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추산 방식 문제인가 아니면 지상파의 위기인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최근 지상파의 시청률표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변화들이 감지된다. 그것은 큰 변화나 이슈 없이 고정적으로 방영되는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새롭게 진입한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을 거의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테면 지난 29일 AGB닐슨 코리아의 가구시청률 상위 20을 보면 1위부터 10위까지 SBS 드라마 <이판사판>을 빼놓고 나면 대부분이 큰 변화 없이 방영되는 고정 프로그램들이 채워져 있다. 1위는 역시 KBS의 일일연속극 <미워도 사랑해>가 차지하고 있고 2위는 KBS 9시 뉴스다. 3위 역시 KBS 일일드라마 <내 남자의 비밀>이, 4위는 SBS의 아침연속극 <달콤한 원수>, 5위는 KBS <인간극장>이다.

그래도 TV 프로그램을 챙겨본다는 젊은 세대부터 중년 시청자들에게 이들 프로그램들은 조금 낯설게 다가온다. 늘 방영되고는 있지만 화제의 중심에서는 멀어져 있는 프로그램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20위권까지도 마찬가지다. 29일의 가구시청률 20위권에서 그나마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이라곤 드라마 <이판사판>, <매드독> 같은 몇 편뿐이다.



<인간극장> 같은 장수프로그램이 10.4%의 시청률을 낼 때 드라마 <이판사판>은 8.5%의 시청률을 남긴다. 월요일 KBS에서 방영되는 <가요무대>가 꾸준히 10% 이상의 시청률로 때때로 핫한 드라마들을 압도해온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시청률표의 기록들이 말해주는 건 지상파 프로그램들이 가진 딜레마다. 화제성과 시청률이 비례적으로 나타나야 정상적이지만 지상파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높아도 화제성은 없고, 대신 화제성이 높다해도 시청률이 반드시 따라가지는 않는다.

반면 같은 날 종합편성과 케이블의 시청률 표는 다르다. 먼저 종합편성의 가구시청률에서 1위를 차지한 프로그램은 역시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JTBC <뉴스룸(6.9%)>이다. 그리고 2위가 최근 들어 관심이 급증한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5.2%)>이고 3위가 역시 화제성이 높은 JTBC의 <한끼줍쇼(4.6%)>다. 케이블의 사정도 비슷하다. 가구시청률 1위를 차지한 건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4.6%)>이다.



물론 지금의 시청률표가 현재의 시청자들의 시청패턴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본방 시청률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그 추산방식에는 허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시청률과 화제성의 상관관계가 이토록 다른 비례관계로 드러나고 있다는 건 분명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 지상파들은 여전히 플랫폼 중심의 고정 시청자들에 시청률이 유지되는 반면, 비지상파는 오로지 콘텐츠 경쟁력과 화제성으로 시청률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

지상파가 이러한 시청률과 화제성의 반비례 관계가 만들어내는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위기상활을 맞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먼저 지상파들의 시청률 추산 방식이 지금의 시청자들의 달라진 시청패턴에 맞춰 바뀌어져야 한다. 그래서 좀 더 화제성을 일으키는 지상파 프로그램들이 주목되고 그것이 시청률표에도 반영이 되어야 지상파의 성장 혹은 진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여전히 일일연속극이나 장수 프로그램만이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는 이런 시청률표로는 자칫 지상파의 정체현상만 가중시킬 수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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