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깝스’, 이건 조정석의 재능기부 드라마인 걸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월화드라마 <투깝스>는 킬링타임 드라마로 무난한 정도의 재미를 지녔다. 드라마의 플롯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고 보는 그대로 이해가 가는 코믹물이기 때문이다. 바른 길만 가는 열혈 형사와 잔머리 굴리는 데 도가 튼 얄팍한 사기꾼이 있다. 형사 차동탁(조정석)이 살인누명을 쓴 사기꾼 공수창(김선호)을 체포해 이송 중 불의의 습격을 당하면서 두 사람은 죽음의 위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공수창은 혼수상태에 이르러 영혼만 떠다니는 지경에 이른다. 이 공수창의 영혼이 차동탁에 빙의하거나, 혹은 차동탁과 대화를 나누면서 벌어지는 헛소동들이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다.

<투깝스>는 빙의를 주요 소재로 한 코믹 로맨스 수사물을 표방하지만 사실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다. 공수창과 차동탁이 벌이는 헛소동 탓에 오히려 여주인공 사회부 기자 송지안(이혜리)은 조연처럼 여겨질 정도다. 당연히 여주인공은 기껏해야 멋있는 형사 차동탁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역할에 그칠 따름이다.

<투깝스>는 수사물로도 합격점을 받기 힘들다. 수사에 대한 디테일이나 긴장감이 거의 없다. 공수창이 근무하는 강력2팀 역시 경찰서가 아니라 복학생 선배들이 모여서 수다 떠는 대학 동아리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상이다.



이 허점들을 <투깝스>는 빙의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돌파하려고 한다. 빙의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를 위한 거의 유일한 믿음에 가깝다. 그리고 가끔 여주인공 송지안에 <응팔>의 덕선이가 빙의한 것이 아닐까 싶은 순간들도 있고.

툭하면 공수창은 차동탁 안으로 빙의해 들어와 사고를 친다. 공수창이 빠져나가면 다시 본래의 차동탁이 서둘러 그 뒷수습을 하는 것이 <투깝스>의 진행방식이다. 하지만 빙의가 반복될 뿐, 그 빙의 과정을 통해 공수창과 차동탁 캐릭터가 성숙하거나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결국 시트콤 같은 설정들을 위한 반복되는 빙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짜증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어느 순간 <투깝스>를 보다보면 제발 공수창한테 빙의되지 말고 차동탁이 그냥 수사하게 해주세요, 라고 빌고 싶을 정도의 순간이 있다.

사실 <투깝스>가 이처럼 나태하게 빙의만 가지고 요리조리 이야기를 돌리는 건 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배우 조정석에 대한 믿음이다. 이 드라마에서 조정석은 빙의와 제정신을 오가며 거의 드라마 전반을 좌지우지 휩쓴다. 하지만 조정석을 아껴온 팬들이라면 <투깝스>는 그리 만족스러운 작품이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조정석이란 배우가 가진 강점을 빼내 지독하게 소비시킨다는 인상이 들기 때문이다.



조정석은 마초 캐릭터의 전통을 이어오는 듯하지만 특유의 유니크함이 있다. 단단하고 우직한 강철마초가 아닌 매순간 통통 튈 것 같은 젤리마초의 느낌이랄까? 이런 그의 연기는 색깔 있는 드라마를 만났을 때 스파크 같은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

tvN <오, 나의 귀신님>의 허세 가득한 셰프 강선우, SBS <질투의 화신>에서 유방암 걸린 마초 앵커 이화신을 연달아 맞으면서 조정석은 본인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했다. 특히 <질투의 화신>에서 그 지질하면서도 질기면서도 웃기면서도 섹시하면서도 애잔하기까지 한 이화신의 감정선을 조정석만큼 잘 그려내란 쉽지 않았을 거라 본다. 감정선을 동적으로 재빠르게 표정과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배우라서다.

하지만 <투깝스>는 허점이 많고 딱히 특별하지도 않은 이야기에 배우 조정석을 얹고 어서 재미있게 만들어 보라고 떠미는 듯한 인상이다. 물론 이 배우는 본인의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드라마 전체가 들썩들썩 흥이 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극 초반 카메오 간호사로 등장하는 배우 박진주와 차동탁이 병원에서 주고받는 대사를 들으며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 조정석과 다른 배우들이 보여줬던 흥미로운 장면들이 떠오를 따름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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