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기억의 밤’, 어설픈 반전보다 드라마에 신경 썼다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영화나 책을 통해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이야기꾼이 자신을 완벽하게 속여 넘겼으면 하는 갈망을 품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스릴러나 호러물에서 기대하는 자극과 비슷하다. 자연 세계에서 공포나 놀라움은 대부분 불쾌한 결과로 끝난다. 하지만 영화관이나 집에서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 허구세계의 공포와 놀라움만을 즐기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하지만 놀라움과 충격을 주는 것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관객들이 엄청나게 똑똑해진 건 아니지만, 그들은 그 동안 훨씬 많은 경험을 쌓아왔고 그들을 놀라게 하려는 이야기꾼의 트릭에 대비가 되어 있다. <스팅>을 보자. 여전히 매력적인 영화이다. 하지만 요샌 이 영화를 처음 본 관객들도 결말의 반전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 이 영화의 트릭과 결말은 이를 모방하려는 수많은 영화와 수사당국에게 교과서가 되어 왔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문화적 지식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지금의 작가들은 모두가 <스팅>의 반전 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지금의 작가들은 출생의 비밀을 반전으로 쓰는 데에 1980년대 이전의 작가들보다 신중해야 한다. <제국의 역습> 이후 “나는 네 **다”로 시작되는 대사들은 다 코미디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자랑스럽게 놀라운 반전을 내세운 한국영화 두 편이 최근에 나왔다. 하나는 장창원의 <스팅> 영화인 <꾼>이고, 다른 하나는 장항준의 남성판 <장화, 홍련>인 <기억의 밤>이다. 앞의 문장만으로도 이 두 영화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들은 선배 영화의 제목으로 대표될 수 있는 장르물을 만들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의식을 하고 있지 않다.

<꾼>은 <스팅>처럼 악당을 속여먹는 사기꾼 이야기다. 이것은 과정이 어떻건 사기꾼이 악당을 속여먹는 것이 결말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것은 안심되는 결말이고 대부분 관객들 역시 여기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이 없을 것이다. 충격을 위해 굳이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과정을 게으르게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꾼>에는 정상적인 영화 경험을 가진 관객들이 도저히 속아 넘어갈 수 없는 트릭들이 너무 많다. 아니,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 굳이 영화적 경험이 필요하지도 않다. 언제라도 자신을 배신할 수 있는 사기꾼에게 정상적인 지능지수를 가진 악당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 뭐다? 그 쪽에서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거금을 맡기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관객들이 절대로 속지 못하는 기술이 뭐다? 라텍스 분장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라 왜 안 먹히는지 세부 설명이 필요 없는 트릭들을 이 영화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쓴다.

그리고 관객들이 놀라기를 기대한다. 계산이 너무 대강이라 서스펜스 넘치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닌 장면들도 하나 이상 있는데,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끝까지 이게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랐던 모양이다. 클래식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시즌 하나만 잡아 제대로 공부했어도 이게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장항준의 <기억의 밤>은 <꾼>보다 야심이 더 크고 이야기에도 조금 더 공을 들였다. 척 봐도 결말이 보이는 <꾼>과는 달리 <기억의 밤>의 도입부는 익숙하지만 어리둥절하다.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형이 진짜 형이 아니라고 믿는 동생 이야기이니 <바디 스내쳐스>와 연결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설정이다. 하지만 SF일 리는 없을 테니 무언가 다른 설명이 있을 것이다.

반전을 노리는 영화로서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극단적인 상황일수록 그럴싸한 답이 별로 없고 그것들은 이미 다른 영화나 소설에서 다 써먹었다. 방심하면 그 트릭을 이전에 쓴 다른 영화들에 쓸려갈 수밖에 없는데, 이 영화는 방심을 했다. 그 결과 반전을 위한 트릭 대부분이 비슷한 시기에 나온 두 편의 한국 영화 두 편과 수상쩍을 정도로 비슷해진다.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장화, 홍련>이고 다른 하나는 심지어 그보다 더 유명한 모 영화인데, 그 영화에서 가장 문제있다고 지적받는 장치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원본이 낫다.



더 큰 문제는 중반의 반전 이후, 드라마의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남은 시간 절반 동안, 영화는 서너 마디로 설명이 충분히 끝나는 이 반전을 설명하고,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설명이 길어지고 장황해지는 동안 나름 장중한 비극을 의도했던 초반 설정은 점점 어이가 없어진다. 여기서 어떤 아이러니라도 찾고 싶지만 이렇게 무겁게 눌린 분위기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익숙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여러분이 어떤 반전을 쓰더라도 관객들 상당수는 놀라지 않을 것이며, 영화는 놀라운 관객들만큼이나 놀라지 않는 관객들 역시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역시 속임수보다 드라마에 신경을 쓰는 게 답이다. 비록 영화 전체가 속임수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꾼><기억의 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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