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나인’, 굳이 시청자들에게 도전할 필요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취지는 좋았다. JTBC <믹스나인>은 대형 기획사 YG의 수장이자 SBS <케이팝스타>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양현석이 70여개의 중소 기획사를 직접 찾아가 새로운 프로젝트 아이돌 그룹을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연습생조차 소속사의 업력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지는 냉엄한 현실에 드리운 한줄기 희망은 사회적 함의와 몰입할만한 흥미 요소 모두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CJ에서 <쇼미더머니><프로듀스101>시리즈 등을 탄생시킨 업계 최고의 스타 한동철 PD가 YG에서 만드는 첫 프로그램이란 점도 기대를 품게 만든 요소다.

그런데 최고 시청률은 2%조차 못 넘겼고, 그마저도 점진적 하향 그래프를 그리며 5회에 이르러서는 1회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뒤로 갈수록 시청률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서바이벌쇼의 성공 공식과 정반대로 가는 중이다. 믿었던 화제성도 미미하다. 당일 포털사이트 실검에서도 관련 키워드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중문화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프로듀스101>시리즈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형국이다. 지난주부터 150분에 이르는 편성으로 긴급조치에 들어가고, 대대적인 인원감축을 예고하며 너무 많은 출연자가 등장한다는 단점을 수정하려 하지만 이미 젖은 장작에 불을 지피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믹스나인>이 겪는 어려움은 워너원의 꺼질 줄 모르는 상승기류와 모든 면에서 열화 버전인 KBS2 <더 유닛>이 확보하는 시청률을 감안했을 때 아이돌 서바이벌쇼의 피로도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만과 YG 예능 특유의 스타마케팅에 있다.



먼저 자만이다. 이 쇼를 총괄하는 한동철 PD는 일본 아이돌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육성’ 코드를 빠른 호흡의 쇼로 변환해 우리만의 특화된 서바이벌쇼를 개척한 인물이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라 불리는 스토리텔링과 경쟁을 극대화하는 가혹한 미션을 창시한 이 업계의 대왕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룩한 업적이 찬란하더라도 판을 바꿨다면 다음 버전을 보여줬어야 했다. 기획사를 양현석이 직접 찾아간다는 설정 외에 <믹스나인>의 볼거리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다.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할 멤버를 선발한다는 기본 설정부터, 미션 진행 과정과 순위 발표식 등 간판만 오려 붙이면 <프로듀스101>라 해도 될 정도로 유사하다.

물론, 기획사 직접 찾아가기, 남녀 성대결, 그리고 101명에서 170명으로 키운 사이즈로 차별화를 하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 가지가 <믹스나인>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엔진이란 점이다. 사이즈를 키우는 바람에 수십 개의 중소기획사를 찾아간 오디션은 단순히 나열하는데 급급해지면서 특성을 잃었고, 연습 과정에서 생략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참가자들의 매력을 알아보고 친해질 시간은 너무나 부족해졌다. 관련해 속출한 통편집은 편파 편집 논란으로 번졌다. 서바이벌쇼의 가장 큰 재미 요소가 참가자의 성장스토리와 경쟁 관계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심각한 상황이다.



남녀 성대결을 메인으로 삼은 구도는 당혹스럽다. 안 그대로 구멍이 숭숭 뚫린 스토리라인인데 갈등이 이상한 곳에서 새롭게 발발하기 때문이다. 사이즈를 통한 압도, <프로듀스101>와 차이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고서야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는 성대결을 굳이 억지로 마련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제작발표회에서 <프로듀스101>시리즈를 기획할 때 이미 남녀 성대결을 생각해뒀다고 했지만 그건 다니던 회사에서 계속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중소기획사 출신 연습생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기획의도와 남녀 성대결이란 피로도 높은 설정이 수미상관을 이루지 않는다. 성대결은 결국 남녀 출연자의 불균형한 방송 분량 논란을 야기했다. 실제 지난 주 경연에서는 여자팀만 3팀이나 연습 과정을 통으로 들어냈다. 초반 화제를 이끌었던 여자 참가자들의 분량은 대폭 축소되었다. 팬들의 응집력이 비교적 큰 남자 연습생 위주로 중심을 잡아가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출연자를 바라보는 따스함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덧붙이자면, 현재 방탄소년단, 워너원 등이 사상 최고의 주가를 기록하고 있는 남자 아이돌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남자 연습생 위주로 판을 짜려는 전략은 그리 현명해보이지 않는다.

