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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제대로 짚은 ‘강철비’, 그 어떤 극찬도 아깝지 않다
기사입력 :[ 2017-12-19 17:03 ]


‘강철비’, 양우석 감독의 치밀한 개연성과 놀라운 설득력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한반도는 전쟁 가능성이 역사상 가장 큰 시기에 직면해 있다.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지난 16일 중국 인민일보 산하의 환구시보 주최로 열린 연례 심포지움에서 스인홍 중국 인민대 교수가 한 말이다.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 위협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북한의 핵 개발이 가속화되는 이때에, 중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라는 분석과 함께 나온 말이다.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방문시기와 일정, 예우 등에 관한 구구한 말들이 있지만, 핵심은 ‘한반도 전쟁불가, 비핵화 견지, 대화와 협상으로 북핵문제 해결, 남북관계 개선지지’라는 4대 원칙을 중국과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마냥 자축할 일만은 아니다. 중국이 일관되게 요구해 온 ‘3불 원칙’(사드 추가배치를 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에 편입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사실상 한국이 이를 수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분분하다. 이러한 정상회담의 성과를 두고, 한미일 3국 안보협력에 입각한 냉전적 질서 대신 21세기를 중국과 함께 하겠다는 외교노선의 변화로 읽는 사람부터 송유관 차단 등 중국의 대북제재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굴욕감만 안긴 외교라는 평가까지 다양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지금, 이러한 뉴스들의 의미와 파장이 무엇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고민할 것 없이 극장으로 향하기 바란다. 화끈한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맥을 정확히 짚어주는 ‘인강’ 강사가 납시었다. 바로 영화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이다.

<강철비>는 <변호인>을 찍은 양우석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 북한의 급변사태를 담는다. 2011년에 연재되었던 웹툰 <강철비>를 원작으로 삼는데, 당시 웹툰의 스토리 작가가 양우석 감독이었다. 연재 당시 김정일이 진짜로 사망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후 김정은 체제로 이어지면서 대규모 숙청과 더불어 6차 핵실험이 이루어지면서, 영화의 설정은 더욱 현실감을 얻게 되었다. 양우석 감독은 웹툰의 스토리를 구상하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근 십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깊은 관심을 두고 지식과 안목을 쌓아왔다고 한다.



◆ 북한의 급변사태를 다룬 가상 시뮬레이션

영화 <강철비>는 웹툰이 종료된 후 지금까지 변화된 정세를 포함하여, 이 주제를 다룬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담는다. 북한 권력에 급변 상황이 생기면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이며, 이에 따라 어떤 군사적 위기가 초래되고 남한 사회의 담론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를 면밀하게 담는다. 영화는 진지하고 통찰력 있는 국제정치적 안목을 보여줄 뿐 아니라, 적당한 타협 없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엄청난 뚝심을 보여준다. 또한 <아수라>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정우성-곽도원의 징글징글한 ‘캐미’가 빛을 발하며, 탄탄한 플롯과 함께 장르적인 긴장미를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한반도 핵전쟁 위기 등 영화가 펼치는 사건의 진폭은 굉장하며, 관객은 엄청난 공포와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허술하게 감정에 호소하거나 민족주의적 당위로 눙치는 짓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극히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사건을 전개해나간다. 핵전쟁의 공포를 상시적으로 끼고 사는 남한의 관객이라면, 늘 뉴스를 접하면서도 굳이 생각지 않고 막아두었던 사고의 봉인이 뚫리는 경험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강 건너 북한이라고 해도 이렇게 가까운지는 몰랐다는 일산 주민의 대사나, 뉴스에서는 계속 전쟁 위기가 나오지만 서울시민들은 의외로 평온하다는 CIA 한국지부원의 대사가 ‘현실자각 타임’을 안긴다.

하지만 영화 <강철비>가 펼쳐내는 치밀한 개연성과 놀라운 설득력은 쭈뼛 당겨진 정신줄을 가다듬고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는 관객을 인식의 지평선까지 몰고 가다가, 결론에 이르러 감독이 생각하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영화의 결말에 섣불리 동의할 수는 없지만, 영화가 풀어놓은 상상의 지평과 탄탄한 전개에 대해서는 상찬하지 않을 수 없다.



