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의 무엇이 시청자들을 이토록 사로잡았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시청률 37.9%(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이제 40% 돌파는 떼놓은 당상처럼 보이고, 이제는 마의 시청률이라고 할 수 있는 50% 시청률을 넘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50부작에서 이제 겨우 22부가 방송되었을 뿐이니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드라마의 무엇이 이토록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걸까. 빠른 전개가 눈에 띄고, 출생의 비밀이나 하루아침에 흙수저에서 금수저의 삶으로 바뀌는 신데렐라 판타지가 흔한 ‘막장드라마’의 혐의를 갖게 만들지만, 실상은 그것과는 다르다. 그것들이 일종의 장치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정조준하고 있는 건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금수저들만이 그럴 듯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이 드라마는 서지안(신혜선)이라는 흙수저 청춘 캐릭터의 정규직이 되려는 안간힘을 통해 그려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부모의 무너지는 마음이 투영되어 양미정(김혜옥)은 되돌릴 수 없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다. 재벌가의 실제 딸인 서지수(서은수)대신 서지안을 그 딸로 바꿔치기한 것.



하지만 서지안이 그 금수저의 세상에 들어가서 보여준 건 그 이른바 상류층이라 불리는 이들이 가진 위선적인 삶이었다. 갖가지 상류층으로서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정해놓고 살아가지만, 전혀 인간적인 삶이 되지 못하는 그들의 삶. 게다가 그들이 가진 특권의식은 ‘핏줄의식’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 노명희(나영희)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줬다. 실제 딸이 아니지만 서지안이 일에서도 능력을 발휘하고 미술에도 재능을 보이자 노명희가 말하는 “역시 내 딸”이라고 하는 말은 그 삶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드러내줬다.

결국 양미정의 범죄가 드러나고 온 가족이 모두 불행해지는 그 과정은 금수저가 되기 위해 엇나간 선택을 한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말해준다. 서지안의 부모는 죄인이 되었고, 서지안은 그 충격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서지수는 그토록 밝고 맑던 모습에서 흑화하여 비수가 되는 말들을 쏟아냈다.

흥미로운 건 서지수의 이러한 흑화가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점이다. 자신의 친부모의 집인 재벌가로 들어간 서지수는 서지안과는 달리 그들이 요구하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를 되묻는다. 그간 그것이 상류층의 예의라고 생각됐던 일들은 서지수의 한 마디에 우스꽝스런 허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금수저 부모들인 그들이 흙수저 부모인 서태수(천호진)와 양미정을 무릎 꿇렸던 것에 대해서도 서지수는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 서지수의 이런 의외의 면면들은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어 누구는 죄를 꾸짖고 누구는 죄에 대한 용서를 비는 그 관계를 무화시킨다. 서지수는 다름 아닌 금수저와 흙수저 모두의 딸이 되는 것이니.

이러한 한 바탕 금수저 흙수저를 두고 벌어지는 소동 속에서 당사자인 서지안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내린다.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서지안이 그런 수저로 나뉘는 세상과 상관없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고 또 그만한 능력도 갖고 있다는 걸. 그러니 그를 그렇게 내몬 세상의 비뚤어짐에 대한 공분 같은 걸 느끼며 동시에 그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지금까지의 드라마 흐름을 들여다보면 그저 이야기가 빠른 속도로 전개된 것만이 아니라, 그 속에 우리 사회가 현재 갖고 있는 아픈 현실들을 이 드라마가 얼마나 담으려 노력했는가를 알 수 있다.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건, 그 빠른 이야기 전개나 몇몇 코드들 때문이 아니다. 그것들이 일관되게 정조준하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공감대가 그 몰입의 실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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