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옥’, 어쩌다 뻔한 조폭 누아르에 머물렀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사실 조폭 누아르는 이제 좀 식상하다. 칼질이 난무하고 요즘은 아예 총질도 일상이 된 지 오래. 어떻게 하면 더 잔인할까를 고민하는 듯한 조폭 누아르라는 장르는 그래서 폭력 자체가 불편한 관객에게는 공포영화만큼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나마 조폭 누아르가 이러한 폭력을 허용했던 한 가지 지점은 그것이 우리네 현실의 권력 시스템을 고스란히 축소해 보여주는 고발적 성격이었다.

특히 조폭 누아르가 거친 남성들의 세계만을 부각하며 남자들만의 전유물이라 치부됐던 지점은 여성 관객들이 이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김혜수가 원톱으로 출연해 화제가 된 영화 <미옥>은 어떨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조폭 누아르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그 점 하나를 빼고 나면 전혀 여성과는 상관없는 영화다. 사실 어찌 보면 미옥(김혜수)이라는 캐릭터 역시 김혜수가 연기하는 조폭 누아르의 남자주인공처럼 보인다.



<미옥>은 전형적인 조폭 누아르가 가진 내부 분열의 이야기를 소재로 가져왔다. 두목이 있고 잘 커오던 조직에 내분이 벌어지며 그래서 파국으로 달려가는 흔한 그 이야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 조직의 오른팔 중 한 명이 미옥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남성 조폭 누아르의 남자들이 벌이는 브로맨스 대신 전형적인 3각관계의 멜로가 깔려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없애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이 멜로적 상황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미옥이지만, 조폭 누아르 장르에마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 멜로적 상황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그려진 그 자체가 너무 상투적이다. 특히 미옥이 어떤 각성을 하게 되는 그 계기로서 등장하는 모성애적 접근은 영화를 너무 뻔하게 만들어버린다. 만일 여성적인 관점에서의 통쾌한 액션을 보기를 원했던 관객이라면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영화가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그 시선 속에서 여성이 성적 대상으로 그려지는 점은 제아무리 비판적 관점이 투영된 장면이라고 해도 과하게 다가온다. 그 지나침으로 인해 비판이 아닌 선정성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브로맨스를 다루는 조폭 누아르들이 주로 남성들 간의 폭력을 다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가진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은 훨씬 더 보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유일한 한 가지는 김혜수다. 쉽지 않은 액션 연기를 김혜수는 자신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와 카리스마로 풀어낸다. ‘미옥’이라는 제목의 풀이처럼 포스터에 표현된 ‘아름답고 잔인한’ 그 면면을 김혜수는 제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제아무리 김혜수라고 해도 조폭 장르에 어설픈 멜로구도와 모성애 설정 같은 것들이 가진 식상함을 이겨내기는 어렵다.



여성 원톱 조폭 누아르라는 시도는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여성 원톱 조폭 누아르’가 되는 것은 아닐 게다. 남성이 했던 그 역할에 여성을 그냥 대치하고, 오히려 여성성을 하나의 틀에 박힌 장치로 활용하는 캐릭터가 대중들이 원하는 진정한 여성 주인공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미옥>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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