tvN에서 새로 시작한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이란 예능이 있다. YG 출신 뮤지션들의 무대 밖 일상을 보여주는 관찰예능인데, YG 예능이 갖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표본이다. ‘YG표’ 예능의 특징은 스타마케팅이다. 특유의 아티스틱한 면모를 드러내고 톱클래스 연예인의 화려함을 선보이면서 선망의 대상으로 그려낸다. 그런데 가진 것을 무심한 듯 드러내는 게 아니라 다분히 의식적인 의도 하에 아티스트의 자의식과 라이프스타일과 부를 뽐내다보니 역효과를 본다. 한마디로 오늘날 예능의 정서적 교감이란 측면에서 구식 버전이다.



<믹스나인>도 마찬가지다. 서바이벌쇼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양현석과 YG사 자체의 스타마케팅을 기반으로 한다. 양현석을 정점으로 자유분방하지만 실력은 각 포지션 최고인 프로페셔널한 직원들과 소속 아티스트들을 통해 제국의 위용을 선보인다. 안 그래도 출연진이 많아서 혼란스러운데, YG(와 양현석) 제국의 위세를 보여주는데 주력하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보다보면 출연자들은 애초에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YG군단에 의해 조련되는 스톰트루퍼에 가깝다. 170명의 참가자 중에 회자되는 인물이 극소수인 까닭이다.

이런 YG 타입의 스타마케팅은 ‘육성 코드’를 기반으로 하는 서바이벌쇼의 정서와 충돌을 일으킨다. 그래서일까. <믹스나인>은 연습 과정에서 스타성 있는 출연자들의 캐릭터 잡아가기나 성장의 스토리텔링과 같은 예능 요소 없이 YG에서 준비한 경연 무대로만 승부를 본다. 아이돌 가요 프로그램 시청률도 처참한 마당에 연습생들의 카피 무대를 통해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시청자들, 아이돌 팬들은, 그 어떤 제국에도 귀의할 의사가 전혀 없다. 연령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그렇다. 이들은 이미 단두대가 몇 차례 작동한 시대의 프랑스 시민들과 같아서 자기들 손과 도움으로 커가는 아이돌을 원한다. 자신들의 선택이 중요하지 제왕의 간택은 참조사항일 뿐이다. 아무리 이게 죽이는 거라고 알려줘도, 벤치워머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있거나 스마트폰으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이는 시청률 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로 그대로 나타난다. <믹스나인>은 일반적인 아이돌 서바이벌쇼와 달리 평균 시청률보다 10대 시청률이 훨씬 낮게 나온다. 10대들에게 군소 레이블 출신 언더 힙합퍼들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과 YG의 아티스트 마케팅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같은 선상에 놓고 해석해볼만한 이유다.



양현석의 막말 심사와 편파 편집 논란은 시청자와 제작진(YG)의 너무나 다른 입장 차가 충돌하면서 나타난 반응이다. 방송은 ‘빛나는 소년·소녀들을 구해달라’라고 한다. 시청자들은 그동안 제대로 된 지원을 못 받았거나 ‘발견성’의 기회를 얻지 못한 친구들에게 YG의 선진 시스템과 안목이 날개가 되어주길 기대했다. 그런데 별다른 배려나 도움은 찾기 힘들고, 오히려 YG는 자신의 화려한 날개만 뽐내고 있다. 시청자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교감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눈치다.

양현석의 즉흥적인 심사평이 따스함을 잃은 독설로 다가오고 편집 방향이 형평성을 무시하는 독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이는 능동적 시청에 익숙한 오늘날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도전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양현석의 말 속에 담긴 속뜻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반감이 들고, 제작진의 통편집에 급격히 싸늘해진다. <믹스나인>을 보는 시청자들이 원하고 기대했던 것은 어른이지 왕이 필요했던 게 아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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