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부부’, 가족을 위한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릴 때

[엔터미디어=정덕현]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왜 맨날 죄송하고 미안하고...” 최반도(손호준)의 이 말 한 마디는 어째서 이리도 아프게 다가올까. 마진주(장나라)를 찾아가 그간 속으로 억누르고 눌렀던 마음속의 아픔이 담겨져 있어서다. 장모님의 임종을 자기 때문에 마진주가 지키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은 그에게는 가장 큰 회한으로 남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마침 한 아이를 집단 구타하는 학생들과 시비가 붙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을 뿐.

KBS 금토드라마 <고백부부>는 최반도와 마진주의 이혼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그 이혼의 계기가 된 일도 알고 보면 오해가 빚은 것이었다. 제약회사 영업을 하는 최반도는 병원장인 박현석(임지규)의 내연녀까지 관리해주며 살아가고 있었고, 마침 병원장 아내에게 들통 날 위기에 처한 내연녀를 데리고 나오다 찍힌 사진이 불륜인 것처럼 오해하게 했던 것. 자신은 가족을 위해 간 쓸개 빼놓고 술자리 시중 들어가며 살아왔을 뿐인데, 마진주는 바로 그런 삶 때문에 불행하다고 토로하는 상황이 되었다.



마진주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불행하게 느낄 일들이고, 그것은 또한 최반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의 토로가 특히 더 슬프게 다가오는 건 그의 말처럼 그는 언제나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고 또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가족을 위해 밖에서 뛰고 또 뛰는 샐러리맨들의 일상일 게다. 일 때문에 잘 해주지 못하며 살아왔어도 가족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을 테니.

‘당연한 건 없었다’는 부제가 들어간 <고백부부> 10회는 그래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게 됐던 것들이 사실은 그 어느 하나도 당연한 건 없었다는 걸 새삼 되새겼다. 아픈 마진주를 위해 약 하나를 사러가도 그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골라 약을 사는 일이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었고, 생리통 때마다 꼼꼼히 생리대와 약을 사다 주는 일도 일상이 되어버렸다. 생리통으로 아파하는 아내의 허리를 밤새 두드려주는 일도.



이런 일들은 일을 하면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병원에 약을 넣기 위해서 마치 개인비서나 되는 것처럼 갑질을 참아내는 일들 또한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고, 그러니 병원장이 내연녀를 만나기 위해 모텔을 잡는 걸 자기 카드로 결제하는 일도 또 그 내연녀를 관리하는 일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살려고 아등바등하며 살다 보니.

물론 극화된 면들이 있지만 최반도의 이야기가 특히 가슴 아프게 다가온 건 그것이 그저 드라마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져서다.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당연하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어느새 그것들이 당연해지게 된 그 순간 느껴질 수밖에 없는 많은 샐러리맨들의 허전함과 쓸쓸함 그리고 아픔 같은 것들이 거기에는 담겨져 있다.

아마도 잘못된 건 이들 부부들이 아니라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게 만드는 세상이고 현실일 것이다. 영업이라고 하면 죽어라 술을 마셔대야 하고 당연히 갑과 을이 나뉘어져 갑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해줘야만 하는 그런 현실. 그러니 그 불행한 일터의 삶은 고스란히 가정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에서 당연하지 않은 일들은 그렇게 당연하게 되어버린다. 최반도의 눈물과 토로는 그래서 이 비틀린 현실에 숨죽이며 살아왔던 이들의 아픔이 녹아 있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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