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물질만능주의에다 사대주의까지, 이게 뭡니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방인>은 제목이 뜻하는 만큼 예능왕국 JTBC에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방향성을 가진 예능이다. 물론 겉으로 보면 그리 특이하지 않다. 꿈, 사랑, 일 등 각기 다른 이유로 낯선 나라에 사는 이방인들의 일상, 그리고 타향에서 겪게 되는 외로움과 갈등, 따가운 시선을 이겨낸 과정 등 쉽지만은 않았을 그들의 정착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리얼리티 예능이라 스스로 정의한다. 오늘날 해외의 삶과 일상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맞다. 여행과 문화 교류 등이 재미의 영역으로 들어온 요즘 예능 경향에 잘 맞는 볼거리다.

그런데 정작 방송을 보고 있으면 이런 정의나 제작 발표회에서 남긴 의미 부여와 설명들이 무색해진다. 포장지와 달리 <이방인>은 미국 상류층에 진입한 한국인들의 생활을 엿보는 프로그램이다. 육아예능이나 가족예능이 보여주는 행복과 풍요로움을 해외로부터 가져왔다는 게 차이다. 가족예능의 범주 안에 풍요로움과 행복의 이미지를 전시하는 육아예능의 재미요소들을 몇 가지 따와서 만든 너무나도 익숙한 가족예능의 미국버전인 셈이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의미 있는 방송을 만들기 원한다는 JTBC에서, 지상파 방송사가 자기복제 하듯 내놓는 가족예능을, 그것도 가장 노골적인 방식으로 동경과 부러움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놓은 것이 의아하다.



방송에 최초 공개된 서민정의 가족과 추신수의 가족은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고군분투나 문화적 차이를 겪는 중이 아니다. 역대급 FA계약을 맺고 텍사스 저택에 머무르는 추신수는 우리가 흔히 NBA나 메이저리거 관련 다큐에서 보던 스타 선수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대저택에서 살아가는 부족할 것 없는 단란한 가족. 아들이 아이스하키에 재능을 보이자 아이스링크를 직접 만들까 고민하는 등의 경제력에 구애되지 않은 다양한 교육활동을 시키면서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맨해튼의 대표적인 고급 맨션에 사는 서민정은 할로윈을 맞아 뉴욕 상류층의 전통적인 휴가지인 햄튼에서 딸의 친구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등 영화에서나 보던 뉴욕 상류사회의 삶을 예능에서 보여준다. 너무 영화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들과 일상이 펼쳐져서 그럴까. PPL 또한 더욱 두드러진다.



이 행복한 가족들은 보기 좋다. 문제가 있다거나 논란의 소지 따위는 전혀 없는 좋은 사람들로 느껴진다. 이들은 너무나 잘 살아왔고, 그들은 그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런데 이를 예능으로 전시하면서 우리나라 땅으로 가져왔을 땐 그 방식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방인>이 주조하려는 부러움, 동경을 자아내는 에피소드와 볼거리들이 단순히 가족의 행복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입장에서는, 예를 들자면 추신수네 부부가 이제야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이고 선택일 수 있지만, 방송으로 접하는 시청자들이 느끼는 부러움의 본질은, 문화적인 교양이나 색다른 삶의 양식으로만 다가오는 것만은 아니다. 가족의 행복과 아이들의 순진무구함에 물질만능주의에다 사대주의까지 하나 더 끼워 넣었으니 사절하고 싶다.



관찰형 예능은 부러움과 공감대라는 묘한 감정의 공존을 이루는 장르다. 그런데 <이방인>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느껴야 하는 호기심이란 것이 정작 부러움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들이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인종차별 등의 어려운 순간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맨해튼이 한 눈에 다 내려 보이는 개인 테라스에서 나누는데 집에서 가장 큰 창을 열어도 앞집 뒤 베란다가 보이는 집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그 순간에 눈물을 글썽일 순 없는 거다.

따라서 <이방인>은 제목을 잘못 붙여도 한참 잘못 붙였다. 오히려 솔직하고 노골적이었다면 지금보다 결과도 훨씬 더 나았고, 일종의 배신감을 만들 일도 없었으리라 본다. 본심은 따로 있는데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내세워 부러움과 노골적인 감정들을 감싸는 방식들. 그러니까 육아 예능의 문법은 이제 시기가 지났다. 주말저녁에 편성된 행복을 전시하는 가족예능임에도 SBS <마스터키>보다 시청률이 좋지 않다는 것은 정말 생각해볼 만한 심각한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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