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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단순히 표절작으로 치부하기 힘든 까닭
기사입력 :[ 2017-11-29 17:17 ]


로코물인 줄 알았던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반전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처음 봤을 땐 현실 이슈를 가미한 젊은 감각의 로맨틱코미디인 줄로만 알았다. 제목부터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언어인데다, 계약결혼이란 비현실적인 소재, 초식남과 고양이, 특색 강한 조연의 배치, 발랄한 로고와 포스터 디자인들이 전형적인 로코물을 기대케 했다. 무엇보다 윤지호 역을 맡은 정소민은 이런 이야기에 어울리는 너무나 사랑스런 얼굴을 가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왜 굳이 지호를 서울대 국문과 출신으로 설정을 했는지는 관심조차 없었다. 2%로 ‘가볍게’ 시작해 5%대를 넘본 시청률 추이를 보면 다들 비슷하게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로맨틱코미디의 틀을 빌려와 2017년 오늘날 청춘들의 연애와 결혼과 행복의 삼각 고리에 대한 고민을 담은 꽤나 사변적인 드라마다. 표면적으로는 세 커플의 썸과 연애 이야기지만 그 밑으로는 가깝게는 <연애시대>, 멀리는 <청춘스케치>의 분위기와 고민이 이어진다. 다만, 배경이 2017년 한국인 관계로 20여 년 전 20대 초반 청춘들이 관통해야 했던 고민과 시행착오가 30대 즈음으로 유예됐다. 그런 까닭에 결혼이란 관혼상제를 통해 청춘의 고민을 콕 집어 마주한다.



‘19호실’이란 유행어를 남긴 국문과 출신 지호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이론 등을 설파하는 남세희(이민기)는 마치 프랑스 영화를 보는 듯한 설명투의 대사와 철학적인 내레이션을 읊조리며 연애, 결혼, 행복에 대한 물음을 시청자들과 함께 찾아간다. 정호승의 시,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 게리 베커와 괴테 등 여러 문학 작품과 학자들의 글을 빌려온 대사들과 내레이션은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방백이다.

여기에 각기 다른 유형의 커플들이 함께하면서 연애의 다양한 단상을 보여준다. 드라마 곳곳에 하우스푸어, 구너(아스널FC 팬)를 비롯해, 채팅앱, 급식체 등등 현실적인 기호들을 삽입해 친근함을 높인다. 이런 풍부한 현실감각은 연애의 갈등과 고민을 한층 더 공감하게 만든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틀에 박힌 성역할이나 관습을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이다. 결혼할 때 남자 쪽에서 당연히 집(아파트)은 해야 한다거나,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말이나, 좋은 며느리의 조건과 취집, 시집살이 등 오늘날 결혼 제도와 관습에 대해 노골적이고 지속적으로 의문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가 리드하고 여자는 수동적인 전형적인 커플 관계도 해체한다. 데이트할 때 운전대를 주로 여자 친구가 잡거나 아니면 함께 버스를 탄다. 먼저 대쉬하거나 프러포즈하는 쪽도 모두 여자다. 사실, 이런 점들은 결혼의 여러 굴레를 거부하기 전에 ‘세희’ ‘지호’와 같이 남녀 성별을 뒤집은 배역 이름에서 알아봤어야 했다.

이처럼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연애와 결혼을 둘러싸고 굳어버린 사회적 관습을 하나씩 벗겨내고 들춰본다. 어떤 사회 운동 차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달달한 로맨스를 지키기 위해서다. 주변의 시선, 흔히들 말하는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기보다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애쓰며 겪는 성장통을 달달한 멜로라인과 함께 곱게 땋는다. 그래서 더욱 공감하게 만들고 미소 짓게 만든다. 완급 조절과 배우들의 호연도 훌륭하다. 심각한 상황에서 19호실이 19금 폴더로 곡해되는 등, 로코물 특유의 설렘 가득한 공기와 웃음을 놓지 않는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사를 통해 설명하려다보니 종종 무게를 잡게 되지만, 할 말 다 하면서 설레게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만화 원작 일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꽤 많이 참조하고 차용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계약 결혼이란 핵심 설정부터, 스스로를 ‘프로 독신남’이라고 소개하는 남자 주인공의 직업과 캐릭터, 연기톤, 남녀 주인공의 처한 상황과 포스트잇으로 대화는 나누는 에피소드까지 상당 부분 유사하다. 표절 논란만큼은 처음이라 할 수 없는 전적도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현실의 결혼제도를 계약결혼이란 비현실적 판타지 요소로 변형시켜 은유를 만들어낸 절묘한 구도와 우리나라 사회의 현실을 스케치해내려는 노력과 디테일들은 이 드라마를 단순히 표절이라고 평가하기 힘든 이유다. 안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한 발 떨어져 있을 때 잘 보이는 법이다. 계약결혼이란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은 로코물을 위한 특별 장치라기보다 결혼과 사랑, 그리고 진정한 행복과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질문의 실타래에 더 가깝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진심어린 사랑이 결부되면서 나타나는 문제, 남자가 집을 장만하고 여자는 그 집 안의 며느리가 되는 식의 사회적 관습(남녀가 갑을로 맺은 계약동거는 어쩌면 이런 문화에 대한 은유다)이 굳어진 결혼제도 대해 찬찬히 살펴볼만한 기회를 제공한다. 결혼이 연애의 결말이고 사랑을 지켜주는 울타리인지에 대해 주인공들은 모두 처음이라 서툴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간다.

생각보다 쉽고 단순한 결론이 나와 조금 김이 새긴 했지만 로맨틱코미디에서 해피엔딩은 언제나 최선의 결말이다. 이 드라마는 삼포세대에게 들려주는 결혼과 사랑에 대한 찬가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사랑을 시작하고 싶게 만드는 드라마다. 일상의 행복과 소중함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오늘날 결혼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해서 뜯어보긴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가족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선물인지 설파한다는 점에서 정부에서 좋아할 만한 드라마다.



극중 주인공들은 보금자리를 대출 왕창 낀 아파트에서 자가 빌라로, 계약결혼(어쨌든 결혼)에서 이혼 후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역주행 중이지만 지내보니 생각보다 별 일이 없고, 누구보다 자신의 사랑과 행복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해피엔딩 와중에도 끼워 놓았다. 가볍게만 보였던 로코물의 로맨스가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응원으로 남은 이유다. 마지막 대사처럼 모두, 건투를 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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