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사랑으로, ‘그사이’가 담는 휴머니즘

[엔터미디어=정덕현] 공유된 상처는 어떻게 사랑이 되어갈까.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담는 멜로는 조금 특별하다. 그것은 단지 남녀 간의 달달한 사랑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상처를 보듬고 사랑하게 되며 함께 살아가게 되는가의 이야기까지 확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이야기의 대전제는 바로 쇼핑몰 붕괴사건이다. 그 붕괴된 곳에 매몰되었다 살아나온 강두(이준호)와 문수(원진아)는 그 충격적인 트라우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강두는 그 사고로 인해 꿈을 접었고 아버지를 잃었다. 문수는 동생을 잃었고 이로 인해 가족은 큰 상처를 입고 무너져 내렸다.

한편 이 쇼핑몰 붕괴의 모든 책임을 떠안은 건축설계사 아버지로 인해 ‘살인자의 아들’이라 낙인찍힌 채 살아온 서주원(이기우) 역시 사고로 인한 상처를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건축설계사의 길을 선택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억울한 누명을 쓴 아버지의 한을 풀어내려는 마음이 자리해있다. 사고가 난 곳에 아버지의 설계도를 그대로 재현해 그 사고가 아버지의 책임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강두와 문수 그리고 서주원이 서로 관계가 얽히는 이유는 바로 이 공유된 상처 때문이다. 문수는 사고의 트라우마로 인해 건물 모형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무너지지 않는 건물이 지어져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걸 드러낸다. 바로 이 점은 서주원이 그를 자신의 프로젝트에 합류시킨 이유가 된다. 둘 다 ‘공유된 상처’로 인해 사고 없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강두와 문수는 그 무너진 건물 속에 갇혀 있었던 경험(그건 아마 당한 사람만이 아는 경험일 게다)으로 서로 자연스럽게 엮어진다. 창문이 없는 공간을 견뎌내지 못하는 문수가 건물 16층을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으로 오를 때 강두 역시 그 곳을 내려오며 두 사람은 마주친다. 시비가 붙어 깡패들에게 맞아 널브러져 있는 강두를 문수가 구해주는 것도, 건설현장에서 구덩이에 빠져 위험에 처한 문수를 애써 찾아내 구해주는 강두도 그 사고가 남긴 상처의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그저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서 구덩이에서 자신을 구해주고 버스정류장에서 돌아선 강두를 문수는 굳이 되돌아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전한다. 그러자 강두의 표정은 갑자기 진지해진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문수의 반응이 자신에게는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런 구원의 손길이 위험에 처한 이들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것인가를 두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두와 문수를 이어주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쇼핑몰 붕괴사고에서 함께 매몰되었던 그 공유된 상처의 기억이다. 그들은 그래서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그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들에 예민해지고, 그것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이끌린다. 그것은 연민과 동정과 공감과 어우러진 사랑의 감정일 것이다. 당한 이들만이 아는 그들만의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서 인간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휴머니즘으로 이어진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그저 뻔한 사랑이야기 그 이상으로 만드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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