◆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의 인민 무력부 정찰총국 소속의 엄철우(정우성)는 쿠데타의 조짐이 감지되니 김정은의 문고리 권력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개성공단에 잠복한다. 김정은 환영인파가 몰린 광장에 갑자기 폭격이 쏟아진다. 엄철우는 중상을 입은 김정은을 중국 공장의 차에 태우고 남측 출입문을 넘는다. 한편 전방에서는 탈취된 미군 전차가 북쪽을 향해 발포하는 일이 벌어진다. 북한은 미군의 군사도발이라며 선전포고를 하고, 남한에는 계엄령이 선포된다. 미국의 대통령은 전쟁 시나리오를 돌려보고 북한을 선제 타격하겠다고 청와대에 알려온다. 남한은 마침 정권교체기라, 임기 말의 현직 대통령과 차기대통령이 확연히 다른 입장과 태도를 보이며 대립한다.

<강철비>는 북한의 쿠데타 세력,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가진 인민들, 미국의 대통령, CIA, 중국대사, 일본대사, 남한의 현직 대통령과 차기대통령 등 다양한 국내외 주체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을 단순히 선악으로 구분하지 않으며, 각자 이해관계와 논리를 가지고 움직이는 존재로 그린다. 핵무기를 개발해놓고도 군사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김정은 체제 안정화에만 이용하면서 대규모 숙청을 감행하는 김정은 정권에 대해 북한 군부가 불만을 품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CIA가 북한에 쿠데타로 새 정권이 들어설 경우 인민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군사적인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거나,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 타격하겠다는 미국 대통령의 논리도 예측 가능하다.



또한 막상 북한이 미사일로 응수하자, 동아시아에서 전면전을 치르고 싶지 않다며 한 발 빼는 미국의 태도도 납득된다. 중국은 송유관이라는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지고 있으니 북한의 핵이나 정권이 자신들 손에 달려있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북한에서 막상 정변이 일어나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중국은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된다. 외교적인 자존심을 세우거나 혈맹 운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이라는 완충장치를 잃고 미국의 동맹국들과 국경을 맞대는 일을 중국이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납득하기 때문이다.

국내 상황도 절묘하다. 국내는 현직 대통령(김의성)과 차기 대통령(이경영)이 공존하고 있는데, 이들은 두 진영을 대표한다. 현직 대통령은 북한은 어떤 군사적인 도발을 감행할지 알 수 없으며, 믿을 수 없는 대화 상대라고 말하며, 미국의 선제타격을 승인한다. 그가 미국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거나 전쟁광이어서가 아니다. 북한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선제타격이라도 해서 북한정권이 제거되면, 분단과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는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준다. 북한의 핵무기가 궁극적으로 미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지라도, 남한을 공격하여 주한미군을 인질로 삼아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작전도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차기 대통령은 미국의 선제타격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다. 그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 핵감축을 이루고자 한다. 미국의 선제타격을 남한이 허용할 경우 북한 인민들은 남한을 적국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북한 정권이 제거된 후에도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즉 북한을 통일의 파트너로 본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보인다.



◆ 새로운 주체, 철우는 어떤 인물인가?

영화 <강철비>가 보여주는 다양한 주체들 가운데에, 철우가 존재한다. 영화의 제목이 ‘강철비’이고, 남북한의 두 주인공의 이름이 ‘철우’인 것은 중의적이다. ‘철우’는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인 ‘강철비’를 뜻하는 말이자, 같은 민족이라 이름도 같은 두 인물을 묶어내는 말이기도 하다. ‘쇠鐵과 벗友’을 쓰는 엄철우(정우성)와 ‘밝을哲과 집宇’를 쓴다는 곽철우(곽도원)는 서로가 서로의 인질이 되기도 하고, 서로를 구해주기도 한다. 이들은 수갑으로 엮인 상태로 새터민이 말아주는 국수를 먹기도 하고,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도망치기도 하고, 딸 키우는 아빠로서 지디의 노래를 듣기도 한다. 이들의 이름에 벗友 와 집宇 가 들어가는 것도 암시적이다. 이들은 필연적으로 친구가 되고, 한반도는 평화적으로 지켜야 할 집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내려온 ‘강철 같은 친구’를 맞은 남한의 철우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캐릭터는 영화의 주제와 직접 연결된다. 그의 첫 등장을 떠올려보자. 전처가 키우는 아이들을 만나 햄버거를 사주는 장면에서 그는 두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는 그가 선거방송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축하전화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들에게 “너 싸가지 없다는 말 듣지? 너는 영락없는 내 아들이다” 란 말을 하는 것이다. 가볍게 스칠 장면이지만, 그에 대해 굉장히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그는 현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임과 동시에, 차기 당선자와 직접 연이 닿는 인사이다. 즉 진영논리로 나뉘지 않는 인물이다. 아들과 한 말은 그가 ‘속물’임을 기꺼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인물임을 말해준다.



