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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가 죽었다고 울부짖는 골수팬들에게
기사입력 :[ 2017-12-23 13:38 ]


‘스타워즈’, 기존 세계관을 부정해야 더 오래 살아남는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왜 <스타워즈> 영화의 번역에 그렇게 공을 들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어 하나하나에 예민하기 짝이 없는 팬덤이 조금이라도 실수가 보이면 지적할 준비가 되어있는 시리즈다. 여분의 공을 들이는 게 당연하다.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귀찮아진다. 지난 번 <스타워즈> 영화 <깨어난 포스>는 공주가 남편인 한 솔로에게 존대하는 번역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 있다. VOD나 더빙판에서는 수정되었다고 하는데, 왜 그 고생을 사서할까.

이번 <스타워즈> 영화 <라스트 제다이>도 자막 문제가 많은데 그 중 상당수는 존칭 문제이다. 하지만 <깨어난 포스> 때부터 수상했다. 왜 핀이 굳이 포에게 존대를 해야 하는가. 이러니까 포가 이번 영화에서 처음 만난 레이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놓는 한국식 족보 문제가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핀이 처음 보는 로즈에게 굳이 말을 놓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지적되는 것 중 하나에 대해서는 변론을 하고 싶다. 레이가 츄바카에게 존대를 하는 것. 왜 이게 문제가 될까. 츄바카는 레이보다 한참 연상이고 루크와 함께 수많은 전투에서 전설적인 공훈을 쌓은 전쟁 영웅이다. 걸어다니는 카펫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 사실이 사라질까? 우키족은 인간보다 열등한가?



여기서 칼 세이건 이야기를 끌어올 수밖에 없다. 1977년 <스타워즈>가 히트하자, 수많은 관련 업계 전문가들이 이 영화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끌려왔는데, 세이건은 그 중 한 명이었다. 다음 링크를 클릭하면 세이건이 출연한 1978년 3월 2일자 <투나잇쇼> 클립을 볼 수 있다.

https://youtu.be/g-Q8aZoWqF0

그는 여기서 <스타워즈>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그는 ‘12파섹 이내로 케셀 런을 통과’하는 게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가 더 신경을 쓰는 것은 머나먼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 모험담이 지나치게 백인 인간 중심이라는 사실이었다. 왜 은하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은 다 백인 인간들이 맡고 있는가. 무엇보다 왜 츄바카는 마지막에 훈장을 받지 못하는가? 한 솔로, 루크 옆에서 끝까지 싸웠잖아! 이건 우키 차별이야!



세이건만 이런 비판을 했던 건 아니다. 그리고 이후로 <스타워즈>는 끊임없이 이와 비판을 받아들이며 스스로의 우주를 수정한다. 오리지널 3부작만 봐도 이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인간은 오직 백인밖에 없었던 우주에 다른 인종의 캐릭터들이 조금씩 들어왔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자들의 수가 늘어났으며 여전히 부족하지만 외계인들의 역할도 이전보다 커졌다.

오리지널은 어쩔 수 없이 백인 남자들의 쇼였지만 변화는 프리퀄, 새 트릴로지를 통해 꾸준히 이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옛날 <스타워즈> 영화가 아니다’란 불평이 지겨운 이유도 있다. 변화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시작된 이후로 꾸준히 지켜온 일관된 특성 중 하나이다.

SF 장르에서 수명이 긴 유니버스는 늘 자기 완결성을 깨트리면서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일단 그 동안 새로운 과학지식이 쌓이고, 영화나 드라마인 경우 특수효과나 미술의 발전이 있으며, 새로운 독자나 시청자들이 유입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지막은 중요하다. 60년 전까지만 해도 SF는 백인 남자애들의 놀이터였다. 백인 남자들이 이야기를 주도했고 백인 남자들이 그 이야기들을 소비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가?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그 작품 자체가 일으킬 때도 있다. <스타워즈>의 경쟁 우주로 유명한 <스타트렉>이 그러하다. 흑인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끼워넣는 것만으로 그 시리즈가 얼마나 세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지 보라.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리지널 <스타트렉> 시리즈의 비전은 변화한 세계를 따라잡지 못한다. 최신작 <디스커버리>가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시대를 그리고 있지 않으면서 캐스팅이 훨씬 인종적으로 다양한 이유는 자기 완결성보다 시대에 시리즈를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고 모두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건 <디스커버리>가 1960년대의 특수효과를 쓰지 않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다.

오리지널 시리즈보다 과거를 다루고 있는 <디스커버리>와는 달리 <라스트 제다이>는 굳이 과거를 수정해야 할 무리수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스타워즈> 은하계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백인우월주의자 집단처럼 보였던 제국군의 후예 퍼스트 오더가 다른 인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저항군의 다양성은 당연한 것이고.



그보다 더 당연한 것은 세계관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포스와 제다이와 관련된 이전 시리즈의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파괴한다. 그리고 그 파괴의 중심에는 우리의 루크 스카이워커가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제도권 종교로서 제다이 종교는 몇십 년 전부터 의미를 잃었다. 포스는 제다이가 독점하는 게 아니다. 우주의 균형의 잡기 위해 꼭 고대의 종교에 의지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따라가는 게 어떨까.

수많은 팬들이 자기가 아는 <스타워즈>가 죽었다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원탁의 기사 이야기는 아서왕의 죽음으로 끝나고 더 이상 이어졌다면 지루해졌을 것이다. <스타워즈>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같은 말을 반복하는 지루한 늙은이, 베이비부머의 향수 섞인 장난감 이상이 되려면, 스스로가 젊어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관의 부정은 오히려 정공법이다. 진짜로 <스타워즈> 유니버스를 사랑한다면 그 세계가 가능성의 극한을 실험하며 발전하고 도전하길 바라는 게 정상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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