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슈퍼맨이 살렸지만 ‘저스티스 리그’는 원더우먼이 살렸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사실 대중들은 DC와 마블을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마블의 슈퍼히어로물들이 훨씬 재밌다고 평가해왔다. 이렇게 된 데는 그 슈퍼히어로들의 캐릭터가 가진 특징이 상당 부분 작용한 면이 있다. 즉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은 토르 같은 신화적 존재를 빼놓고 보면 상당히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는 반면, DC의 슈퍼히어로들은 너무 신적인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DC에도 배트맨처럼 스스로도 ‘돈’이 능력이라고 말하는 평범한(?) 인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배트맨과 함께 구성된 저스티스 리그에는 아쿠아맨이나 원더우먼 같은 신화적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배트맨이 가진 로봇이나 차량 같은 과학을 이용한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신적인 능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이들이 팀이 되어 적과 싸울 때 보면 어딘지 어색한 느낌이 있다. 배트맨이 대포를 쏘고 미사일을 날리지만 그런 일들은 원더우먼이 양측에 찬 팔찌를 한번 모아 내는 파괴력을 떠올려보면 배트맨 같은 존재가 필요할까 싶은 느낌마저 준다.

그나마 배트맨과 아쿠아맨, 원더우먼 같은 조합은 그런대로 어울린다고 쳐도, 문제는 전지전능한 캐릭터인 슈퍼맨에서 생겨난다. <저스티스 리그>에서 슈퍼맨은 슈퍼히어로 중에서도 슈퍼히어로다. 슈퍼맨은 어찌 보면 <저스티스 리그>에 있는 팀원들의 능력을 모두 합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이번 <저스티스 리그>에서도 이런 부분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DC에서도 <저스티스 리그>라는 팀을 꾸릴 때 똑같이 가진 부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럽게 슈퍼맨의 사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저스티스 리그>는 깨어난 마더박스와 스테판 울프로 인해 시시각각 지구의 위기가 감지되며, 동시에 각각 산개해 있던 슈퍼히어로들,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사이보그, 플래시맨이 하나하나 모이는 과정들을 보여줬다.

이 과정들은 실로 마블의 <어벤져스>처럼 흥미진진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원더우먼은 지난 5월 개봉했던 동명의 작품이 가진 그 강렬함을 그대로 이어 이번 <저스티스 리그>에서도 발군의 매력을 뽐낸다. 영화의 시작점에 배트맨의 묵직한 액션에 이어, 인질들을 향해 기관총을 쏘는 악당들을 대적하는 원더우먼의 모습은 그간 DC가 주었던 실망감을 씻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아마존 데미스키라에서 벌어지는 액션 신들은 영화 전체를 봐도 압도적이다. 여성 히어로가 갖는 시대적 정서가 주는 묘미까지 합쳐져 원더우먼은 확실히 이번 <저스티스 리그>의 재미를 살려낸 주역이 되었다. 물론 새롭게 등장한 귀여움을 장착한 플래시맨이나 화려한 수중 신을 보여주는 아쿠마맨 그리고 스스로를 장착해 기계를 움직이는 사이보그 또한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지만.



하지만 문제는 죽었던 슈퍼맨이 부활하면서부터 발생한다. 신을 그대로 캐릭터화한 것 같은 슈퍼맨은(이번 작품에서 그는 부활하기까지 한다) 깨어나자마자 모든 것들을 압도해버린다. 그토록 무시무시한 괴력을 가졌던 스태판 울프나 마더박스조차 순식간에 무력해지는 건 역시 슈퍼히어로가 가진 미덕으로 용인할 수는 있지만, 슈퍼맨으로 인해 다른 슈퍼히어로들의 존재감이 흐릿해지는 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슈퍼맨이 없을 때까지만 해도 놀라운 능력처럼 보였던 플래시맨의 능력은 슈퍼맨이 나타나 “왜 이렇게 느리냐”고 한 마디 하자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린다. 결국 영화가 갖고 있던 긴장감은 슈퍼맨이라는 전지전능한 신적 능력의 존재가 나타나면서 일거에 사라져버린다. 포스터에는 분명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고 적혀 있지만 결국 세상을 구한 건 슈퍼맨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슈퍼맨은 일종의 와일드카드가 되었다. 제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쳐도 신이 내려와 문제를 해결하는 이른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그리스 로마 연극에서 신이 내려와 문제를 해결하는 것)’를 슈퍼맨이 해주고 있다는 것. 마블과 달리 DC의 슈퍼히어로들이 신화적이고 심지어 종교적으로까지 그려지고 있는 건 그 캐릭터들이 가진 이런 속성들 때문이다.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슈퍼맨 같은 캐릭터가 가진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래서 향후 <저스티스 리그> 시리즈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대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구는 슈퍼맨이 구했지만 작품을 살린 건 원더우먼 같은 그나마 인간적인 슈퍼히어로들이었다는 걸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저스티스 리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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