즉 현실논리를 중시하는 실리적인 인물로, 고상한 도덕이나 명분에 경도되는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그는 ‘땜방’ 전문을 자처하는 자이고, “낙하산인줄 알았더니...전 마누라 챙기러 갔다가 적의 수괴를 생포”라는 말이 보여주듯, 국내의 이너서클에서 약간 무시를 당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의 실력자로부터는 ‘북경대 석좌교수’ 자리를 제안 받을 만큼 외부적으로는 실력을 인정받는 인물이고, CIA 한국담당 요원과도 소통이 잘되는 인물이다.

그는 실리적이고 적당히 능글대는 속물이지만, 역사의식은 뚜렷한 편이다. 그의 역사의식은 대학의 짧은 강의 장면에서도 드러나지만, 엄철우와 대화에서 더 잘 드러난다. 북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이 누구인지를 추론하면서 “쿠데타는 원래 군이 일으키는 거야. 남한에서도 박정희의 암살은 측근이 저질렀지만, 실제로 쿠데타는 군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12.12 신군부 쿠데타를 정확히 짚은 대사이다. 요컨대 곽철우는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은 인물로, 국제적인 안목과 역사의식과 치우치지 않은 소통능력을 지니고 있다.



북한에서 내려온 협상 담당자를 두고 곽철우가 “북한의 대표적인 강경파가 아닌가?”라 말하자 엄철우는 “강경파니, 온건파니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어떻게 북한 정세를 이해할 수 있나?”고 일갈한다. 이는 사실 감독이 관객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보수진영과 차기대통령으로 대변되는 진보진영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복잡한 한반도 정세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정세의 높은 파고를 헤쳐갈 수 없음을 말한다. 영화는 곽철우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인물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 최악의 전쟁터가 될 것인가, 지혜로운 공간이 될 것인가

영화 <강철비>가 파격적으로 제시하는 북핵의 해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의 결론은 우연한 귀결이 아니라, 곽철우가 강의를 통해 한번 언급한 바가 있는 것이기에, 감독의 소신을 담은 결론으로 볼 수 있다. 영화가 제시한 해법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영화가 말하려는 바를 분명하게 짚을 필요가 있다. 예컨대 현재의 국제질서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기 전에, 발상의 취지에 주목해보자.

북한의 핵무기의 절반을 남한에 넘긴다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핵감축이고, 남한의 입장에서 보면 핵무장이 된다. 현재 남한에는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을 주장하는 진영이 있고, 남한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이 있다. 두 개의 진영은 서로를 정신 나간 사람들로 취급한다. 한쪽에는 북한의 핵개발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절대 핵을 포기할 리 없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는 철지난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현실인식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는 남한의 핵무장은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주장으로 남한 내 극우 진영을 결집시키려는 수사에 불과하며 전쟁을 부추기고 민족 공멸을 앞당기는 주장이기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두 인식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린다. 하지만 두 인식 중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틀린 것은 없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사이의 여러 선택지들을 상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즉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비핵화협상이 아닌 핵감축 협상에 나서는 것도 생각해볼 수도 있고,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무장을 허용하여 중국을 압박하는 그림도 상상해볼 수 있다. 영화가 제시하는 해법은 이런 여러 가지 유동적인 선택지들 중의 하나로 던져진 것이다. 이제 한반도의 정세를 논의할 때, 영화 <강철비>의 내용을 공유한 상태에서 다음 토의를 이어나가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 될 수 있다. 영화가 이 주제에 관한 대단히 충실한 발제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엄철우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 메시지를 남긴다. 첫째는 곽철우에게 전처와 재결합을 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분단체제에 사는 인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이용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더 큰 고통을 받는다”는 곽철우의 말을 복기하는 것이다. 이는 둘 다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즉 이혼한 곽철우에게 재결합을 운운하는 것은 공연한 오지랖이 아니라, 양 진영으로 분열된 채 화해하지 못하는 남남 갈등을 해소하라는 은유적 표현이다. 또한 엄철우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복기하는 그 말은 분단을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누구인지 밝은 눈으로 보라는 당부이다. 한반도가 ‘쇳덩어리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鐵雨)’ 최악의 전쟁터가 될지, ‘지혜로운 터전(哲宇)’이 될지는 우리의 혜안에 달려있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강철비>스틸컷, 메이킹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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