터를 갖춘 멤버들의 조화를 바탕으로 긴 암흑기를 벗어나 새롭게 피어났다.

그 당시 김주혁의 합류는 여러 가지 이슈와 우려를 낳았다. 그 이전에 김승우, 엄태웅, 유해진의 실패 사례가 쌓여 있는 데다 김주혁은 대중적 친화도는 그들보다 낮았다. 하지만 나무엑터스의 김종도 대표는 사회성이 결여된 김주혁에게 좋은 기회인 것 같다며 캐스팅을 밀어붙였다. 촬영장에서 본 김주혁은 역시나 다른 멤버들과 결이 확연히 달랐다. ‘아침엔 역시 빵이지’라는 지론을 가진 ‘빵형’ 김주혁은 <1박2일>의 전반에 흐르는 다소 순박함(혹은 촌스러움)의 인자가 DNA 자체에 없었다.



하지만 김승우나 엄태웅처럼 망가짐을 보필 받지도 않았고, 큰 형이란 권위의식은 아예 없다. 뭐 별것 있겠냐는 투의 태도, 모르고 당하는지 알면서 당하는지 모를 순진함은 색다른 캐릭터를 그리는 새로운 질감의 물감이었다. 게임만 하면 낭패를 면치 못하고, 다른 멤버들이 작당해서 함정에 빠트려도 자신의 운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당하는 캐릭터이긴 한데, 좀 불리하게 돌아가면 샐쭉거리면서 앙 다문 입술 사이로 찰진 멘트를 날렸다는 점에서 위트가 있었다.

김주혁의 캐릭터가 사랑받은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는 주연 배우 출신이 예능에서 망가진다는 뻔한 길을 가지 않았다. 시즌2의 배우 출신 출연자들과 달리 자신의 성향에 맞는 역할을 스스로 찾아냈다. 정말 자연스럽게 <런닝맨>의 이광수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데서 인간적인 매력이 샘솟았다. 이는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캐릭터를 드러내고 인간관계를 쌓아가는 <1박2일>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였으며, 김주혁이 숨은 에이스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였다. 이처럼 김주혁의 수줍음을 머금은 내성적 성향과 예능에 녹아들려는 노력이 합쳐져 기존 예능에 없던 소심하고, 늘 운이 없으며, 게임에 능하지 못하지만 왠지 만만하지는 않는 ‘구탱이형’ 캐릭터가 탄생했다.



<1박2일>에 출연하기 전까지 김주혁은 연애 소식 외엔 대중 앞에 사생활을 크게 드러내지 않은 천상 배우였다. 한 가지 눈에 띈 것은 패션과 쇼핑인데, 앤트워프 식스의 옷부터 60~70년대 오리지널 빈티지와 당대 한창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일본 아메카지 브랜드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그의 착장은 확고하고도 세련된 취향을 무심한 듯 드러냈다. 옷은 치밀하게 입지만 태도에선 친절함과 편안함이 묻어나왔다. 이런 스프레차투라가 가능했던 이유는 김주혁에게 패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오랜 시간 단련된 취향이기 때문이다.

그는 야외 촬영이 많은 <1박2일>에서 당시 맨즈웨어의 화두이기도 했던 아메카지 패션을 주로 선보였다. 내복에도 레이어드를 먼저 신경 쓰고 비니를 살짝 얹어 쓰고 스웻셔츠에 머플러를 두를 줄 아는 남자였다. 40대에 접어든 출연자 중 최고 연장자지만 당시 맨즈웨어의 최신 경향을 우리나라 방송에서 자연스럽게 소화한 최초의 연예인이자 새로운 유형의 ‘형’이었다. 두툼한 패딩을 입고 노지에서 뒹구는 <1박2일>에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도시 형의 출현은 색다른 그림과 재미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1박2일>을 통해 더 가까워진 김주혁은 지켜보면 볼수록 인간적인 매력이 깊게 우러나는 사람이었다. 낯가림이 심해서 그렇지 알고 보면 정말 재밌고, 친해지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은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해지는 관계처럼 꾸준히 함께한 시청자들에게 꽤 많은 애정과 웃음을 남긴 예능 캐릭터였다. 게다가 옷도 잘 입어서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궁금한 ‘형’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 들려온 그의 소식은 더욱 더 큰 충격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김주혁이 우리에게 남긴 좋은 사람이 풍기는 여유로움과 단련된 취향에 깃든 멋, 기분 좋은 미소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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