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메소드’, 퀴어 소재를 다루는 시각 차이와 한계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퀴어 연극을 소재로 한 영화가 두 편 나왔다. 한 편은 남연우의 <분장>이고 다른 하나는 방은진의 <메소드>다. <분장>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와 프라이드 영화제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아 올해 개봉됐고 <메소드>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곧장 개봉되어 지금 상영 중이다. 둘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다루는 방식은 전혀 다르며 관객이나 비평가들의 반응에도 차이가 있다.

남연우가 감독하고 직접 주연한 <분장>은 <다크 라이프>라는 트랜스젠더 주인공을 다룬 히트 번역극(밑에 나올 이유 때문에 이 정보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의 오디션에 도전하는 무명배우 송준이 주인공이다. 실제 트랜스젠더를 만나 도움을 받고 LGBT 모임에도 참석하면서 연기를 다듬은 그는 오디션에 합격하고 연극은 대성공을 거둔다.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이런 배우들이 메소드 연기를 하는 동안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거나 하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남연우의 영화는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송준은 자신의 숨겨져 있던 욕망을 발견하는 대신 (그런 거 없다) 자신의 얄팍한 선심과 위선 속에 숨겨져 있던 호모포비아와 마주친다. 연극이 성공할수록 그는 캐릭터에서 점점 멀어지고 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데 엉뚱하게도 관객들은 이 드러난 증상을 ‘명연기’로 받아들인다.

<분장>은 자기와 크게 상관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위선적이고 시혜적인 태도를 취하다가도 정작 자신의 문제가 될 때는 입을 닦는 리버럴 지식인들에 대한 야유 겸 자기 반성이기도 하지만, 연극이라는 예술의 본성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과연 연극은 우리에게 진실된 경험을 제공해주고 관객들은 이를 제대로 해석하는 게 맞는가?



<분장>에 이어 <메소드>가 나온 건 좀 당황스럽다. <분장>은 메소드 연기에 대한 미신을 놀려대는 작품으로 읽힐 수 있는데, <메소드>는 이를 너무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풍자 대상이 풍자물보다 나중에 나왔다고 할까.

내용은 이렇다. ‘메소드 배우’ 재하(박성웅)는 <언체인>이라는 창작극(월터니, 싱어니, 클레어니 하는 영어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나오는 연극이지만 창작극 맞다. 심지어 실제로 존재하는 희곡이고 지금 공연준비 중이라고.)을 준비 중이다. 상대역은 아이돌인 영우(오승훈)인데, 연극 속에서 둘은 연인 관계다. 트러블메이커인 연우를 끌어가며 캐릭터를 완성시켜가던 재하는 점점 연우에게 빠져들어간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세상엔 별별 사람들이 다 있고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는데 설마 이런 일이 안 일어날까. 하지만 여러분이 이 설정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여러분이 성적지향성과 연극이라는 예술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동안 수많은 배우들과 연극인들이 참여했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메소드>는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모두 저지른다. 영화를 보면 82분이라는 실제 러닝타임과 그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는 체감시간에 놀란다. 이는 당연한 것이, 정작 설정을 세우고 보니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다. 이래서는 설정과 결말을 잇는 설득력 있는 과정이 나오지 않는다. 그 결과 짧은 이야기가 한 없이 늘어지며 중간을 채운 ‘과정’은 실제 있는 연극이나 영화를 원본으로 한 초라한 2차 창작물처럼 보인다. 이게 실제 2차 창작물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할 것이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갖고 놀 권리가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1차 창작물은 그보다는 진지해야 한다.



두 영화를 비교한다면 외양이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분장> 쪽이 더 뛰어나고 정직하며 생각할 거리도 많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같은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다. 퀴어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져 있는 것이다. <분장>의 퀴어 캐릭터들은 연민과 혐오의 대상이고 희생자이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타자이다. <메소드>의 경우는 모든 게 인형놀이이며 설정극이라 현실이 들어갈 구석이 없다. 현실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이 영화들이 다루는 두 연극이 모두 한국 현실과 격리된 해외 배경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하긴 요새 국내에서 공연되는 퀴어 소재 연극이 대부분 그럴 것이다.

아까 퀴어 연극을 소재로 한 영화가 두 편이 나왔다고 했다. 개봉작만을 넣지 않는다면 세 편이다. 이번 여성 영화제에서 상영된 민미홍의 <어떤 알고리즘>이라는 단편이 있다. 그리고 동성애 자살을 다룬 연극을 만들려는 고등학생을 다룬 이 작은 영화는 소재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을 보았을 때 앞의 두 편보다 훨씬 성공적이다. 퀴어 캐릭터를 이용하는 창작가의 잔인함과 위선을 설득력 있게 그리면서도 대상이 되는 퀴어 캐릭터를 평면적인 도구로 소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대부분은 아마 이 영화를 볼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분장><메소드>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