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 시청자 수준을 심하게 오판했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SBS 수목드라마 <이판사판>은 젊고 괴팍하지만 정의로운 판사들의 영웅담을 그리는 작품이다. 아마 작품의도는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린 <이판사판>은 에피소드의 흐름은 이판사판에 시청자의 기호에 대한 오판까지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판사판>은 수많은 스토리를 입맛대로 고르는 시청자들이 보기에 그렇게 호감이 가는 메뉴는 아니다. 일반적인 시청자들이 보기에 검사, 변호사와 차별화된 판사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특색 있게 다가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국내까지 수많은 법정 드라마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변호사와 검사, 판사는 일종의 삼위일체 형식이다.

물론 이런 시청자들의 예상을 뒤덮고 판사들의 삶을 정말 섬세하고 밀도 있게 다뤘다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사실 법정드라마에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의 비중이 가장 낮은 것만은 사실이니까. 그들에게 분명 숨겨진 삶의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



허나 <이판사판>은 판사 스토리를 담은 섬세한 플레이팅을 보여주는 대신 이것이 판사 이야기라고 우격다짐으로 우기는 메뉴를 내놓는다. 이게 판사라고? 이거 변호사나 검사들이 등장했던 드라마 속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아니, 판사가 아니라 그냥 법학과 대학생들이 쫑알쫑알 떠드는 이야기라고 해도 믿겠는데? 스파게티 면에 토마토케첩 뿌려놓고 파스타라고 우기는 격 아니야?

<이판사판>에서 판사라는 캐릭터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고작 법복을 사용할 때다. 드라마의 남자주인공 사의현(연우진)은 법복을 입고 벗을 때 배트맨의 망토처럼 법복을 활짝 펼친다. 이 방법을 응용해 여자주인공 이정주(박은빈)는 아동성폭행범 김주형(배유람)에게 법원에서 인질로 잡혔을 때 위기에서 탈출한다. 법복을 망토처럼 촤악, 펼쳐서 그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장면이 황당하긴 한데 센스 있거나 웃기지는 않다. 더구나 법복의 새로운 활용을 위해 주인공을 판사로 했다면 진정한 오판이 아닐까 싶다. 의학 드라마를 보면 진짜 의사들은 코웃음을 친다지만, 이렇게 희화화된 판사를 보면 판사들은 화날 것 같다.



물론 <이판사판>은 최대한 ‘노오력’은 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코믹한 설정과 진지한 설정 두 가지의 길을 위해 부지런히 달려간다. 법원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은 모두 자잘한 유머코드로 엮여 있다. 또한 드라마의 진짜 큰 그림은 이 젊은 판사들이 거대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수감생활을 한 죄수의 누명을 벗겨주는 구조다. 이 구조를 위해 자신이 진짜 진범이 아니라고 법정에서 피로 유서를 쓴 여죄수가 있다. 또 여주인공 이정주의 오빠 역시 억울하게 여고생 강간범 누명을 쓰고 수감생활을 한다. 아마도 오빠를 강간범으로 오해했던 이정주가 오빠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서사가 <이판사판>의 진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들이 짐작은 가지만 초반1, 2회에서는 거기까지 가는 길들이 너무 산만했다. 특히 종종 등장하는 쉰내 나는 유머코드는 섬세한 시청자들의 입맛에는 너무 과하다 싶었다. ‘병맛’스러움과 유치함은 미묘하지만 생각보다 그 효과는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지금까지 <이판사판>의 유머코드는 유치함 쪽에 가깝다.

또한 진지한 이야기는 너무 무겁다. 반면 그 무거움에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한 센스는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진지함은 금방 지루하게 다가오는 경향이 있다.



주연배우들의 연기 또한 썩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다. JTBC <청춘시대>의 송지원 캐릭터를 컨트롤 C한 듯한 박은빈의 연기는 법정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는 합격점을 주기 힘들다. 가뜩이나 극 자체에서 한껏 과장된 이정주라는 인물을 배우가 제대로 조율해내지 못하는 느낌이다.

판사 사의현을 연기하는 연우진의 경우는 뭔가 다른 측면에서 아쉽다. 이 배우는 MBC <아랑 사또전>에서부터 시작해 tvN <연애 말고 결혼>, <내성적인 보스>나 KBS <7일의 왕비>를 거쳐 가면서 뭔가 내성적인 도련님 의 캐릭터를 각각의 드라마에 맞게 빚어가는 인상이다. 남자배우로서 흔치 않은 캐릭터 설정이라서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연애 말고 결혼> 이나 <7일의 왕비> 정도를 제외하면 그가 만들어놓은 캐릭터에 비해 드라마 자체는 시청률 이나 혹은 작품성 면에서 썩 만족스러운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배우 연우진의 이런 불운은 <이판사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앞으로 탄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화려하게 가지를 뻗을 가능성도 있을 테지만 눈에 들어오는 떡잎은 좀 시들시들하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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